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의 수필

작가의 수필 <세계를 놀라게 하는 나라>

필그림(pilgrim) 2007. 6. 1. 07:40

세계를 놀라게 하는 나라

 

 

2002531일부터 630일까지 세계의 이목은 아시아의 동쪽 해 뜨는 나라와 조용한 아침의 나라에 집중해 있었습니다. 이 기간에 전 세계 인구의 1/4이 관심과 흥분으로 월드컵 축제를 지켜봤다고 합니다.

월드컵 축제가 진행되면서 해 뜨는 나라는 꿈에 그리던 16강 진출이라는 소망을 달성하고 그쯤 해서 내일 다시 떠오를 해를 기다리는 동안 조용한 아침의 나라는 더 이상 조용할 수가 없었습니다. 온 나라가 발칵 뒤집혔기 때문입니다.

월드컵 진출 첫 승을 포함해 16강에는 꼭 들어야지 했던 것이 세계의 내노라 하는 강호들을 물리치고 연전연승으로 16강은 물론 8, 다시 4강에까지 올랐으니, 세계가 놀라고 우리 자신들도 놀라지 않을 수가 없었습니다.

당시의 상황을 살펴보면 이 기간에 신문과 방송, 인터넷 사이트 등 모든 뉴스매체에서는 이 행사의 진행과 결과를 시시각각 위성통신을 통해 온 지구상에 퍼트리고 있었고 사람들도 이 경기를 참관하고 지켜보기 위해 할 수 있는 수단과 방법을 다 동원해 경기장이나 TV를 찾아 손과 발을 부지런히 놀렸을 겁니다.

어디 손과 발뿐이겠습니까? 눈을 동그랗게 뜨고 귀를 기울이면서 보고 들은 것들을 입을 동원해 큰소리 작은 소리로 쏟아놓으며 온몸으로, 한마음으로 성원하며 어울리던 일, 지금도 돌이켜보면 아직도 가슴이 뛰는 흥분을 느끼는 분들이 아주 많을 것입니다.

어쨌거나 31일간 진행된 이 행사는 우주가 생성된 이래 지구라는 별에서 일어난 가장 큰 행사와 소동이었을 겁니다. 지축을 뒤흔든 발길과 몸짓들! 하늘을 울린 함성! 이 기간에 지진이 나지 않고 나르던 항공기가 추락하지 않은 게 천만다행일 겁니다.

해 뜨는 나라야 겨우 16강에 머물면서(사실 이 표현은 적당하지 않군요. 16강만으로도 대단한 성과니까요) 워낙 지진이 많은 나라라서인지는 몰라도 그렇게 발을 구르지는 않았으나 정말 조용한 아침의 나라에서는 아침이건 저녁이건 어른이건 아이 건 시간과 장소,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고 시끌벅적 요란법석이었으니까요.

! 분명한 건 동방의 조용한 아침의 나라, 그나마 반동강 난 나라에서 세계를 놀라게 했다는 사실입니다. 자타가 인정하는 강호 이탈리아가 얼마나 분통이 터지고 심통이 났겠습니까? 그 심정 충분히 헤아리고도 남을 것 같습니다. 스페인도 포르투갈도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원통하고 애통한 심정은 마찬가지였겠지요.

이탈리아는 여러분이 잘 아시는 대로 대로마제국을 건설했던 나라입니다. 르네상스 부흥 운동의 발원지가 되기도 했던 나라! 그 찬란한 역사와 문화유산을 지닌 나라로서 어디 동방의 조용한 아침의 나라를 안중에라도 두었겠습니까? 그것이 그만 반 토막짜리 작은 나라의 발길질 몇 번에 나가떨어지는 수모를 당했으니, 체면이 말이 아니었겠지요. 얼굴을 들지 못했을 선수들과 임원들이 궁색한 변명이라도 해야 했음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을 겁니다.

스페인 또한 대단한 나라가 아닐 수 없지요. 무굴제국의 후예로서 유럽의 한 축을 쥐고 흔들면서 화려한 세계사를 장식했던 나라, 세계지도를 펼치면 멕시코를 비롯한 중앙아메리카에서 남아메리카대륙까지 브라질과 가이아나, 수리남, 기아나(), 그리고 자잘한 섬나라 몇 곳을 제외한 광대무변(廣大無邊)한 대륙의 땅덩이를 지배하던 나라! 그 나라가 어찌 조용한 아침의 나라를 안중에 둘 수 있었겠습니까?

하지만 붉은 악마들의 함성을 뒤로한 채 우리의 태극전사들은 혼신의 힘을 다해 연장전까지 가면서 홍명보의 확인 슛으로 스페인의 무적함대를 끝내 격침 시켜버린 것입니다. 포르투갈도 비슷한 사정이었을 겁니다. 다만 16강에서 탈락한 채 어이가 없었던지 조금쯤은 점잖게 돌아갔습니다만 속으로는 예상치 않았던 결과에 대해 억울해하기도 하고 놀라기도 했을 것이라는 걸 우리는 충분히 짐작할 수 있습니다.

