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인문학 사랑방

동아시아 문학 산책

필그림(pilgrim) 2024. 1. 10. 11:36

동아시아 문학 산책

-한시(漢詩) 여성 문학 살펴보기-

 

() 동아시아는 지리적으로 중국과 몽골, 만주와 연해주, 한반도와 일본을 포함하고 있으나 정치, 경제, 문화적으로는 중국과 한국(북한 포함), 일본을 일컫는 뜻으로 쓰이고 있다. 이들 삼국은 혈통(민족)과 언어, 통치(국가)체계와 민속이 다르면서도 농경 생활을 기반으로 한 삶의 양식(樣式)과 한자로 된 문자의 사용, 유불선(儒佛仙)의 종교적 공통성을 함께 공유하며 오랜 역사를 이어왔다. 따라서 동아시아 문학이라고 하면 한글이나 가나(일본 문자)가 나오기 이전인 한자로 된 문학 특히 한시(漢詩)에 그 뿌리가 있기에 여기서는 한, , , 세 나라의 한시 문학 가운데 특별히 여성들이 쓴 작품을 비교해 봄으로써 같은 문자로 어떻게 다른 문화적 특성을 드러내고 있는지, 그리고 남성 중심인 가부장적 사회에서 여성 문학은 어떤 역할을 했는지 작품을 통해 살펴봄으로써 현대 동아시아 문학의 뿌리와 변천 과정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었으면 한다. 글쓴이의 생애와 삶을 깊이 조명해보는 것도 글 못지않게 큰 의미가 있으나 자료가 부족하고 지면의 제한도 있어 간략하게 소개한 것이 다소 아쉽기만 하다. 여기에 소개한 작품들은 송준호 저 <, , 일 여류 한시선>을 텍스트로 했으나 이미 알려져 있거나 번역에 차이가 있는 것은 현대시문학적 관점에서 원문의 뜻을 존중하면서 필자의 소견대로 가다듬었음을 밝히며 차후 연안문학회에서 동아시아 문학의 흐름에 대해서 더 깊이 살펴볼 기회가 있기를 바란다.

 

 

<한국> 고조선시대의 여옥(麗玉)이 쓴 공후인(箜篌引)이 가장 오래된 한시로 알려졌으며 삼국시대를 거쳐 고려시대에도 여성이 쓴 한시들이 전해지기는 하나 그 수가 많지 않고 조선시대에 이르러 걸출한 여성들의 빼어난 문장이 남성들 작품 못지않게, 또는 능가하는 수준으로 전해지고 있다. 이들 가운데 특별히 비슷한 시기에 활동한 신사임당과 허난설헌, 황진이의 글을 소개한다. 이들은 능히 우리나라를 대표할만한 명문장가로 신사임당은 현숙하고 고매한 인품을 지닌 대표적인 현모양처이지만 허난설헌은 고귀한 양갓집 신분이면서도 박복한 생애를 짧게 마감한 불운한 천재였으며 황진이는 비천한 기생 출신이지만 신분의 한계를 넘어 천부적인 재능으로 자신의 존재가치를 돋보이게 한 훌륭한 문장가로 세 사람 모두 오늘날까지 세인의 존경과 사랑을 받고 있다.

 

신사임당(申師任堂 1504~1551) - 사친(思親)

千里嘉山萬疊峰 천리가산만첩봉

歸心長在夢魂中 귀심장재몽혼중

寒松亭畔孤輪月 한송정반고륜월

鏡浦臺前一陣風 경포대전일진풍

沙上白鷺恒聚散 사상백로항취산

波頭漁艇各西東 파두어정각서동

那時重道臨瀛路 나시중도임영로

綵服斑衣膝下縫 채복반의슬하봉

 

천 리에 이르는 고향 산봉우리 겹쳐있는데

돌아갈 마음은 꿈속에서도 있네

한송정 물가에는 외로이 뜬 달

경포대 앞에는 한줄기 바람

모래 위 백로는 늘 흩어졌다 모이고

파도 머리에 고기잡이배는 이리저리 오가건만

언제쯤 강릉 길(임영로) 다시 밟아

색동옷 입고 어머니 무릎아래서 바느질할꼬

 

