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향(文香)에 취하여>
글 / 제우스
동면(冬眠)에 비할 것은 못되지만 봄꿈에 취해 지낸 2주간이었습니다. 아내는 이곳에 도착하자마자 연이어 초대된 디너파티와 만찬 등에 어리둥절한 모습으로 참여한 흥분 때문인지 숙소에 머물러 있기보다 바깥 세상에 나들이하기를 더 좋아했습니다. 우선 지리에 익숙하도록 배려해 가면서 숙소에서 가까운 지역부터 나들이를 시작했습니다.
아파트 단지 안에 있는 상가에서 생활용품을 구매하는 일, 버스와 MTR(전철)을 이용하는 방법, 그리고 가까운 전철역인 람틴(藍田)역의 화려한 지하상가와 번화가인 침사추이의 복잡한 골목길, 문화광장과 해변을 따라 이어지는 Avenue of Stars의 연인의 길, 홍콩 섬이 건너다보이는 하버 뷰(Harbour view)의 장엄한 파노라마와 오션 센터(Ocean Centre)의 끝이 안 보이는 백화점 진열장들, 패스티발 플라자(Festival Plaza)의 지하와 지상으로 연결되는 어지러울 정도의 복잡한 에스컬레이터들과 그랜드 센추리 플라자(Grand Century Plaza)의 방사형 연결통로와 서민의 삶이 질펀하게 늘어선 몽콕(旺角)의 재래시장 등....
국경을 넘어 중국에도 다녀왔습니다. 외형적으로는 홍콩에 버금가는 센젠(深?)과 둥관(東莞), 광조우(廣洲)의 도시 모습이지만 문화의 수준과 경제력, 질서의식은 아쉽게도 한참 아래라고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다만 물가가 싸고 생활수준이 낮은 관계로 이 도시들에서는 홍콩 생활비의 반의반만으로도 부족함 없이 여유 있는 생활을 할 수 있습니다.
아내는 이제 어느 정도 자신감이 드는지 다른 사람의 안내 없이 숙소의 단지 안에 있는 상가나 가까운 아케이드에 내려가 쉽게 쇼핑을 하기도 합니다. 불편한 의사소통을 어떻게 하고 있는지는 몰라도 신통하기 짝이 없는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물론 가기 전과 다녀온 후 이것은 어떻게 하고 저것은 또 어떻게 하는지 마치 초등학교에 갓 들어간 어린아이처럼 묻는 일을 멈추지 않지만 말입니다.
모처럼 시간을 내어 수필마당에 들렀습니다. 봄꿈에 취했던 탓인가? 이번에는 참으로 풍성한 좋은 글들에 다시 취하고 말았습니다.
올리신 분들의 글을 모두 다 읽지는 못했지만 학마을님, 박 0연님, 푸르뫼님, 정 난초님, 날으는 갈매기님, 쭈니님, 유 0찬님, taxi3826님 등 반가운 분들의 글을 우선 읽었고 사비나님, 치자꽃향기님, 햇살님, 산 정화님, 桃花님의 글들을 새삼 보석을 발견한 느낌으로 읽었습니다.
트루니에님, 오 0훈님, 팬던트님, 바다사랑님, 참빛님의 글들도 마음의 성원을 보내면서 잘 읽었습니다. 지난여름 휴가기간 중에 수필마당의 글들을 탐닉했던 감동이 되살아나는 느낌이었습니다.
참으로 흐뭇하고 풍성한 글 잔치에 초대된 느낌이 아닐 수 없습니다. 특별히 산정화님의 ‘수필이란’ 글과 바다사랑님의 ‘시를 왜 쓰는가.’라는 글은 작가의 입장에서 나름대로 글을 사랑하며 문학이 지향하는 세계를 이해하면서 자신이 생각하고 있는 바를 성의껏 표현하고자 한 좋은 시도라고 칭찬을 아끼지 않을 수 없군요. 수필마당을 빛내는 귀한 글을 올려주심에 감사를 드립니다.
아쉬운 점도 눈에 띕니다. 학마을님의 '과즉물탄개'에 대해 댓글을 올리신 피아노님의 글을 읽으면서는 사회생활에서 필요한 예절이 수필마당에서도 최소한의 기본적인 상식으로 지켜졌으면 하는 바램을 떨쳐버리지 못했습니다.
제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학마을님의 ‘과즉물탄개’라는 글이 어떤 특정인을 염두에 두고 쓴 글이라고는 생각되지 않습니다. 학마을님의 글을 계속 정독하고 있는 독자의 한사람으로서 글 쓰는 분의 취향과 사고의 세계를 어느 정도 이해하고 있기에 그 분의 글이 작금의 시대와 세태에 대한 경고와 아포리즘(Aphorism)으로 씌어 진 것이지 어떤 특정한 개인의 행위를 빗대어 쓴 것이 아님을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피아노님이 올리신 글의 서두에 표현하신 ‘건방지지만...‘이라는 단어에 대해 저는 댓글을 올리는 일은 누구에게나 건방진 일이 될 수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다만 그 내용이 건방진 내용을 담고 있다면 어쩔 수 없이 건방진 글이 되긴 하겠지요. 문제는 글을 쓰는 사람의 마음이 건방지냐 아니냐를 생각해야 할 것입니다.
또 학마을님의 글에 대해 교만스러운 어투가 많다는 느낌이 든다고 하셨는데 이는 극히 주관적인 견해이며 글의 내용을 잘 이해하지 못하는 때문이 아닐까 조심스럽게 짐작해 봅니다. 아마도 이 부분에 대해서는 피아노님이 학마을님께 정중하게 사과를 드리는 것이 옳을 것입니다.
학마을님이 올리신 ‘과즉물탄개’가 그 내용과 서술의 방법에서 종전에 올리시던 글과는 달리 상당히 강한 문체(vigorous style)와 문맥(context)으로 구성되어지긴 했어도 이것이 상대를 깔보는 교만한 글이라고 단정할 이유가 될 수는 없는 일입니다.
이미 학마을님이 댓글로 해명을 하신 일이지만 남의 글을 읽고 그 느낌이나 생각을 표현하는 일은 인간의 기본권에 속하는 표현의 자유와 열린 공간의 특성상 나무랄 데 없는 일이며 수필마당의 성격상 오히려 권장사항에 드는 일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초두에 말씀 드렸듯이 다수가 공유하는 열린 공간에서 상대의 글을 폄하하거나 무례를 범하는 일은 상식선에서 삼가야할 일이겠지요.
어쨌거나 수필마당이 예전보다 더 풍요로워진 느낌은 지울 수 없습니다. 다만 발길이 뜸한 다정한 분들의 안부와 그 분들의 손길로 쓰여 진 가슴에 남는 귀한 글들이 그리워짐은 나만의 생각은 아닐 것입니다. 긴 동면의 끝에서 기지개를 켜는 봄의 화사함처럼 수필마당이 언제나 풍성한 삶의 흔적과, 지성과 사랑의 문향(文香)으로 가득 채워지기를 간절히 기원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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