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의 수필

작가의 수필 <커피한잔의 사색(思索)>

필그림(pilgrim) 2007. 6. 1. 08:01

<커피한잔의 사색(思索)> 

 

글 / 김 의중

(1) 부족함에서 얻는 행복

오늘은 침사추이에 있는 여행사에 들러 기간이 만료된 중국 비자의 연장신청을 하고 돌아왔습니다.  이층버스를 타고 숙소인 LAGUNA CITY에 도착해 아파트로 올라가기 전 PARK N SHOP(할인마트)에서 몇 가지 생활용품을 고르다가 ‘BONE CAFE’의 아메리칸 브랜드 커피를 발견하고 반가운 마음에 얼른 집어 들고 다른 물건들과 함께 계산을 마쳤습니다.

아파트로 돌아와 혼자서 하는 저녁식사를 마치고 커피봉지를 뜯어, 비어있던 모코나 커피 병에 아메리칸 브랜드를 옮겨 담았습니다.  진한 커피 향이 코끝을 자극하며 대뇌에 상쾌한 쾌감을 전해줍니다.

커피그라인더나 포트가 없어도 좋습니다.  냄비에 두 잔 정도의 커피를 만들 수 있는 분량의 물을 붓고 끓이면서 아메리칸 브랜드 원두를 작은 티스푼으로 다섯 번 담아 넣었습니다. 

굳이 두 잔 분량의 물을 부은 것은 두 잔의 커피를 타기 위해서입니다.  외로운 생활을 하고 있는 나를 위해 아내가 보내준, 고국에서 즐겨 사용하던 장미꽃무늬가 새겨진 부부용 커플 커피 잔에 커피를 두 잔 다 채우고 싶기 때문입니다.  지금 이 집안에는 나 이외에 아무도 없으니 사랑하는 아내와 함께 마주 앉아서 여유 있게 Coffee Break를 즐기는 기분을 낸다고 해서 누가 뭐라고 하겠습니까? 

또 남은 커피는 그 향기가 다 진하도록 음악과 함께 긴 시간동안 그리움을 반추하며 천천히 마셔도 좋을 것입니다.

즐겨 상용하는 인스턴트커피를 커피 잔에 각각 한 스푼씩 넣고 설탕과 프림을 적당하게 넣은 후 끓인 아메리칸 브랜드를 알갱이가 흘러 들어가지 않도록 티스푼으로 조절하면서 커피 잔에 따랐습니다.  커피 향이 실내에 가득히 퍼져나갑니다.

창밖엔 바람도 멈추고 어느새 어둠이 내린 도시의 빌딩들에서는 사연이 있는 불빛들이 반짝입니다.  아파트 창문마다 새어나오는 저 불빛들은 하루의 삶을 성실하게 마감하는 정감 있는 대화와 사랑의 눈빛, 감사와 평화가 깃 든 행복의 불빛일 것이라고 상상을 하면서 스카이라인으로 이어지는 산  언덕의 능선 위로 시선을 보냅니다. 
거기 반쯤 얼굴을 돌린 채, 도시의 불빛들과 해안을 굽어보며 떠있는 반달이 있습니다.  언제나 창가에 찾아와 홀로 사는 내 모습을 커튼사이로 기웃거리며 살피던 달빛입니다.  오늘따라 부산하게 움직이는 내 모습을 잔잔한 미소를 머금은 채 말없이 지켜보고 있습니다.

이 시간만큼은 참으로 행복합니다.  거실의 소파에 앉아 TV를 끄고 비발디의 사계를 CD플레이어에 넣으면서 음악과 함께 오랜만에 자신의 취향대로 오리지널 Pure Coffee인 아메리칸 브랜드의 진한 향을 음미해 봅니다. 

