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상록

명상록 <딸에게 주는 아침의 명상> 091

필그림(pilgrim) 2007. 11. 5. 00:42

<딸에게 주는 아침의 명상
          -091-


勢利紛華不近者爲潔 近之而不染者爲尤潔

(세리분화 불근자위결이오 근지이불염자 위우결이며)

知械機巧不知者爲高 知之而不用者爲尤高

(지계기교 부지자위결이오 지지이불용자 위우고하니라)
-채근담-


* 해설

권세와 명리의 화려함은 가까이 하지 않는 이가 깨끗하며 가까이 하더라도 물들지 않는 이가 더욱 깨끗하다.  권모와 술수는 모르는 이를 높다고 하나 알아도 쓰지 않는 이를 더욱 높다할 것이다.


* 생각해보기

학문에 깊이가 있고 인격이 고매한 사람들은 마음이 청빈하며 처신이 공정하다.  남의 눈을 의식해서 하는 겉치레가 아니라 깊은 내면적 수양이 생각과 행동을 진실하게 하고 그릇된 판단을 자연스럽게 절제하기 때문이다.

조선 중종 때 개성에는 이기론(理氣論)으로 유명한 학자 서경덕과 도학(道學)에서 서경덕을 능가한다는 지족선사라는 고승이 있었는데 하루는 황진이가 벗들과 어울려 담소하다가 ‘세상에 여자의 유혹에 넘어가지 않는 남자란 없다’고 운을 떼자 무리 중 하나가 이들 두 사람은 결코 유혹할 수 없을 것이라고 하였다.  이에 황진이가 두 사람을 유혹하여 시험해 보리라 하고 먼저 지족선사에게 제자가 되기를 청하자 지족선사는 속세의 아녀자를 가까이 함은 덕승(德僧)의 행위에 어울리지 않는다 하여 일언지하에 거절하였다.  황진이는 지족선사의 냉정한 태도에 훌륭하다는 생각을 하면서도 포기하지 않고 소복단장한 후 지족선사가 머무는 암자를 찾아가 지아비를 잃은 과부로 백일동안 불공을 드리겠다고 하여 선사의 옆방에서 기거하며 뛰어난 문장력으로 축원문을 짓고 청아한 목소리로 낭랑하게 망부가를 부르니 며칠 가지 않아 선사의 관심을 끌게 되고 끝내 삼십년 면벽참선하며 수도한 지족선사를 파계토록 하였다.

같은 방법으로 화담(서경덕)선생을 찾아 수학하기를 청하니 선생은 아무런 난색을 표하지 않고 승낙하였다.  며칠 공부를 핑계로 드나들다가 하루는 일부러 지체하여 날이 저문 후 아녀자가 밤길을 가기 어려우니 하룻밤 머물고 가겠다고 하여 선생의 침실에서 자기를 청하니 선생은 역시 허락하였다.  이 일을 빌미로 수시로 선생의 침실에서 자기도 하며 여러 가지로 유혹하였으나 선생은 목석과 같이 언제나 담담하면서도 태연자약하였다.

끝내 황진이는 선생의 인품과 학문에 크게 경복하고 선생을 유혹하려했던 전말을 고한 후 사죄하였으며 그 후 평생토록 진심으로 선생을 존경하며 따랐다.

비유가 적절할지 모르겠으나 학문이나 인격에 있어서도 프로와 아마추어의 차이가 있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결과적으로 지족선사의 경우 아무리 삼십년 면벽수행을 했다 하더라도 유혹을 가까이 하지 않는 아마추어의 수준을 벗어나지 못했다 할 것이며 화담선생의 경우는 가히 유혹에 물들지 않는 정신세계의 프로경지에 이르렀다고 할 것이다. 

유혹에 넘어가면 유혹의 노예가 된다.  유혹이 있다 하더라도 그 유혹을 절제할 수 있는 것이 진정한 양심의 자유이다.  권세와 명리의 유혹에서 자유로우며 권모술수를 알되 삼가며 사용하지 않는 절제를 지닌 사람.  오늘날 이러한 경지에 이른 사람이 과연 몇이나 될까?

비록 학문과 덕행이 선비나 군자의 수준에 이르지 못한다 하더라도 최소한 상식수준의 양심이라도 건전하게 지켜지는 사회가 건강한 사회요 필부라 하더라도 그러한 사람이 진정 사랑과 존경을 받을만한 훌륭한 사람이라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