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3

스마트소설 <어떤 고백>

어떤 고백(告白)  나는 그만 사랑에 빠졌습니다. 아침마다 나가는 공원의 산책길에서 만난 사이이지만 난 아직도 그의 이름을 모릅니다. 다만 내가 이쪽 사잇길을 걸을 때면 그는 저쪽 보히니어(紫荊花-Bauhinia) 나무 사이에서 잠시 모습을 드러냈다가 사라지곤 합니다.그 모습을 잠시만이라도 볼 수 있을까 하여 나는 매일 아침 공원의 산책길을 서성입니다. 어떤 때는 황홀하게도 눈빛이 마주칠 때도 있습니다. 설레는 마음, 뛰는 가슴을 감춘 채 짐짓 무관심한 듯 모른척하며 그의 곁을 지나오나 고개 돌려 다시 돌아보고픈 마음을 억누르기 어렵습니다. 가끔 용기를 내어 뒤돌아볼 경우도 있으나 행여 그 맑고 청순한 마음에 뜨거운 나의 열정을 들키기라도 할세라, 혹 수줍음에 눈을 흘기고 다른 곳으로 가 버리지나 않을까..

소설 2025.01.11

유년의 수채화

월간 9월호(통권 408호)에 게재  유년의 수채화  1. 하굣길 나른한 한낮의 오후였다. 수업이 끝나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한 무리의 여자아이들이 재잘대며 코스모스 꽃길을 따라 앞서가고 있다. 나는 일정한 거리를 두고 앞선 아이들의 이야기에 때로는 공감하며 혹은 ‘그렇지 않은데...’ 하면서 혼자 중얼거리며 따라가고 있었다. 아직도 학급 친구들은 무슨 이유에서인지 나를 '양파'라는 별명으로 부르며 놀려대곤 했다. 더러는 짓궂게 구는 아이들도 있었는데 아마도 서울이라는 큰 도회지에서 온 피부가 희고 살결이 거칠지 않은, 종종 시골 아이들과는 다른 생각과 행동을 보이는 내가 조상 때부터 이곳에서 자연과 더불어 살아온 그들에게 낯설고 이질적인 존재로 보였기 때문인지 모른다. 그렇지만 몇몇 아이들은 선망의..

소설 2024.09.12

소설 미추홀 작품에 대해

서문 쓰게 된 동기 집 가까이에 있는 문학산 둘레길을 걸으며 인천의 어제와 오늘을 생각해 보곤 했다. 개항 과정이 순탄한 것만은 아니었으나 물밀듯이 밀려오는 새로운 문명과 문화에 조용한 아침의 나라는 다시 깨어나기 시작했고 복잡한 국제관계와 맞물려 외세의 격랑에 침몰하기도 했으나 이 과정에서도 민족혼을 일깨우는 지성의 목소리는 살아있었고 이러한 목소리가 문학의 꽃으로 피어나면서 국민을 계도하기도 했다. 그 현장이 바로 인천이었다. 어느 날 인천의 옛 이름인 미추홀을 떠올리며 처음 보는 오솔길을 따라 문학산 둘레길을 오르다가 문득 누군가 이 길을 처음 낸 사람은 한 사람이지만 처음 걷는 사람은 무수히 많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이 생각이 꼬리를 물면서 눈에 들어오는 송도신도시와 인천대교로 이어지는 영종도 국..

소설 2023.12.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