제대로 된 용기(容器)도 없이 절차도 생략한 채, 부족함 속에서 만들어내어 만족한 마음으로 음미해 보는 커피한잔의 행복!  인생에 있어서도 어떤 면에서는 모든 것이 완벽한 가운데서 얻어지는 행복보다 부족한 가운데서 얻을 수 있는 행복이 더 소중한 것이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2) 따뜻한 한잔의 커피


-때로는 따뜻한 한 잔의 커피가 한 끼의 식사보다 더 귀하게 그리울 때가 있습니다.-


젊은 날에 감명 깊게 읽었던 ‘어느 휴머니스트의 고백’이라는 책이 생각납니다.  주로 전쟁 중 전사했거나 포로, 또는 레지스탕스로 체포되어 감옥에 있다가 사형을 당한 사람들이 남긴 죽기 직전의 마지막 편지나 일기(日記)들을 수록한 책입니다.

그 책 속에 6.25전쟁에 파병되어 부상으로 죽어가는 어느 미군병사가 쓴 ‘따뜻한 한 잔의 커피와 침대를....’이란 글이 실려 있습니다.  아마도 1.4후퇴 때 부상으로 낙오되어 어느 민가(民家) 촌부(村婦)의 도움으로 동굴에 은신한 채 치료할 약도 없이 굶주림과 고통으로 죽어가는 병사가 마지막으로 고향에 보내는 편지에서

“....  지금은 다만 따뜻한 한 잔의 커피와 편하게 발을 펴고 누울 수 있는 침대가 그립습니다.”라는 말을 남긴 글입니다.

그렇게 차가운 이국땅에서 목숨을 버리면서까지 싸워야할 이념이 이 병사에게는 존재하지 않았는지도 모릅니다.  이 병사의 글에서는 어떤 사상적 이념이나 인생의 철학적인 깨달음의 묘사를 발견할 수 없습니다.

다만 허망하게 자신의 생명의 등불이 꺼져 감을 예감하며 고향의 부모와 형제들에 대한 못 다한 그리운 정(情)과 인간으로서 누릴 수 있는 지극히 평범한 일상의 작은 권리를 이야기하고 있을 뿐입니다. 

젊은 병사의 마지막 바램은 죽기 전 따뜻한 한 잔의 커피를 마시며 편안한 침대에 몸을 뉘어보고 싶은 것뿐이었으나 그는 그 하찮은 작은 꿈조차 이루지 못한 채 짧은 생애를 회한과 체념으로 낯선 이국땅에서 마치고 맙니다.

나는 지금 달빛이 스민 평화로운 이 시간과 공간에서 따뜻한 한 잔의 커피를 마시며 우리가 바라는 진정한 소망은 무엇인가 잠시 생각해봅니다.  어쩌면 우리는 평범한 일상에서 얻을 수 있는 기쁨과 행복을 외면한 채 과욕과 탐욕으로 허덕이며 고달프고 불행한 삶을 자초해서 살아가고 있는 것은 아닌지요?

우리의 일상에서 흔하게 대하는 커피한잔!  중요한 만남이나 깊은 사색의 자리에 늘 함께 하면서도 정작 자신의 가치와 인식에 대한 비중에서는 언제나 의미가 축소된 ‘다반사(茶飯事)’로 치부되는 커피한잔! 

때로는 건강이나 카페인을 들먹이며 마치 인간에게 해악한 존재라도 되는 것처럼 푸대접을 받기도 하는 커피한잔! 

그러나 그 한 잔의 커피가 인생의 종말을 맞는 누구에게는 열망(熱望)으로 추구하던 어떤 이념이나 천만금의 보석보다도 더 소중하게 그리워지는, 따스함과 평안함을 지닌 삶의 다정한 벗이 되기도 하며 기계문명과 황금만능의 사회에서 상실된 인간성(Humanism)을 회복해주는 귀중한 존재가 되기도 하는 것입니다.

