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의 시

<여의도의 저녁노을>

필그림(pilgrim) 2008. 11. 23. 22:39

<여의도의 저녁노을>


김 의중


지는 해가 제 심장을 녹여내어

빈 하늘을 채우고 있다.

강물은 말없이 붉게 물든 하늘을 담아 흐르고

밤섬과 선유도를 날아오르는 철새들은

타는 노을 속에서

떠나야할 시간과 거리를 어림해본다.


빌딩의 숲 사이에 그늘진 나무들은

살아온 만큼 아름답고

강 둔치에서 종종거리는 비둘기들은

살아가야할 만큼 서로가 그립다.

흐르는 강물은 6백년 세월을 서쪽으로 밀어내고

시간을 산 유람선은 동쪽을 거슬러 떠다닌다.


누구는 종이위에 노을을 담고

어떤 이들은 강바람과 깊은 이야기를 나누는데

나는 경건한 구도자가 되어

생각하는 것들을 가슴에 아로새긴다.

저만치, 겉보기에 조용한 국회의사당

그 안에선 언제나 시끄러운 소리가 끊이질 않는다.


늘 보던 모습으로

이맘때쯤 낯익은 별들이 찾아오고

노을은 함께 가자고 내 손을 잡아끈다.

세월의 무게가 버거운 나는

아쉬운 미련에 느린 걸음으로

오늘도 그림자만 먼저 보낸다.


한강이 낳고 서울이 길러낸 여의도

황혼에 물든 네 모습이 이토록 황홀한데

이 저녁노을이 지면

거리의 어둠 또한 아름답지 않으랴

작별을 고하는 노을은 나에게

사람이 아름다워야 도시가 아름답다고 일러준다.

'작가의 시' 카테고리의 다른 글

<솔밭공원에서>  (0) 2009.07.06
<순례자>  (0) 2008.11.29
작가의 시 <그냥>  (0) 2007.11.18
작가의 시 <가을단상(斷想)>  (0) 2007.09.28
작가의 시 <고요한 아침의 나라>  (0) 2007.07.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