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스기아왕의 기도>
학마을님!
자연의 이치는 정해져 있건만 사람들은 언제나 자기 기준으로 그것을 이해하려 합니다. 다소 늦게 오거나 일찍 오는 장마도 지구의 운행과 대류현상에 따라 오묘한 변화로 오고감을 알건만 거기에 대하는 인간의 준비와 마음가짐 또한 한결같이 늘 미흡함으로 같은 결과를 되풀이하곤 합니다.
님이 보내 주신 반딧불이의 소식과 함께 짐짓 우회적인 은근함으로 부탁하신 두 장의 디스켓은 메마른 가슴을 버거워하던 나에게 정감어린 우정을 촉촉하게 스미게 하면서도 가볍지만은 않은 넉넉한 무게를 느끼게 해 줍니다.
님을 위해 드리는 나의 기도는 오늘을 위한 것만은 아니랍니다. 님의 존재하심의 의미가 오늘의 소중함을 내일로 이어주는데 있다고 믿고 있기에 조금이라도 더 이 시대에 남아 계셔서 아름다운 빛을 내 주시기를 바라는 까닭입니다. 소멸되어서는 안 되는 반딧불이처럼 말입니다. 다만 나로서는 그렇게 해야만 한다는 가슴의 요청을 따를 뿐이며 그것이 옳다는 머리의 뜻을 존중할 뿐입니다.
학마을님!
오늘은 성서에 나오는 이야기 한 토막을 전해드리고 싶습니다. 열왕기 하(2 King's) 19장에서 20장에 나오는 유다왕국의 히스기야왕의 이야기입니다. 님의 종교관에 어떤 영향을 주고자 하는 뜻에서가 아니라 우주 안에서 영원한 시간의 극히 짧은 순간을 살고 스러질 뿐인 인간이 절대의 세계에 대해 마땅히 지녀야할 겸허함과 구도자적인 삶의 자세가 어떠해야함을 생각해봄으로써 우리가 바르게 지녀야할 마음가짐을 가다듬어보고자 할 따름입니다.
앗시리아의 왕 산헤립이 유다왕국을 침공하여 수도 예루살렘을 포위하고 있을 때였습니다. 솔로몬 왕 이후 남과 북으로 갈라진 유다와 이스라엘 두 왕국 중 북 왕국인 이스라엘은 이미 앗시리아에 의해 멸망되었고 남 왕국인 유다역시 히스기아 왕 재위 14년에 수도 예루살렘을 포위한 앗시리아에 의해서 언제 멸망될지 모르는 절박한 상황에 놓이게 되었는데 불행하게도 항전을 독려하고 있던 히스기아 왕이 병이 들게 되었습니다.
이 때 선지자 이사야가 왕을 찾아와 왕이 이번 병으로 죽게 될 것이라고 예언합니다. 강한 앗시리아 군대들에 의해 갖은 모욕과 시달림을 감내하며 버텨오던 왕에게 이 일은 너무나도 감당하기 어려운 시련이었고 야속하면서도 허무한 통고였습니다.
선정을 베풀어 오던 왕은 여호와 앞에 나아가 벽에 얼굴을 대고 무릎을 꿇은 채 기도를 드립니다. 나라가 누란의 위기에 처해 있는데 자신이 쓰러지게 된다면 예루살렘 성의 함락은 불을 보듯 뻔하며 결국 백성들은 가산과 가족을 잃은 채 노예로 끌려가고 말 것입니다.
자신의 대에 이르러 나라가 망하게 된다고 생각하니 왕은 참을 수가 없었습니다. 왕은 간절한 마음으로 여호와께 기도를 드렸습니다.
“'여호와여 구하오니 내가 진심과 전심으로 주 앞에 행하며 주께서 보시기에 선하게 행한 것을 기억 하옵소서”'
왕의 눈에서는 하염없이 눈물이 쏟아져 내렸고 억제하기 어려운 감정은 통곡으로 이어졌습니다.
하나님은 히스기아 왕의 기도를 들으시고 이사야를 통해 '네가 삼일 안에 병에서 나음을 얻을 것이요 앗시리아는 포위를 풀고 제 나라로 돌아갈 것이며 왕의 생명은 병에서 회복되어 여호와의 전에 나아가는 날을 기준으로 15년간 연장될 것이라'고 알려줍니다.
어려서 웃어른들로부터 지성이면 감천이요 정성이 지극하면 무쇠도 녹인다는 말을 들으며 자랐습니다. 우리의 심저에 배어있는 아련한 어린 시절의 정서가 이러할진대 성서에 나오는 이 이야기 역시 우리에게 감동을 전할지언정 비과학적이라고 거부하거나 외면할 사안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사람이 그 행위가 깨끗하고 마음이 거울처럼 맑을 수 있다면 뜻을 세워 하고자 하는 일이 이루어지지 않을 수 없을 것이라는 것이 우리 옛 어른들의 가르침이며 성서의 가르침이기도 할 것입니다. 내가 말하고자 하는 의도가 어떤 기복(祈福)신앙이나 신비적인 요행이 아님은 님이 이미 아실 것입니다만 깨끗하고 순결하게 가다듬은 가치관으로 후학들을 생각하며 내일을 염려하는 님의 고매한 뜻을 위해서라도 15년의 생(生)을 연장한 2천 6백년 전의 유대왕 히스기아의 고사를 기억하고 기도하는 나의 정성이 헛되지 않기를 또한 바라는 바입니다.
참고로 히스기아왕은 건강한 몸을 회복하였고 그의 수명은 15년 연장되었으며 유다왕국은 7대 112년을 더 내려가 BC586년 바벨론에 의해 예루살렘성이 함락되면서 멸망하게 됩니다. 이후 이들은 포로가 되어 바벨론으로 옮겨지며 세 차례에 걸친 귀환조처가 종결되기까지 142년 동안을 망향의 그리움을 안고 서러운 노예생활을 하게 됩니다.
유명한 베르디의 오페라 나부코에 나오는 포로들(히브리 노예들)의 합창은 바로 이러한 역사적인 사실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것임은 새삼 부연할 필요도 없을 것입니다. 덧붙여 내가 베오토벤 다음으로 대중적인 인기를 한껏 누렸던 베르디를 좋아하고 있음을 님에게 넌지시 알려드립니다.
학마을님!
님은 희망을 가지시기를 간곡히 바랍니다. 그리고 작은 인연이나마 삶의 굴레에서 다소의 여유를 얻을 수 있는 기회가 있다면 님과 마주앉아 익숙하지 않은 약주라도 한잔 나누며 문향(文香)이 배어나는 정감어린 이야기를 나눌 수 있기를 바래봅니다. 다만 속된 이야기라도 상관없으며 청려한 글귀 한 줄 귀를 씻고 듣는다면 이 또한 즐거움이 아니겠습니까?
내내 보중하시고 남이 보지 못하는 자연의 신비를 맑고 깊은 심상으로 헤아리고 다듬는 님의 글들이 샘물처럼 다함이 없이 솟아나기를 기원합니다.
Hong Kong에서
제우스 올림
* 학마을님의 -008- <장마가 시작되었습니다.>에 대한 회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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