이곳 TV에서는 최근 북한의 핵 개발 문제로 인해 한반도에서 정치적인 긴장상황이 형성되고 있는 점에 대해 해설을 하는 과정에서 지난달에 한국에서 미군 탱크에 깔려죽은 두 여중생의 죽음을 애도하는 촛불시위가 있었으며 이로 인해 한반도에서 반미감정이 비등하고 있다는 내용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따뜻한 한 잔의 커피를 아쉬워하며 낯선 이국땅에서 죽어간 미군병사의 피 흘림과 또 다른 미군 병사에 의해 저질러진 두 여중생의 허망한 죽음은 어제와 오늘, 그리고 사연 많은 이 땅에서 어떤 의미를 갖고 있는 것일까요?

어느 누구의 죽음이라 하더라도 당사자는 물론 가족과 친지들, 우리가 사는 사회에서 헛되지 않은 의미가 있어야하지 않을까요?

다만 이 시간, 따뜻한 한 잔의 커피를 음미하며 정치나 경제, 과학에 앞서 인간의 인간다움을 존중하는 진정한 휴머니즘이 더불어 사는 사회에서 사람들의 가슴마다 진한 커피향기처럼 따스하게 피어날 수 있기를 잠시 눈을 감고 기원해봅니다.



(3) 그리움의 갈증을 녹이며


아내와 나눈 첫 커피한잔은 세 번째의 만남에서였습니다.  저녁식사를 끝낸 후 서울시청 앞 광장의 서소문로 왼쪽에 있던 ‘메이어’라는 다방에서였던 것으로 기억하고 있습니다.  만남 자체가 결혼을 전제로 한, 친지의 소개에 의해 이루어진 것이었기에 아마도 대화의 내용이 가볍지만은 않았을 것입니다.

당시 나로서도 이미 마음의 방향을 정하고 있던 터라 차분하고도 진지하게 내가 가지고 있던 삶의 가치관과 이상(理想), 그리고 배우자에게 바라는 개인적인 기대 등을 가슴을 열고 시원스럽게 이야기했던 것 같습니다.

나중에 아내로부터 그 때, 때 묻지 않은 심성을 가진 사람이라는 인상과 함께 너무 완벽을 추구하는 것은 아닌가하는 얼마간의 부담스러움을 느끼기도 했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만 돌이켜 생각해보면 그 날 나는 한 잔의 커피를 비우는 동안 나름대로의 철학과 시(詩)가 담겨있는 가슴으로 아내에게 프로포오즈를 하지 않았나 생각되어집니다. 

잔잔한 미소로 고개를 끄덕이며 결혼에 동의한다는 아내의 의사표시를 확인하고는 힘차게 다방을 나와 우리 두 사람은 서로의 손을 잡은 채 어둠이 깔린 화려한 도심의 거리를 가로질러 명동성당까지 걸었습니다.

초가을의 이른 낙엽이 밟히는 성당 뜰에는 가로등 불빛사이로 달빛이 교교히 쏟아져 내리고 있었습니다.  우리는 조금 한적한 곳을 찾아 커다란 나무아래 놓여있는 벤치에 앉았습니다.  그리고 나는 아내에게 달을 가리키며 저 달이 내 친구라고 소개했던 기억이 납니다. 

당시 김 형석 교수가 쓴 수필집 ‘영원과 사랑의 대화’와 ‘운명도 허무도 아니라는 이야기’의 뒷부분에 어느 신부(神父)의 티 없이 맑은 사랑의 이야기가 실려 있었는데 거기에 나오는 신부가 나처럼 외로움을 지닌 사람이라는 것과 그 신부 역시 저 달을 친구로 삼았다는 이야기를 아내에게 들려준 것입니다.

달이 그리움인 것은 천체과학적인 논리로도 설명할 수 있습니다.  어쩌면 저 달은 지구의 일부였을지도 모르며 나무를 떠난 낙엽처럼 우주공간으로 떨어져나가 지구에 대한 그리움으로 주위를 맴돌고 있는 것인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지구가 달을 향해 앞모습 뒷모습을 다 보여주는데 비해 저 달은 언제나 같은 면으로 지구를 바라보고 있습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달의 뒷모습은 볼 수가 없습니다.