이 작품은 송준호(宋寯鎬) <한중일 여류 한시선>에는 3행의 孤輪月雙輪月로 나와 있고 5행의 白鷺白鷗, 6행의 各西東每西東으로, 那時重道何時重踏으로 그리고 綵服斑衣綵舞斑衣로 나와 있어 필자가 어려서 읽은 양주동(梁柱東, 1903~1977) 교수의 글(본문)과는 원문이 다르나 신사임당을 좋아했고 어머니를 그리는 글의 내용이 좋아 암송하고 있던 기억을 그대로 살려 실었다. 인터넷에 이 작품을 검색해도 저마다 문장이 조금씩 다르게 나와 이제는 본래의 원문이 어떤 것인지 구분이 되지 않을 정도이다. 그러나 신사임당이 표현하려고 한 글의 뜻은 너무나도 명확해서 글자 하나가 바뀐다고 해서 의미가 달라지거나 훼손되지 않는 것이 신기하기만 하다. 아마도 글의 구성과 전개가 치밀하고도 간결해 읽는 이로 하여금 눈앞에 보이는 듯 쉽게 이해되면서 공감하게 되는 탓이 아닐까 한다.

신사임당은 어려서부터 천품이 단아하고 영특한데다가 예술적 재능이 뛰어나 어머니와 외조부 이사온(李思溫)의 관심과 가르침으로 글과 그림에 능했으며 19세에 이원수(李元秀)와 결혼해 41녀를 두었다. 부부 사이의 금슬도 좋아 남편의 배려로 글과 그림에 힘쓰면서 친정인 강릉에도 종종 오가며 어머니를 봉양해 3남인 이이(李珥)도 강릉에서 낳았다. 이이는 사임당의 글재주를 이어받아 경세가이며 퇴계와 함께 조선을 대표하는 대학자가 되었고 장녀 매창(李梅窓)4남 우(李瑀)도 어머니의 재능을 이어받아 시서화금(詩書畵琴)에 능해 모두 당대는 물론 후대에까지 이름이 알려진 인물이 되었다.

 

 

허난설헌(許蘭雪軒 1563~1589) - 견흥(遣興)

梧桐生嶧陽 오동생역양

幾年傲寒陰 기년오한음

幸遇稀代工 행우희대공

劚取爲鳴琴 촉취위명금

琴成彈一曲 금성탄일곡

擧世無知音 거세무지음

所以廣陵散 소이광릉산

從古聲堙沉 종고성인침

 

오동나무 역산 남쪽에 자라면서

몇 해 동안 찬 그늘에도 오만하더니만

요행히 희대의 장인을 만나

깎고 다듬어져 잘 울리는 거문고 되었네

이 거문고로 한 곡조 타 보건만

온 세상에 알아주는 사람 없으니

이런 까닭에 *광릉산조도

옛날부터 그 소리가 묻혀버리고 말았구나

 

*광릉산조(廣陵山調) ()나라 죽림칠현의 한 사람인 혜강(嵇康)이 사형을 당하며 마지막으로 타 보고 죽었다는 노래.

 

