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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마트소설 <어떤 고백>

어떤 고백(告白)  나는 그만 사랑에 빠졌습니다. 아침마다 나가는 공원의 산책길에서 만난 사이이지만 난 아직도 그의 이름을 모릅니다. 다만 내가 이쪽 사잇길을 걸을 때면 그는 저쪽 보히니어(紫荊花-Bauhinia) 나무 사이에서 잠시 모습을 드러냈다가 사라지곤 합니다.그 모습을 잠시만이라도 볼 수 있을까 하여 나는 매일 아침 공원의 산책길을 서성입니다. 어떤 때는 황홀하게도 눈빛이 마주칠 때도 있습니다. 설레는 마음, 뛰는 가슴을 감춘 채 짐짓 무관심한 듯 모른척하며 그의 곁을 지나오나 고개 돌려 다시 돌아보고픈 마음을 억누르기 어렵습니다. 가끔 용기를 내어 뒤돌아볼 경우도 있으나 행여 그 맑고 청순한 마음에 뜨거운 나의 열정을 들키기라도 할세라, 혹 수줍음에 눈을 흘기고 다른 곳으로 가 버리지나 않을까..

소설 2025.01.11

2024년 세모에

2024년 세모에  한 해의 마지막 날입니다. 이제 잠시 뒤엔 제야의 종이 울리고 2024년은 역사 속으로 사라질 것입니다. 인간의 삶이 늘 그렇듯 한 해가 저무는 때, 지난날을 돌아보면 언제나 다사다난했다는 말을 떠올리게 됩니다. 국회와 정부가 탄핵과 거부권을 남발하다가 종내 비상계엄 선포 사태로 국정이 마비되고 국민의 의견도 두 갈래로 나뉘어 참으로 걱정스러운 상황에 놓인 것도 그러하거니와 연안문학회의 일만 하더라도 문학 외적인 의견대립(사회현상)으로 일부 회원들이 떨어져 나가는 아픔을 겪었고 상임고문이신 강희근 교수님이 사랑하는 사모님과 사별하거나 운영위원장으로 기둥 같은 역할을 해 오시던 큰어른이신 온영 박화산 선생님이 졸지네 명을 달리해 놀라움과 슬픔을 겪기도 했습니다. 여기에 더해 엊그제 무안..

세모에 따뜻한 마음으로 읽어보는 시 세 편

​가랑잎 바스락거림이 잠잠해지고깊은 사색의 무거운 침묵이 머무는 거리에첫사랑처럼 설레는 첫눈이 내린다 가로등 아래로 나풀거리며 내리는 눈꽃송이반가움으로 내미는 손끝에서조차눈물로 스러지는 순결한 영혼​하얗게 표백된 마음으로 오늘은서로의 허물을 감싸고 용서하자아니, 부끄러운 손 먼저 내밀고 용서를 구하자 바라는 소원만큼 많은 양이 아니어도첫눈이 있기에 겨울은 아름답고세상은 살아갈 만큼 훈훈하다 머지않아 매정한 바람이 불고 얼음도 얼리라벗은 몸으로 겨울을 나는 가로수 곁에 서서첫눈을 맞는 내 가슴은 얼마나 따뜻한가 ​​ ​무의도 바닷가에서겨울을 보았다삭풍이 휘몰아친 한파에끝내 얼어버린 파도 어느 따뜻한 발걸음이 다녀간 것일까언 몸을 녹이며 살아 숨 쉬는조각난 바다 계절은 매정해도생존은 언제나 치열한 것서로 엉..

카테고리 없음 2024.12.24

작가 한강의 노벨문학상 수상에 관한 질문과 대답

한국의 노벨문학상 수상에 관한 연안문학회 회장 인터뷰  한강 작가의 노벨상 수상에 관한 소감은?- 먼저 뜻밖의 소식에 놀랐습니다. 한국 문단의 현실로는 버겁게 느껴지던 벽이 일순간에 허물어져 통쾌하기는 하나 한편으로는 묘하게도 허전한 생각이 들기도 했습니다. 작가 한강보다 평생을 한국문학의 발전에 공헌하면서 작품활동도 활발한 중진 문인들도 많은데 앳된(?) 젊은 작가가 상을 받게 되어 이제까지 한국 문단을 지탱하고 이끌어온 중진들의 위상이 초라해진 것 같은 느낌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시대는 빠르게 변하고 있고 어쩌면 젊고 신선한 세대가 상을 받는 게 더 희망적이며 발전지향적일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어쨌거나 한국문학이 노벨문학상 수상으로 세계의 주목을 받게 되었으니 장하고 축하할 일입니다. 한강..

문학의 산실 2024.12.10

유년의 수채화

월간 9월호(통권 408호)에 게재  유년의 수채화  1. 하굣길 나른한 한낮의 오후였다. 수업이 끝나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한 무리의 여자아이들이 재잘대며 코스모스 꽃길을 따라 앞서가고 있다. 나는 일정한 거리를 두고 앞선 아이들의 이야기에 때로는 공감하며 혹은 ‘그렇지 않은데...’ 하면서 혼자 중얼거리며 따라가고 있었다. 아직도 학급 친구들은 무슨 이유에서인지 나를 '양파'라는 별명으로 부르며 놀려대곤 했다. 더러는 짓궂게 구는 아이들도 있었는데 아마도 서울이라는 큰 도회지에서 온 피부가 희고 살결이 거칠지 않은, 종종 시골 아이들과는 다른 생각과 행동을 보이는 내가 조상 때부터 이곳에서 자연과 더불어 살아온 그들에게 낯설고 이질적인 존재로 보였기 때문인지 모른다. 그렇지만 몇몇 아이들은 선망의..