달은 자전을 하지 않습니다.  한 달 동안 지구를 한 바퀴 도는 공전이 곧 자전이 되는 셈입니다.  달의 모습이 변하는 것은 햇빛 때문입니다.  해의 입장에서 보면 달이 지구의 앞뒤와 양옆으로 이리저리 왔다 갔다 하기 때문인 것 같지만 달의 입장에서는 오매불망, 일편단심, 붙박이처럼 고정된 모습으로 지구만 바라볼 뿐 다른 곳으로 얼굴한번 돌리는 일이 없습니다. 

초승달에서 상현달 보름달, 다시 하현달 그믐달로 이어지는 변화는 달과 지구와 해의 삼각관계에서 생겨지는 현상일 뿐입니다.  달은 해의 사랑을 담뿍 받으면서도 그 사랑을 오직 지구를 향해 되돌릴 뿐 마음의 지조를 지키는 일에 아무런 변화가 없습니다. 

그러기에 달은 지구를 향한 영원한 그리움이며 불변의 페이소스(Pathos)입니다.  그러한 달이기에 사랑하는 사람들이 달을 두고 서로의 사랑을 맹세하는 일은 아름답고 순결한 일이 아닐 수 없을 것입니다. 

그 때의 달은 지금 저 하늘에 걸려있고 그 빛은 내 곁에 있습니다.  그리고 내 사랑은 멀리 바다건너에 있고 그리움은 이 가슴에 있습니다. 

한 잔의 커피로 그리움의 갈증을 녹이며 흐르는 음악의 선율을 따라, 아내와 함께 했던 시간들, 마주앉아 나누던 커피한잔의 아련한 추억들을 더듬어봅니다.

어느 봄날, 봄맞이 드라이브 길에 양평근교의 남한강변에 있는 꽤 규모가 크게 잘 가꾸어진 개인별장의 노천카페에 앉아 봄바람에 찰랑이는 강물을 바라보며 나누던 따뜻한 커피한잔! 

여름이 끝나는 저녁 무렵, 북한강변의 어느 토담집 카페에 앉아 노을을 바라보며 종업원이 틀어준 모차르트의 음악(혼 협주곡)에 취해 나누던 커피한잔! 

가을이 무르익은 산정호수의 호반을 군밤을 까먹으면서, 도란도란 이야기 뿌려가며 한 바퀴 돌고 난 후 호상(湖上)의 카페에 앉아 ‘사랑을 위하여’라는 노래를 들으며 나누던 커피한잔!

눈 덮인 산하를 굽어보는 한계령 고개 위에서 이리저리 눈 위에 새 발자국을 남기며 하얀 입김으로 겨울을 담아 마시던 종이컵에 담긴 그 뜨겁던 커피한잔!....

엊그제 손님들과 함께 클래식 라이브 뮤직 선율이 흐르는 침사추이 인터콘티넨탈호텔 커피숍에서 빅토리아 하버의 화려한 야경(夜景)을 감상하며 커피한잔 나누는 자리에서도 밀레니엄 첫해의 여행길에 아내와 함께 앉았던 그 자리를 두리번거리며 돌아보게 됩니다.

한 잔의 커피는 기다리는 그리움입니다.

사랑에 목마른 영혼에게는 타는 갈증이기도 합니다.

사색(思索)의 긴 그림자가 드리워진 갈색의 호수!

감미로운 음악과 사랑의 밀어가 스며나는 옹달샘!

아주 작은 미립자인 쿼크(Quark)와 빅뱅의 우주가 담겨있는 신비의 바다!

만남과 헤어짐, 희로애락의 인간사(人間事)가 거기 녹아 있으며 한숨 한번 내쉬며 잡아보는 커피 잔에는 미움과 원망과 아쉬움도 증발하는 향기처럼 사라집니다. 

달빛이 작별을 고하고 떠나간 시간, 음악도 깊은 침묵으로 눈을 감은 채 휴식에 잠겨있는데 비어 있는 커피 잔은 아직도 꺼지지 않은 외로운 전등아래 차갑게 이 밤을 지키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