비단 우리에게 패한 나라만이 아니라 이것을 지켜본 모든 나라들이 우리나라에 대해 놀라게 된 사실을 우리는 우리 자신에 대해 먼저 놀라고 난 다음, 우리가 남을 놀라게 했음을 남의 눈을 통해 냉정하게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이 행사가 끝나고 이 행사에 대한 세계 여러 나라의 평가가 그것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그러나 여러분! 여기서 잠시 생각해 볼 것은 우리가 세계를 놀라게 한 일이 이번만은 아니지 않는가? 하는 점입니다. 가깝게는 물론 올림픽도 있었으나 그런 세계적인 큰 행사가 아니고 단지 국내 사정에 해당한 뉴스만으로도 여러 날을 두고 전 세계에 휴먼드라마의 감동을 전했던 일을 기억하실 겁니다. 바로누가 이 사람을 아시나요?’입니다. 이때도 물론 우리도 놀라고 세계도 놀랐을 겁니다. 아무도, 어느 누구도 감히 이런 휴먼드라마의 감동을 다시 만들어 내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봅니다.

사실 이것은 동서 이념의 대립이 가져온 한국전쟁이 원인이었던 것을 누구나 이미 잘 알고 있을 것입니다. 당시 제 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평화를 바라던 세계 여러 나라들은 한반도에서 일어난 전쟁이 다시 3차 세계대전으로 확전되는 것은 아닌가? 하고 놀란 눈으로 지켜봤을 것입니다.

우리로서도 정말 가슴 아픈 일로 나라가 뒤집히고 국토가 폐허가 되었던 일, 지금 폐허가 됐던 국토는 어느 정도 건강한 모습으로 새롭게 건설되기는 하였지만 아직도 민족의 상처는 치유되지 않은 가운데 말할 수 없는 아픔으로 우리 앞에 남아있습니다.

그런 비극적인 일이 아니어도 곰곰이 생각해 보면 우리가 자랑과 긍지를 가져도 좋을 만큼 세계를 놀라게 한 일들이 각 시대에 걸쳐 여러 분야에 산재해 있음을 쉽게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인류의 문자 문명의 획을 그은 금속활자의 발명이 서양의 그것보다 200년이나 앞섰다는 사실, 그리고 한 나라가 가진 고유한 문자 중 가장 과학적이고 독창적인 한글에 대해서 우리는 충분히 세계를 굽어볼 만한 자부심을 느껴도 좋을 것입니다.

한글의 경우 유네스코가 정한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어 있기도 한데 모아쓰기에 대한 어려움을 풀어쓰기로 전환하면 영어를 대체할 수 있는 국제적인 문자가 될 수도 있지 않을까? 하고 혼자 생각해 보기도 하지만 이것은 그저 한글을 자랑스럽게 여기는 평범한 사람의 꿈같은 희망에 불과하겠지요.

우리의 문화유산 가운데 세계의 문화유산으로 지정된 것은 비단 한글만이 아닙니다. 석굴암, 불국사, 팔만대장경, 창덕궁, 조선왕조실록 등 우리 귀에 익히 들어서 알고 있는 것들과 세계 어디에 내어놓아도 감탄을 자아내게 할 만한 신라 왕관이나 금동반가사유상, 고려청자, 조선백자 등 일일이 열거하자면 한이 없을 것입니다.

예술, 체육 분야에 관한 이야기도 역시 마찬가지입니. 지금도 국제무대에서 활동하고 있는 세계적인 지휘자와 피아노, 바이올린, 첼로의 연주자들, 성악가들을 비롯해 음악 분야가 아니더라도 미술, 무용, 비디오 아트 부문 등에서 알게 모르게 나라의 이름을 드높이고 있는 인재들이 수도 없이 활동하고 있습니다. 고도의 두뇌 싸움인 바둑도 그랜드슬럼의 위업으로 확고한 세계 제일의 위상을 확보하고 있으며 기능올림픽에서도 역시 세계 제일의 자리를 확보하기도 했습니다. 체육 분야에서도 손 기정, 황 영조 그리고 양궁이나 핸드볼, 탁구, 배드민턴 등의 신화창조 이야기, 태권도가 세계를 누비고 있음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며 최근에는 우리의 자랑스러운 여성들이 골프채를 휘두르며 세계의 그린필드를 누비고 있는 모습도 보고 있습니다.

국민의 힘의 결집(結集)이 큰 것으로 세계를 놀라게 했음도 적게 평가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4.19 의거는 순수 학생들의 불의에 대한 저항이 도화선이 되어 일어난 혁명으로 아마도 권력에 영향을 미치는 엘리트 파워(, 노동자, 학생)로서 학생이 일으킨 혁명으로는 역사적으로 최초가 아닌가 생각해 봅니다. 5.18 광주 의거와 876월의 민주화 함성도 잠깐이었을는지는 몰라도 이 사건을 통해 우리 국민의 결집력이 세계를 놀라게 한 것만은 사실일 겁니다.