소설 2024.09.12

5월의 초대

오늘은 스승의 날이며 세종대왕 탄신일이기도 하고 석가탄신일에 저와 특별한 인연이 있는 어느 분의 생일이기도 합니다. 경건하고 정성이 담긴 마음으로 아침을 열며 관련이 있는 분들께 축하의 인사를 드립니다,나의 오늘이 의미가 있도록 깨우침을 주시고 알게 모르게 도움을 주시며 따뜻한 배려로 성원해 주신 분들께도 마음 깊이 감사를 드립니다.5월은 가정의 달이며 계절의 여왕이기도 한데 여러분 모두 사랑과 감사와 존경이 담긴 행복한 날 보내시기를 바랍니다.​​*미음나루에서​​강가에 피어오르는 물안개가여명의 어둠을 걷어내면새소리 재잘대는 갈대숲 사이로아침이 찾아온다​물결 위에 부서지는 햇살이시간을 영글게 하고어디선가 불어오는 바람에강은 또 부지런히 기적을 만든다​끝나지 않은 긴 기도에 해가 저물고강변에 맴돌던 노을도..

별 하나의 유혹

별 하나의 유혹  남국의 여름 날씨는 참으로 변덕이 심하다. 아침에 천둥소리에 놀라 눈을 떠도 우산 없이 출근하기도 하고 땡볕에 시간 맞춰 약속한 장소에 나갔다가 돌아오는 길에는 흠뻑 소나기를 맞게 되는 것이 이곳 날씨이다. 그런데도 요 며칠 동안은 비와 구름과 안개로 인한 궂은 날씨로 여러 날 맑은 하늘을 보지 못했었다.맑은 여름날 남국의 밤하늘, 그 빛나는 별들이 보고 싶어 며칠을 기다리는 동안 밤은 고사하고 한낮에도 회색빛 커튼으로 하늘을 가리는 날씨의 심술이 못내 원망스럽기만 했다.오늘도 아침부터 찌푸린 날씨에 밤하늘의 별들을 볼 수 없으리라 생각하면서 기대도 하지 않은 채 보냈는데 퇴근 후 건물을 나서니 아직 어두워지지 않은 하늘에 하얀 실구름이 떠 있는 모습이 보였다. 나는 이내 빌딩의 문을 ..

작가의 수필 2024.05.13

문인(文人)의 각성을 촉구하며

문인의 각성을 촉구하며 -연안문학회 회원들께- 깊은 성찰과 사유로, 보잘것없이 살아온 인생의 길과 뒤늦게 들어선 문학의 길에서 순례자처럼 겸허하게 마음을 비우고 새로운 지식과 깨달음을 채워가며 살아가는 필부이지만 최근 연안문학회의 모습에 실망이 큽니다. 역사를 살피며 글을 쓰다 보니 어느 시대이건 그 시대를 평가하는 기준이 지식인의 목소리임을 깨닫습니다. 문화가 융성한 기록이나 나라가 망하는 통탄스러운 상황에 대한 책임이 위정자나 백성의 몫이 아니라 그 시대와 사회에 필요한 올바른 목소리를 내는 선비정신이 어떠했는가에 달려있다는 깨달음입니다. 한마디로 어느 시대가 보잘것없다면 이는 그 시대 지식인들의 행동이 보잘것없었다는 사실을 대변한다는 것입니다. 오늘날 한국 사회는 병들었습니다. 국토가 두 조각으로 ..

문학의 산실 2024.02.22

동아시아 문학 산책

동아시아 문학 산책 -한시(漢詩) 여성 문학 살펴보기- 서(序) – 동아시아는 지리적으로 중국과 몽골, 만주와 연해주, 한반도와 일본을 포함하고 있으나 정치, 경제, 문화적으로는 중국과 한국(북한 포함), 일본을 일컫는 뜻으로 쓰이고 있다. 이들 삼국은 혈통(민족)과 언어, 통치(국가)체계와 민속이 다르면서도 농경 생활을 기반으로 한 삶의 양식(樣式)과 한자로 된 문자의 사용, 유불선(儒佛仙)의 종교적 공통성을 함께 공유하며 오랜 역사를 이어왔다. 따라서 동아시아 문학이라고 하면 한글이나 가나(일본 문자)가 나오기 이전인 한자로 된 문학 특히 한시(漢詩)에 그 뿌리가 있기에 여기서는 한, 중, 일, 세 나라의 한시 문학 가운데 특별히 여성들이 쓴 작품을 비교해 봄으로써 같은 문자로 어떻게 다른 문화적 특..

<연안문학 창간사> 한국문단의 새 지평을 열며

한국문단의 새 지평을 열며 연안문학회는 오늘날 한국 문단에 작가정신의 재정립과 창작의 질적 향상이 필요하다는 인식을 가진 30여 명의 회원들이 모여 단체의 이름과 로고를 정하고 정관을 만들어 지난 1월 31일(화) 송도 신도시에서 창립총회를 열고 출범했습니다. 단체의 이름이 연안문학회인 것은 바다를 끼고 있는 인천에 그 뿌리가 있음을 드러낸 것이고 로고에 펜을 상징적이 아닌 실체적(진행형)으로 그려 넣은 것은 문인회 또는 문인협회가 아닌 문학회로 되어 있어 작가(문인) 못지않게 작품의 창작과 연구(문학)에 비중을 두는 의미를 담아내려 한 것입니다. 가장 고심했던 부분은 정관이었습니다. 연안문학회의 정관은 다른 문인단체와는 달리 세 가지 특별한 점이 있습니다. 첫째는 독립된 창작의 주체로서의 작가(회원)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