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인문학 사랑방

가슴에 담아본 두 편의 시

필그림(pilgrim) 2022. 8. 28. 19:03

가슴에 담아본 시 두 편

 

지난 금요일 지연경 시인과 함께 노두식 시인을 만나 저녁 식사를 들며 정담을 나누었습니다. 노 시인의 열 번째 시집 ‘떠다니는 말’을 받은 감사의 인사를 전하며 제가 마종기 시인의 시를 좋아하는데 두 분의 시 세계가 비슷하다는 느낌을 받았다는 말씀을 드렸습니다. 개인적인 견해입니다만 두 분 다 사물에 대한 지적 인식이 높은 언어로 시를 쓰시지만 노두식 시인의 시에서는 지적 고뇌가 더 짙게 느껴졌고 마종기 시인의 시에서는 감성적 호소력이 조금 더 강하게 느껴졌습니다. 아래에 두 분의 시를 소개하며 여러분도 저와 같은 생각인지 궁금해집니다.

 

 

바람의 말

 

마 종기

 

우리가 모두 떠난 뒤

내 영혼이 당신 옆을 스치면

설마라도 봄 나뭇가지 흔드는

바람이라고 생각지는 마

 

나 오늘 그대 알았던

땅 그림자 한 모서리에

꽃나무 하나 심어놓으려니

그 나무 자라서 꽃피우면

우리가 알아서 얻은 괴로움이

꽃잎 되어서 날아가 버릴 거야

 

꽃잎이 되어서 날아가 버린다

참을 수 없게 아득하고 헛된 일이지만

어쩌면 세상 모든 일을

지척의 자로만 재고 살 건가

가끔 바람 부는 쪽으로 귀 기울이면

착한 당신, 피곤해져도 잊지 마

아득하게 멀리서 오는 바람의 말을

 

 

어둠 한 점

 

노두식

 

그때는 저 속 깊은 계곡의 물빛이

그토록 환하고 맑아 두견새가 울었던지

 

영상홍 지고도 한참

초록빛 무성한 기슭

발아래 밟히는 언제 적 고엽들은

썩기 위해 차라리 침묵하는가

 

피어나는 것 사라져가는 것들

광막한 꿈 위에 젖은 구름이 묻어

지우지 못한 상처가 무지개로 걸리네

 

땅 위에 떨구었던 그림자를 낚아채며

까마득히 날아오르는 멧새여

가두리해 놓았던 확신이 두 눈을 벗어나니

먼 날들 이제 와 이토록 왜소하고 간망하구나

의심으로 굳었던 그를 제쳐 홀로 웃자란

잠깐의 여유란 얼마나 허약한 농락이냐

 

마른 입술 관통한

가난한 이의 원망도 남의 계절을 품는 바람이어서

나는 마음을 고쳐먹고

누군가를 만나러 가는 깃털 같은 어둠 한 점을 당겨

맨손 엄지가락 끝에 공손히 올려 보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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