이 글은 허난설헌 자신의 처지를 오동나무에 빗대어 쓴 것으로, 흥을 남긴다는 제목부터 글쓴이의 안목이나 사고의 폭이 예사롭지 않다는 느낌이 들게 한다. 오빠 성()과 봉(), 동생 균()과 함께 명문 가정에 태어나 여덟 살에 <광한전백옥상량문(廣寒殿白玉上梁文)을 쓸 정도로 글재주가 빼어났으나 김성립(金誠立)과의 결혼생활이 순탄치 않았고 딸과 아들의 죽음에 이어 복중의 태아까지 잃는 슬픔을 겪기도 했다. 이에 더해 아버지의 사망과 가장 친했던 오빠 봉()이 유배 중 객사하는 등 불행이 겹친 가운데 시댁과의 불화로 불행한 나날을 오직 글로 달래며 지내다가 꽃다운 나이 스물일곱에 생을 마감했다. 당호를 눈 속에 묻힌 난이 있는 집(蘭雪軒)으로 한 것도 모진 환경에서도 자신의 이성(理性)과 지조를 잃지 않으려는 의지의 표현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허난설헌의 유언에 따라 사후에 그의 글들이 모두 태워졌는데 다행히 동생 허균이 보관하고 있던 글들은 그대로 보존되어 오늘날까지 전해지게 되었고 허균과 친분이 있던 중국의 사신 주지번(朱之蕃)에 의해 중국에도 널리 알려져 현지에서 허난설헌집(許蘭雪軒集)이 간행되기도 했다. 중국의 열조시집(列朝詩集)이나 명시종(明詩綜) 시집에도 허난설헌의 작품이 여러 수 수록되어 있으며 일본에서도 중국에서 건너간 난설헌집(蘭雪軒集)이 간행되어 일본인들에게까지 널리 알려지게 되었다. 허난설헌 개인의 삶은 불행했어도 그녀가 남긴 글은 한국은 물론 동아시아의 소중한 여성 문학 유산으로 오늘날까지 우리들의 곁에 남아있으면서 생전에 받아보지 못한 사랑과 존경을 받고 있다.

 

 

황진이(黃眞伊 1506~1567) - 영반월(詠半月)

誰斲崑山玉 수착곤산옥

裁成織女梳 재성직녀소

牽牛離別後 견우이별후

謾擲碧空虛 만척벽공허

 

누가 곤륜산의 옥을 캐내어

직녀의 머리빗을 만들었을까?

견우와 이별하고 난 뒤에

쓸모없다 푸른 하늘에 던져버렸네

 

누군가 곤륜산의 옥을 캐내어 직녀의 머리빗을 만들어 주었는데 견우와 이별하게 된 직녀가 이제 이 옥으로 된 빗이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하고 하찮게 여겨 푸른 하늘에 던져버린 게 반달이 된 것이라고 읊고 있다. 생김새가 반달과 비슷한 빗을 직녀와 연계시키고 견우와 직녀의 전설을 인용해 사랑에 대한 가치가 옥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고귀하다는 암시는 담아낸 발상과 전개와 결말이 현대 시문학의 관점에서 보더라도 뛰어난 작품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황진이는 이름이 전해지지 않은 황씨 성을 가진 진사의 서녀로 태어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기생이 된 이유도 명확하지 않으나 어려서부터 천부적 재능을 타고난 것만은 분명한 것 같다. 단순히 예악에만 능한 것이 아니라 글과 경전에 다 능했으며 성리학에도 조예가 깊어 학문을 하는 선비들과 어울림에 조금도 뒤지지 않았으며 오히려 그들을 능가하는 실력으로 당대의 석학 화담 서경덕과 더불어 송도삼절로 불리기도 했다. 그러나 신분의 한계로 기록이나 평가에서 무시되거나 배척되어 정사에서는 그 이름조차 찾아볼 수 없고 오직 야사에 전하는 이야기와 작품들만 소수 전해지고 있다. 신사임당이나 허난설헌과는 달리 비천한 운명을 타고났으면서도 좌절하지 않고 주어진 자신만의 재능을 살려 감히 오르기 어려운 신분의 장벽과 남성 중심의 선비사회에서 당당히 자신의 존재가치를 증명한 황진이가 신사임당이나 허난설헌과 함께 조선시대의 3대 여성 시인으로 손꼽히는데 이의를 제기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중국> - 대개의 여성 한시가 그렇듯 중국도 여성의 일상적인 삶을 중심으로 감성적인 희로애락을 표현하는 작품들이 주를 이루고 있으나 중국의 경우 같은 소재를 다루더라도 수사가 화려한 편인데 이는 설화체(說話體-과장법을 포함해서)를 중시하는 중국 문학의 특성으로 공감을 끌어내기 위한 설득에 공을 들이는 탓이 아닐까 여겨진다. 중국은 인구가 많고 한자 문화의 종주국이기도 해 작품의 수도 많거니와 작가와 관련한 자료도 한국이나 일본보다 더 충실한 편이어서 작품을 이해하는 데 많은 도움이 되고 있다. 여기서는 시대와 작가의 신분을 고려해 세 작품을 뽑았다.