여러분은 기억하십니까? 우리가 일어선다는 것은 쓰레기 속에서 장미가 피어나기를 기다리는 것보다 더 어렵다고 했던, 가난하고 부존자원도 없으며 변변한 기술도 없었던 나라! 그러나 우리는 폐허 속에서 기적을 일구어냈고 아직도 한강의 물줄기가 변함없이 흐르듯 세계를 놀라게 하는 일들을 지금도 멈추지 않고 계속하고 있습니다. 선박 생산량 세계 2, 자동차 생산량 세계 5, 반도체 생산량 세계 1.

조용한 아침의 나라! 하지만 가끔 세계를 놀라게 하는 나라! 우리는 아직도 충분히 세계를 놀라게 할 수 있는 비장의 카드를 하나 더 가지고 있습니다. 그것은 월드컵에서 보여준 이 뜨거운 함성이 조국 통일이라는 벅찬 감격으로 온 세계 곳곳에서 한 번 더 울릴 수 있도록 하는 일일 겁니다. 그렇습니다. 조국의 통일! 그것은 우리 시대의 마지막 과제일 것입니다.

우리나라의 민족적 특성은 평화와 너그러움이 배어있는 것이었습니다. 따라서 정당한 이유 없이 남을 공격하거나 전쟁을 일으키는 일이 없었으며 어려운 형편에 있는 이웃에 대해서는 늘 후한 인심으로 나누어주고 베풀기를 마다하지 않았습니다.

이것은 국가 간의 관계에서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여러분들도 이미 아시는 대로 우리는 강대국 중국으로부터 적지 않은 간섭과 시달림을 받으면서 때로는 강력하게 맞서서 대항하기도 하고 때로는 수모를 무릅쓰고 조공을 바치면서도 나라의 명맥을 잃지 않고 꿋꿋하게 지켜왔습니다.

이웃 나라 일본에 대해서는 우리의 문화를 나누어주기도 하고 가르치고 베풀기도 했으나(일본이 이것을 인정하든 말든) 그들을 대상으로 전쟁을 일으키거나 무기를 들고 침략하여 그들의 재산과 인명을 약탈하거나 살상한 일은 없었습니다.

이러한 우리 민족은 예로부터 동방예의지국이라는 칭송을 들어왔습니다. 물론 지금은 도시화, 핵가족화의 여파로 이 명예가 많이 퇴색되긴 했으나 아직도 설이나 추석에 민족의 대이동으로 표현되는 귀성 행렬이 이어지고 있는 것을 보면 세계에 유례가 없는 충효 사상이 건재하고 있음을 확인하게 됩니다.

21세기는 태평양의 시대이며 이 시대의 주인공은 한국이 될 것이라는 말을 우리 사회의 지도적인 위치에 있는 분들로부터 몇 차례 들은 기억이 납니다. 조금쯤은 정치적인 발언일 수도 있겠지요. 그러나 다시 한번 곰곰이 생각해 보면 전혀 터무니없는 말은 아닌 것도 사실입니다.

일본은 현재 경제 강국으로서 열강의 대열에 서서 과거 그들이 저질렀던 과오에 비해 넘치는 대접을 받고 있습니다. 그러면서도 피해 당사국인 주변 국가에 대해 아직도 오만하고 그릇된 인식을 바로잡지 못하고 있습니다. 아무리 잘 나가는 나라라 하더라도 주변 국가의 지지와 협력 없이 그 세력을 오래 유지하지는 못할 것입니다. 일본은 이미 경제적인 상승 국면을 지나 노령화 시대로 접어들고 있다는 주장을 펴는 이들도 있습니다.

만일 우리가 지혜롭게 나라의 앞날을 생각하며 통일을 앞당길 수 있다면, 그리고 지도자들의 각성과 전체 국민의 단결된 의지로 선진화를 앞당길 수 있다면 21세기 태평양 시대의 주역이 한국이 되지 말라는 법이 없을 것입니다. 우리의 기대는 다음 세대인 청소년들에게 있겠지요. 여러분들은 무엇으로 이들에게 꿈을 심어주며 나라의 주인만이 아니라 세계의 주인이 될 수 있도록 이들을 이끌어 줄 것입니까?

자랑스러운 나의 조국! 아름다운 금수강산! 더불어 사는 세계! 내가 먼저 아끼고 사랑하며, 가꾸고 보호하며, 이웃에 대한 너그러움으로 우리가 지켜오던 아름다운 미풍양속을 들이 잃어버리지 않고 지켜나갈 수 있도록 전해줘야 하지 않을까요?

이미 우리는 지난 과거의 역사에서 그리고 현재의 삶을 살아가면서 우리 자신이 놀라고 세계를 놀라게 하는 일들을 경험했습니다. 이제 앞으로 다가올 내일의 세계를 생각하며 국제사회의 일원으로서 우리가 무엇을 해야 하는지 헤아리는 지혜가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단순히 세계를 놀라게 하는 깜짝쇼가 아니라 서로를 이해하고 협력하는 가운데 우리가 지닌 고유한 문화와 정신적인 가치관으로 다른 나라의 존경과 칭송을 받는 나라가 되기를 간절히 바라고 또 바랍니다.

 

 

홍콩에서

Aug 01(Thu), 20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