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의 수필

작가의 수필 <남자의 뒷모습>

필그림(pilgrim) 2007. 6. 1. 07:24

<남자의 뒷모습>

 

글 / 김 의중

중국 선전(深圳)의 번화가인 화창베이루(華强北路)에는 전자상가들이 밀집해 있습니다. 햇살이 제법 따갑게 쏟아져 내리는 5월 초의 어느 날 거래처에서의 볼일을 마치고 서둘러 밖으로 나와 '로우(羅湖)'역으로 가는 차를 타기 위해 어느 빌딩 앞을 지나려는데 현지 공안원(경찰)이 길을 막고 다른 길로 돌아가라고 통행을 제한하고 있었습니다. 영문을 모른 채 땡볕아래 길을 돌아 육교가 있는 곳으로 가니 빌딩의 동쪽 출입문이 있는 곳에 사람들이 운집해 있고 공안원들이 그들을 접근하지 못하도록 줄을 치고 있었습니다. 사람들은 어느새 큰 무리를 이루었고 언제 왔는지 구급차가 멈춰선 곳에서 의료요원들이 서성이고 있었습니다. 호기심이 일어 군중들 사이를 비집고 육교위로 올라가 아래를 내려다보았습니다. 외국인으로 보이는 안경을 낀 중키의 깡마른 사내가 가방을 품에 안은 채 길거리에 주저앉아 있었고 의료요원 두 사람이 그 사나이를 부축하려 하자 사나이가 완강하게 저항하는 모습이 보였습니다. 

얼핏 상황을 추리해보면서 주변을 살펴보니 의료요원들은 구급차 주위에 소독장비를 손보고 있는 4명, 빌딩 앞을 가로막고 있는 2명, 사나이 옆에 2명으로 모두 8명이었으며 공안원은 처음 내가 가는 길을 막았던 곳에 2명, 빌딩 앞쪽에 4명, 내가 가고자 했던 방향에 2명, 그리고 길 건너편 쪽에 4명으로 무려 12명이 동원되어 있었습니다. 길거리에 주저앉은 사나이를 중심으로 꽤 넓은 공간이 통행제한을 위해 줄이 쳐져 있었고 이로 미루어 교통사고나 폭력사건으로 빚어진 상황은 아닌 것이 분명했습니다. 주위를 둘러보니 길가와 육교 위는 물론 빌딩의 창문마다에 사람들이 늘어서서 이 장면을 지켜보고 있었습니다. 공안원이나 주변 사람들에게 물어보려 해도 말이 통하지를 않으니 사건의 경위를 정확하게 알 수는 없었으나 이상하게도 그냥 발걸음을 돌려 돌아설 수가 없었습니다. 

조금쯤 여유를 가지고 계속 지켜보고 있노라니 대체로 상황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한창 ‘사스’파동으로 세계의 시선이 중국과 홍콩을 지켜보고 있는 상황에서 광동성 정부도 초긴장상태에 돌입해 있었는데 지금 이 장소에서 사건이 벌어진 것입니다. 사나이는 전자상가의 한 건물에서 볼일을 마치고 나다가 현기증을 느끼고 쓰러진 것 같습니다. 아마도 오한을 느끼면서 기침을 하기도 했던 모양입니다. 이것을 본 주변 사람이 재빠르게 당국에 신고를 했고 의료진과 공안원이 달려온 것입니다. 주저앉은 사람이 ‘사스’ 증세를 보였는지는 확실하지 않지만 의료요원들은 일단 그 사람을 의료시설이 있는 곳으로 데려가고자 했습니다. 만일 거기서 ‘사스’로 판정되면 곧바로 격리수용시설이 있는 곳으로 강제수용 됩니다. ‘사스’가 아니더라도 검사결과가 나오기까지 병균의 잠복기간 만큼 당국의 감독과 관리를 받아야 합니다.

나는 그 사람의 심정을 이해할 것 같았습니다. 만일 내가 지금과 같은 상황에 놓이게 된다면 나 역시 완강하게 저항했을 것입니다. 내가 메고 있는 작은 휴대용 가방에도 중국화폐를 기준으로 한다면 적지 않은 돈이 들어있기도 하고 돈보다 당장 홍콩으로 돌아가서 처리해야할 일이 한 두 가지가 아니며 그러한 일이 중단될 경우 가족과 회사, 홍콩과 중국과 한국에 있는 거래처들에 연쇄적으로 일어날 어려운 사정을 감안한다면 도저히 내가 하고 있는 일에서 잠시라도 손을 놓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의료요원들은 끈질겼고 사나이는 완강했습니다. 아마도 ‘사스’로 추정되지 않는 다른 질병이었다면 의료요원들이 강제로 사나이를 구급차에 태우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사스’일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 의료요원들의 행동을 신중하게 하도록 제한했습니다. 달래기도 하고 강제로 끌고 가려고 시도하기도 했습니다. 그때마다 사나이는 고개를 가로젓거나 팔을 휘둘러 뿌리치며 온몸으로 거칠게 저항했습니다. 그러다가도 의료요원들의 태도가 누그러진듯하면 가로수 나무에 기대어 주저앉은 채 나른해지는 몸을 추스르면서 가방을 끌어안는 모습이 참으로 안쓰럽기 그지없었습니다.