 

반첩여(班婕妤) - 환선가(紈扇歌)

新裂齊紈素 신렬제환소

皎潔如霜雪 교결여상설

裁成合歡扇 재성합환선

團團似明月 단단사명월

出入君懷袖 출입군회수

動搖微風發 동요미풍발

常恐秋節至 상공추절지

凉颷奪炎熱 양표탈염열

棄損篋笥中 기손협사중

恩情中途絶 은정중도절

 

제나라 흰 비단을 자르니

깨끗한 것이 서리나 눈 같아서

재단해서 합죽선을 만들었네

둥글둥글 밝은 달 같이

서방님 품이나 소매 속에 드나들면서

부드러운 바람을 일으키지만

가을이 오면 늘 두렵다네

서늘한 바람이 찌는 더위 거두어가면

상자 속에 담겨 버려진 채로

은혜와 정도 중도에 끊길 것이니

 

첩여()는 이름이 아니라 임금의 심부름을 도맡아 하는 궁녀를 일컫는 관직이다. 본명은 알려지지 않았으나 한나라 교위(校尉) 반황(班況)의 딸로 재능이 뛰어나고 시와 언변에 능해 궁녀가 된 다음 성제(成帝)의 총애를 받았다. 그러다가 후궁으로 들어온 *조비연(趙飛燕)의 질투로 소외당해 *장신궁(長信宮)에서 태후를 모시다가 쓸쓸히 생을 마감했다.

비단부채의 노래는 후에 원가행(怨歌行)으로 불리기도 하면서 중국은 물론 한국과 일본의 시인들에 의해 장신궁이라는 제목의 수많은 작품이 나오기도 했다. 부채는 여름철에 주인의 손에서 잠시도 떨어지지 않고 사랑을 받으며 애용되다가 서늘한 가을이 오면 쓸모가 없어 주인의 손에서 멀어지게 되고 마침내 상자 속에 갇히게 된다. 이는 마치 젊은 여인이 한때 사랑을 받다가 소외되어 버려지는 상황과 같다고 노래한 것으로 구성과 서술에 막힘이 없으면서도 성제에게 외면당한 자신의 처지를 비단부채에 빗대어 담아낸 재치가 돋보인다고 하겠다.

 

*조비연 본명은 조의주(趙宜主). 동생 합덕(趙合德)과 함께 궁녀가 되자 성제의 총애로 허황후를 내쫓고 황후(孝城皇后)의 자리에 올랐다가 성제 사망 후 폐위되어 자살했다.

*장신궁 장락궁(長樂宮) 안에 있는 태후의 전. 태후전에 딸린 다른 전각들도 여럿 있었으므로 태후에 대한 예우로 궁이라 높여 부르기도 했다.

 

 

양귀비(楊貴妃) - 증장운용(贈張雲容)

羅袖動香香不己 나수동향향불기

紅蕖褭褭秋煙裏 홍거요요추연이

輕雲嶺上乍搖風 경운령상사요풍

嫩柳池邊初拂水 눈류지변초불수

 

비단 소매에 나는 향내 그대로 가시지도 않고

붉은 연() 대궁 속에 가을 안개 낭창거리듯

뜬구름이 고갯마루서 잠시 바람에 나부끼거나

못가의 고운 버드나무가 처음 물에 스치는 듯하네

 

양귀비는 양원염(楊元琰)의 딸로 이름은 옥환(玉環)이며 당나라 현종(玄宗) 때 포천(蒲川)에서 태어났다. 타고난 미모와 예악에 밝아 황제의 아들인 모(-壽王)의 후궁 후보로 뽑혀 별장궁(別莊宮)에서 수련받던 중 현종의 눈에 들어 황궁으로 가서 황제의 총애를 받는 비가 되었다. 그러나 안록산(安祿山)과 사사명(史思明)이 일으킨 난으로 현종이 서촉(西蜀)으로 몽진할 때 군사들이 안록산과 관계가 있던 양귀비의 처형을 주장해 어쩔 수 없이 액살형(縊殺刑-목을 매어 죽임)을 내렸는데 이때 죽은 양귀비의 금낭(錦囊-비단 주머니)에서 이 시가 나왔다고 한다. 전란으로 사료가 유실되거나 부실한 탓도 있어 진위를 알 수는 없지만 대체로 양귀비가 쓴 것으로 보는 견해가 유력하다.

