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상록

명상록 <딸에게 주는 아침의 명상> 089

필그림(pilgrim) 2007. 11. 1. 00:09

<딸에게 주는 아침의 명상
          -089-


欲其中者 波沸寒潭 山林不見其寂

(욕기중자 파비한담하고 산림 불견기적하며)

虛其中者 凉生酷暑 朝市不知其喧

(허기중자 양생혹서하고 조시 부지기훤하나니라)
-채근담-


* 해설

마음에 욕심이 일면 차가운 못에 물결이 끓나니 산림에 있어도 그 고요함을 보지 못하며 마음이 공허하면 혹서(酷暑)에도 청량한 기운이 생기나니 저자에 살아도 그 시끄러움을 모른다.


* 생각해보기

사람이 탐욕이나 정욕에 눈이 멀면 주변의 만류나 충고도 아무 소용이 없고 종내 일생을 망치는 파국의 길을 쉽게 걷게 된다.  글자 그대로 눈에 뵈는 게 없게 되기 때문이다. 

아빠는 욕심이 모두 나쁜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긍정적인 면에서 보면 삶은 본질적으로 발전 지향적인 성격을 갖고 있으며 이는 욕심을 유발하지 않으면 실현하기 어렵다. 

심리학적인 면에서 보더라도 인간은 누구나 구조적으로 여러 가지 욕구를 갖고 있다.  생존과 종족보전을 위한 본능에 뿌리를 두고 있는 의식주에 대한 욕구와 성(性)에 대한 욕구, 자아실현을 위한 성취욕구, 그리고 여기에서 파생되는 명예욕, 권력욕, 소유욕, 지배욕 등 다양한 욕구들이 있으며 오늘날 우리가 누리고 있는 문명과 문화는 모두 인간이 지닌 이러한 욕구에 의한 소산이기도 하다.

그러나 욕구가 욕심이 되고 욕심이 과욕이 되며 과욕이 탐욕에 이르게 되면 그것이 재화(財貨)나 성(性), 또는 자아실현이나 다른 어떤 것에 관한 것이든지 결국은 돌이킬 수 없는 파국을 불러오며 개인의 일생을 망치게 하거나 집단의 몰락을 가져오게 하는 것이다.

이러한 인간의 기본적인 욕구가 모두 탐욕으로 귀결되는 것은 아니다.  유전적이거나 교육에 의해서, 또는 환경에 의해서 절제되거나 통제될 수 있으며 희망이나 이상과 같이 건전한 방향으로 진행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탐욕은 주체하기가 어렵다.  가히 연못의 물을 끓게 하며 산림 속과 같이 한적한 곳에서도 그 고요함을 느끼지 못하게 한다.  그러나 마음을 비우면 그 공허함으로 저자에 살아도 시끄러움을 모를 정도로 태평스러울 수가 있다.

마음이 탐욕에 물들기 전에 절제와 수양으로 과욕을 잠재우라.  종내는 공허한 마음으로 사물의 참 이치를 깨닫게 되고 스스로 고요하여 평온한 경지에 이르면 능히 세인의 존경을 받게 되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