구경꾼들 틈에 가사를 걸친 젊은 스님의 모습이 보였습니다. 힐끗 쳐다보니 사나이를 내려다보는 맑은 눈동자에 측은지심이 가득합니다.  간간이 합장을 하기도 하고 법어(法語)를 외우는지 무어라 혼잣말로 중얼거리기도 합니다. 둘러선 사람들은 좀처럼 흩어지려하지 않았습니다. 결코 저렇게 오래 버티지는 못할 것이니 그 결말이 어찌 날지 좀 더 지켜보려는 생각일 것입니다. 나는 둘러선 사람들 사이를 빠져나와 ‘로우(羅湖)’로 향했습니다. 언제 나타났는지 또 다른 앰블런스 한 대가 요란한 사이렌을 울리면서 아까 그 장소로 향하는 모습이 보였습니다. 나는 ‘로우’에 도착하여 출입국 수속을 마치고 홍콩으로 돌아왔습니다.

 

성인으로서의 한 남자!  한 가정의 가장으로서 한 여성의 남편이며 자식들의 어버이이며 위로 부모를 모시고 있는 평범한 사나이! 직장에서의 상하관계와 수평적 동료관계에서도 자신의 입지적 변동요인에 전전긍긍하며, 외로움을 달래줄 친구들조차 순수가 사라진 퇴색된 우정을 숙명처럼 받아들이며 언제부터인가 자신의 목소리는 어디론가 증발하고 남의 눈치로만 인간관계를 유지하고 살아가는 사람! 무거운 다리로 직장을 오가며 힘겨운 어깨로 가정을 떠받치고 있으면서도 혼백은 어디에 두었는지 자신의 생각과는 다른 아내의 의견을 수용하며 따라야하고 자녀들의 철없는 요구를 거절하지 못하고 들어줘야 하며 부모를 모시고 있다면 적어도 불효자라는 소리를 듣지 않기 위해 노심초사하는 사람!

‘오늘은 정말 집에 들어가기 싫구나’ 하고 생각되는 날, 알량한 주머니 사정을 어림해보며 길거리 이곳저곳 기웃거리다가도 아내와 자식들 모습 번갈아 떠올려보고는 한숨한 번 길게 내쉬고 어깨 축 늘어뜨린 채 집으로 향하는 사람! 겉으로는 호방한 듯 큰소리치면서도 뒤돌아서면 꽁생원에 좁쌀친구가 되는 사람! 매사에 피할 수 없는 책임을 져야하는 자요 결정권자이면서도 자신을 위해서는 아무것도하지 못하는 사람! 되돌아와야 할 존경과 사랑 대신에 시대에 뒤떨어진 고집만 남아있는 무능한 존재로 쳐다보는 가장 가까운 사람들의 차가운 시선을 말없이 감내해야 하는 사람! 이것이 남자의 가려진 뒷모습이 아닐까요?

가족을 고국에 남겨둔 채 객지생활을 하는 남자들의 경우도 그렇습니다. 충분한 교육을 받았으며 직장과 사회에서 그만한 능력을 인정받고 선발되었거나 스스로 자원하여 나선 해외생활로 직장을 대표하거나 경우에 따라서는 나라를 대표하기도하면서 국경을 넘나들며 다양한 인종과 문화 속에서 한국인의 긍지와 자부심을 잃지 않고 살아가는 남자! 그러나 잔인하리만큼 치열하고 냉정한 국제경쟁사회에서 산 설고 물도 설며 언어와 관습이 다른 환경 속에서 갖은 고난과 역경, 외로움과 그리움을 견뎌내며 생활하는 사나이들의 뒷모습은 마치 추수가 끝난 들녘에 서 있는 허수아비처럼 공허하며 애처롭습니다.

오늘 길가에 주저앉은 남자의 모습이 나와는 아무런 상관이 없는 일이라고 외면할 수가 없습니다. 그것은 언제든지 나에게도 일어날 수 있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나도 작년 8월 경 중국엘 다녀오는 길에 더위와 피로에 지쳐 남의 시선 아랑곳하지 않고 어느 빌딩의 상가 앞에 잠시 주저앉았던 일이 있습니다. 만일 그 때 지금처럼 ‘사스’사태가 발생했다면 누군가의 신고에 의해 오늘의 저 사나이와 같은 신세가 되었을 지도 모릅니다.

남자의 뒷모습! 어느 남자라 하더라도 아내나 자식들이 자신의 뒷모습을 보는 것을 원하지 않습니다. 그것은 남자들에게 있어서 마지막 자존심이며 삶을 지탱하는 최후의 버팀목입니다. 어떤 남자이든지 자신의 나약하고 비굴한 모습은 뒤로 감추고 얼굴에는 온화한 미소와 자신감으로 치장합니다. 자신의 뒷모습을 들키는 것은 남자에게 있어선 치욕이며 비애이며 절망입니다. 남자라는 이름으로 서 있는 사람! 작게는 한 가정의 행복이, 크게는 국가의 경제발전과 국제경쟁력제고가 국내는 물론 해외에서 일하고 있는 이러한 뒷모습을 지닌 외로운 사나이들에 의해서 이루어지고 있음을 부인할 수 없을 것입니다. 가사를 입은 스님이 아니더라도 우리는 넉넉히 측은지심으로 그러한 남자의 뒷모습을 응시할 수 있을 것입니다. 남자의 뒷모습! 그것은 나의 모습이며 우리의 모습입니다. 우리가 사는 사회의 모습이며 이 시대의 모습인 것입니다.

아내들이여! 만일 당신이 진정 남편을 이해하고 배려한다면 그대를 향한 친절한 미소 속에 가려진, 남자의 뒷모습을 살펴주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사랑으로 그 초라한 뒷모습을 감싸주십시오. 오직 당신만이 사랑의 이름으로 그 아픔을 치료할 수 있도록 선택된 유일한 존재이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