글의 제목이 장운용에게 줌인데 장운용은 양귀비의 시녀로 당시 유명한 악곡 춤인 예상우의무(霓裳羽衣舞-무지개색의 날개 달린 옷을 입고 추는 춤)를 잘 추었다고 한다. 그런 장운용이 춤추는 모습을 아주 세밀하게 관찰하고 생동감 있게 그려낸 솜씨가 일품인데 춤추는 손길을 따라 비단옷 소매 사이로 향내가 흘러나온다거나 붉은 연 대궁 속에 가을 안개가 가는 막대기에 달린 줄처럼 휘어지며 흔들리는 모습 같다는 표현, 뜬구름이 고갯마루에서 바람에 나부낀다거나 못가의 버드나무 가지가 처음으로 물 위를 스치는 모습을 보는 것 같다고 하는 등 화려한 수사적 기법이 뛰어난 작품이라 하겠다.

 

 

단숙경(端淑卿) - 모춘(暮春)

九十春光忒地來 구십춘광특지래

桃花帶雨點蒼苔 도화대우점창태

秪求結實辭枝去 저구결실사지거

不省芳時不易回 불성방시불역회

 

90일 봄날이 제대로 다 온 것인가?

복사꽃은 비 맞고 푸른 이끼로 얼룩졌는데

첫 열매 맺어 놓고 가지를 떠나가 버리니

꽃다운 시절을 되돌릴 생각은 아예 없는 것 같네

 

단숙경은 명나라 당도(當塗) 사람으로 천성이 고울뿐더러 두뇌가 명석하여 어려서부터 부친인 단정필(端廷弼)로부터 시경(詩經)과 열녀전 등, 많은 책을 익히며 자랐다. 단호유관(丹湖儒官)인 병유(丙儒)에게 출가하여 늙도록 금슬도 좋게 서로 존중하며 지내면서 마을은 물론 인근 지역 사람들로부터도 칭송과 존경을 받는 훌륭한 인품을 지닌 인물이었다.

이 작품 늦은 봄90(석 달)이 되어야 할 봄이 어느새 훌쩍 가버리고 얼마 남아있지 않은 상황에서 혹시나 이번엔 날짜가 짧은 봄이 온 것이 아닌가? 하는 발상이 기발하다. 그러면서 봄의 끝 무렵에 피는 복사꽃에 첫 열매를 맺게 하고선 서둘러 가지를 떠나니 꽃이 만발한 봄을 미처 느끼지 못한 아쉬움에 이 짧은 봄이 꽃다운 봄을 되돌릴 생각도 하지 않고 매정하게 가버렸다는 푸념으로 마무리했는데 막연한 언어가 아니라 자연현상에 대한 감성적이면서도 이성적인 언어로 전개한 글의 구성이 돋보인다. 유고집으로 자신의 호를 붙인 녹창시고(綠窓詩稿)’를 남겼다.

 

 

<일본> - 일본의 경우 여성의 한시 문학은 한국보다 훨씬 늦게 시작됐는데 이는 지리적인 여건상 한자 문화의 전달이 늦어진 탓도 있겠으나 그보다는 남성 중심의 사회구조에서 여성의 활동이 중국이나 한국보다 더 폐쇄적이었던 탓이라고 보는 게 옳을 것이다. 실제로 한국의 경우 고려시대부터 사대부 집안의 정숙한 부인들이나 관가의 기생들이 한시를 쓰는 일이 일상적이었던데 비해 일본은 17세기 초 에도시대(1603~1868)에 들어서서야 비로소 여성이 쓴 한시가 일반화되기 시작했다. 비록 중국이나 한국에 비해 뒤늦게 꽃핀 한시 문화로 양적인 면에서도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작품의 수가 적지만 질적인 면에서는 일본만의 독특한 전통과 고유한 정서를 통해 여성으로서 느끼는 섬세한 감성을 담아낸 우수한 작품들이 적지 않다. 여기서는 그러한 점을 고려해 시대의 구분 없이 작품성에 비중을 두고 세 편을 골랐다. 필자가 일본어를 모르는 탓에 한자로 표기된 인명과 지명을 텍스트에 있는 그대로 옮겨 적은 것에 대해 양해를 구한다.

