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의 시

<지리산자락의 겨울밤>

필그림(pilgrim) 2009. 12. 12. 17:31

<지리산자락의 겨울밤>

김 의중

첫눈이 쏟아져 내리는 고속도로를 뚫고나와
따스한 햇살 정겨운 지리산자락에 닿았다.
가랑잎 두텁게 덮인 흙 사이로
낯선 풀들이 얼굴을 내밀고
장대보다 높이 자란 빽빽한 대숲이
뜻밖의 방문객에 놀란 듯 소란스럽다.

외진 산방엔 노스님 고고(孤高)한 구도자의 꿈
다락방 창가에서 하늘을 펴고
도시에서 가져온 사람 사는 이야기보다
산새소리가 더 조리 있고 정겹다.
한 장 창호지로 닫은 토방의 따뜻한 온돌은
땅거미가 지는데도 길손을 보내려하지 않는다.

마음 씻는 청풍(淸風)이야 어느 산자락엔들 없으랴
아직도 얼지 않은 계곡물소리 명징한데
감나무 마른가지 끝에 달린 철 늦은 홍시
홀로 남아 천명(天命)을 헤아리고
칠흑 같은 어둠속에 빛나는 밤하늘의 별자리들
묵언수행으로 산방의 겨울밤을 지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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