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의 시

<청령포에 뜨는 달>

필그림(pilgrim) 2009. 7. 15. 09:06

<청령포에 뜨는 달>


김 의중

비인 배 적막한 나루터에 서면
바람결에 실려 오는
맑은 물소리
어둠속에 귀 기울이는 관음송(觀音松)1 위에
달빛이 창백하다

세월 더불어 주인은 가고 없어도
비련의 어린 임금 머물던 어소(御所)의 뜰
후인(後人)의 떨리는 손길로
울며 받들어 썼다는 단묘유지비(端廟遺址碑)2
이곳이 청령포(淸泠浦)3라고 적어놓고 있다

금표비(禁標碑)4 몇 글자에 갇힌 가련한 영혼
임 그리던 애절한 발자국마다
망향탑(望鄕塔)5 돌무더기 되어 쌓여있고
노산대(魯山臺)6 감돌아 흐르는 강물엔
외롭던 그림자만 검푸르게 깊이 잠겨있다

어린 님 여의고 차마 돌아서지 못해
강가에서 목 놓아 울던
충직한 사나이7 굵은 눈물이
지금 내 가슴에
저 강이 되어 여울져 흐른다

청령포에 뜨는 저 달은
그때의 사연들을 기억하고 있으려니
내 눈가에 어린 연민조차 안쓰러웠던가
관음송 수림지8위에 고요히 머물던 달
슬며시 구름사이로 얼굴을 가린다


1.  단종의 유배생활을 지켜보고 그 탄식소리를 들었다는 수령 600년이 넘는 소나무.
2.  전면에 ‘端廟在本府時遺址’(단종이 이곳에 계실 때의 옛터이다)
    후면에 ‘歲皇明崇禎戊辰紀元後三
癸未季秋 涕敬書令原營竪石 地名 淸泠浦’
   
(영조39년 계미년 가을, 울면서 받들어 쓰고 어명에 의해 원주감영에서 세웠다.
    
지명은 청령포이다.)
3.  강원도 영월군 남면 광천리 남한강 상류에 위치한 단종의 유배지.
    동, 남, 북 삼면이 강으로 둘러
쌓이고 서쪽으로는 험준한 육육봉 암벽이 솟아 있어
    나룻배를 이용하지 않고서는 출입할 수 없는
마치 섬과도 같은 곳
4.  ‘東西三百尺 南北四百九十尺 此後 泥生亦在當禁’
    (동서로 300척 남북으로 490척과 이후 진흙이 쌓여 생기는 곳도 또한 금지에 해당된다.)
5.  단종이 부인 정순왕후(定順王后)를 그리워하며 노산대에 오를 때마다 주변에 흩어진 돌들을 주워

     쌓은
6.  단종이 자주 올라가 한양을 바라보던 층암절벽
7.  의금부도사 왕 방연.  단종에게 사약을 전하고 돌아가는 길에 비통한 심정으로 이래의 시를 썼다.

    ‘천만리 머나먼 길에 고운님 여의옵고

    내 마음 둘 데 없어 냇가에 앉았으니

    저 물도 내 마음 같아서 울어 밤길 예놋다.’
8.  단종의 유배처를 중심으로 수백 년 거송들이 절 하듯 둘러서있는 수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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