 

복씨금영(卜氏金英) - 자화석류도(自畫石榴圖)

石榴貪結子 석류탐결자

己看蠟珠紅 기간랍주홍

爲避桃花妬 위피도화투

春風不入宮 춘풍불입궁

 

석류나무 열매 맺기에 애쓰더니만

제 붉은 진주알을 보게 되었네

복숭아꽃 질투를 피하려

봄바람에도 궁에는 아니 들어갔다네

 

복씨금영은 에도(江戶)시대 후기의 미농(美濃) 사람으로 이름은 국자(菊子), 자는 금영(金英) 또는 여화(女華)로 유학자인 시산노산(柴山老山)의 아내이며 그림을 잘 그리는 화가이기도 했다.

석류는 가을에 열리는 나무이다.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이 작품은 지은이가 자신이 그린 석류도를 보면서 그림 속의 석류나무를 의인화해서 대화하듯이 쓴 것이다. 이 글을 소개한 송준호 교수는 지은이가 왕실이나 권력가와 혼인할 수 있었던 계기를 스스로 거부하고 노산이라는 사람에게 출가한 것은 아닐까? 하고 추정하면서 당시 일본에서는 사군자와 더불어 고결한 여인의 상징으로 여겨지던 석류나무가 궁에 들어갔다면 봄바람에 꽃이 필 때 한껏 아름다운 자태를 뽐내는 매화나 복사꽃의 시샘을 받았을 터인데 그런 부류의 시샘이나 영화를 피하고 자신은 오히려 학문을 하는 노산이라는 사람을 택해 곧은 절개와 지조를 잃지 않으려 했다는 점을 드러낸 것이 아닌가 추측된다고 설명하고 있다. 사실 여부를 떠나서 지은이가 자신이 그린 석류도를 보면서 세상의 그 어떤 부귀영화보다 고고한 자신만의 품위를 잃지 않으려는 마음을 표현한 것은 분명해 보인다.

 

 

유소미(由小米) - 춘효(春曉)

春眠又是失鷄鳴 춘면우시실계명

一領紬衾覺暖生 일령주금각난생

芳草池頭夢醒後 방초지두몽성후

己聽門外賣花聲 기청문외매화성

 

봄 잠에 또 한 번 닭 울음소리를 놓치고

한 자락 명주 이불의 따스함에 취해 있다가

향기로운 풀 못 둑에 널린 꿈을 깨고 나니

문밖에서 꽃사세요소리가 들리네

 

유소미의 자는 찬경(粲卿)이고 호는 취죽(翠竹)이며 13세 때부터 시를 지었다고 한다. 이름이 소미(小米)인 것은, ()나라 명필이던 미불(米芾)의 아들 미우인(米友仁)이 옛것을 좋아하고 글과 그림에 능해 아버지와 함께 이름을 떨치게 되자 사람들이 미불은 대미(大米), 아들은 소미(小米)로 구분해서 불렀는데 유소미 본인이 지었거나 부친이 지어주었거나 이 미우인을 닮기를 바란 것이 아닐까 한다.

제목 그대로 봄날 동틀 무렵나른한 잠에 취해 첫닭 우는 소리를 듣고도 일어나지 않고 두 번째 우는 소리에도 명주이불의 보드랍고 따스한 촉감에 언뜻 일어나지를 못하다가 못 둑에 향기로운 풀들이 돋아난 꿈을 꾸고서야 깨어 일어나보니 문밖에서 꽃을 파는 사람이 꽃사세요를 외치는 소리가 들리더라는 내용의 시이다. 발상과 전개, 마무리가 사실이 그런지 지어낸 이야기인지 구분이 되지 않을 정도로 공감을 불러일으키는 좋은 작품으로 봄이 오고 풀이 돋아나고 꽃이 피어나는 이야기를 새벽잠에서부터 닭 우는 소리, 명주 이불, 연못가의 풀이 돋아나는 꿈으로 이어가다가 꽃사세요로 비약하면서 끝낸 기법이 돋보인다. 짜임새가 탄탄하고 텐션(tension)이 있으며 고운 정감을 지닌 지은이의 품성이 잘 드러나고 있다.

