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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모에 따뜻한 마음으로 읽어보는 시 세 편

필그림(pilgrim) 2024. 12. 24. 00:17

< 첫눈이 내리는 날에>

 

가랑잎 바스락거림이 잠잠해지고

깊은 사색의 무거운 침묵이 머무는 거리에

첫사랑처럼 설레는 첫눈이 내린다

 

가로등 아래로 나풀거리며 내리는 눈꽃송이

반가움으로 내미는 손끝에서조차

눈물로 스러지는 순결한 영혼

하얗게 표백된 마음으로 오늘은

서로의 허물을 감싸고 용서하자

아니, 부끄러운 손 먼저 내밀고 용서를 구하자

 

바라는 소원만큼 많은 양이 아니어도

첫눈이 있기에 겨울은 아름답고

세상은 살아갈 만큼 훈훈하다

 

머지않아 매정한 바람이 불고 얼음도 얼리라

벗은 몸으로 겨울을 나는 가로수 곁에 서서

첫눈을 맞는 내 가슴은 얼마나 따뜻한가

 

<겨울바다>

 

무의도 바닷가에서

겨울을 보았다

삭풍이 휘몰아친 한파에

끝내 얼어버린 파도

 

어느 따뜻한 발걸음이

다녀간 것일까

언 몸을 녹이며 살아 숨 쉬는

조각난 바다

 

계절은 매정해도

생존은 언제나 치열한 것

서로 엉겨 얼어붙을 것인가

다 같이 녹아내릴 것인가

 

<크리스마스에 드리는 기도>

 

올 크리스마스엔

창가에 촛불 하나 켜 놓으렵니다

타는 촛불로 밤 지새워

지난날을 되돌아보며

메마른 가슴 눈물로 적시어

작은 소망의 기도를 드리렵니다

 

용서하소서

내가 가졌던 탐욕을

남에게 편협하며 이기적이며

마땅히 해야 할 일에

최선을 다하지 않은 태만함까지

다른 무엇보다 진실하지 못했음을

 

마음을 열고

새로운 눈으로 사랑하게 하소서

녹색의 작은 별

우리가 살아가는 아름다운 세계

이 땅에 태어난 누구나

맑은 영혼과 따뜻한 가슴을 지니게 하소서

 

기아와 질병과 전쟁이 없는

사랑과 평화가 가득한 세상

크리스마스에 오신 이의 마음처럼

녹아내리는 이 촛불이

소망의 빛이 되어

우리의 가슴을 채우게 하소서

시집 <풀과 별의 노래>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