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의 시

<양수리의 가을날>

필그림(pilgrim) 2010. 10. 17. 00:10

<양수리의 가을날>


김 의중

하늘빛이 너무도 곱습니다.
격렬했던 계절의 사연들 갈바람으로 가다듬고
외로운 나그네를 기다리는 정갈한 빛깔이기에
겨울에는 그토록 하얀 눈이 내리겠지요.

낯선 곳 굽이돌아 흘러온 강물도
가슴 저미는 가을을 가져왔습니다.
분노도 원망도 잠재우고 소리 죽여 흐르는 물이기에
겨울에는 수정처럼 투명한 얼음이 되겠지요.

단풍잎도 은행잎도 떡갈나무도
농익은 제 핏줄의 빛깔로 두물머리를 물들입니다.
마지막까지 제 짝을 찾는 풀벌레울음소리
행여 누군가 나를 부르나 뒤돌아봅니다.

가슴이 아픈 날이면
죽어있던 그리움도 되살아납니다.
떼 지어 남으로 나는 철새들도 겨울의 끝에서
마침내 두고 온 양수리의 가을날을 기억하겠지요.

이 가을날에
내 마음도 짙은 계절의 빛깔에 물듭니다.
떠나야할 날을 위해
가을햇살 한 조각 깊게 물들이는 나뭇잎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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