 

 

강마세향(江馬細香) - 효기(曉起)

長庚如李一星明 장경여이일성명

獨先啼雅繞砌行 독선제아요체명

知道夜來微雨過 지도야래미우과

芭蕉殘滴兩三聲 파초잔적양삼성

 

자두 같은 샛별 하나 그 별빛 아래

까마귀 울기 전 홀로 섬돌을 지나 거닐자니

알겠구나, 어젯밤 부슬비가 내렸던 것을

파초 잎에 남은 물방울 세 번 거듭 떨어지는 소리

 

강마세향의 본명은 요(), 혹은 다보(多保)라 하며 호는 상몽(湘夢) 또는 기산(箕山)이다. 이로 보아 세향은 자로 추정된다. 에도(江戶) 후기 기부현(岐阜縣)에서 강마난재(江馬蘭齋)의 장녀로 태어나 포상춘금(浦上春琴)에게 그림을 배우고 뇌산양(賴山陽)에게 시를 배웠다. 뇌산양으로부터 청혼을 받았으나 아버지의 반대로 일생을 독신으로 지내며 양천성암(梁川星巖), 소원철심(小原鐵心) 등과 사귀면서 백구사(白鷗社)라는 모임을 만들기도 했다. 시집 상몽유고(湘夢遺稿)를 남겼다.

새벽에 일어나서를 읽으면 마음을 차분하게 하는 정갈하고 그윽한 느낌이 든다. 이른 새벽에 일어나보니 샛별(장경성) 하나만 밝게 빛나고 있는데 아직 까마귀도 깨어나서 울기 전이라, 홀로 섬돌을 지나서 걷자 정원 한쪽에 심어진 파초 잎에 물방울이 남아있어 아하! 어젯밤에 비가 내렸구나! 하고 허리 굽혀 자세히 들여다보니 , , ’, 다시 천천히 , , 물방울이 떨어지는 소리가 들리더라는 내용이다. 요란스럽거나 화려하지 않으면서도 뭔가 생각의 깊이를 더하며 여운을 남기는, 지은이의 수사적 기법이 훌륭한 작품이라 하겠다.

 

 

<()> - 한시는 동아시아 문학의 뿌리이자 어머니이다. 여성 한시는 비록 남성 중심의 가부장 사회에서 제한적인 기능에 만족할 수밖에 없었으나 그 한계 안에서 남성을 품어 안고 남성이 지배하는 세상에 대해서도 여성 특유의 부드럽고 섬세한 감성과 언어로 감싸 안으면서 인간의 삶의 향상과 문화 발전에 지대한 공헌을 해왔다. 오늘날에 이르러 세상은 예전과는 다르게 넓어졌고 문화는 다양해져서 앉아서도 인터넷으로 세상 물정 다 살피며 모르는 언어는 자동번역기로 의사를 소통하고 글을 쓰고 싶으면 chat GPT에 맡기면 되는 세상이 되었다. 이런 세상에서 문학, 그 가운데 고리타분한 한시 문학이 뭐가 그리 대단한가? 하고 생각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문학은 단순한 지식이 아니다. 머리의 생각(思考)이 담기고 가슴의 마음()이 담긴 지식이다. 그러기에 문학은 인문학의 아버지이고 사회과학의 뿌리이며 자연과학의 원천이다. 이런 문학이 동아시아에서는 한시(漢詩)에 그 뿌리를 두고 있으며 여성들의 한시는 남성 중심의 세상에서 남성이 채우지 못하는 영역을 여성들만의 언어로 채워가면서 역사와 문화를 이어오게 했다는 점에서 그 족적을 더듬어 한, , 일 세 나라 여성의 한시를 간략하나마 살펴보게 된 것을 다행으로 생각하며 앞으로 동아시아 문학에 관한 더 좋은 글들이 <연안문학>에 계속 소개되기를 기대해 본다.

 

 

* 연안문학 창간호에 수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