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신(보낸 글)

서신(보낸 글) 011 <더 좋은 제안>

필그림(pilgrim) 2007. 6. 11. 19:46

<더 좋은 제안>



허!  참!...

정말이지 제우스는 더 난처하고 난감하게 되었습니다.  삼가야할 곳을 온 것도 아닌데....  너무 늦은 탓인가?  그리움이 지나쳤던 것일까?  어쩌다 그만 그토록 맑은 샘물을 흐리게 만들었을까?

정말 가까이 다가설수록 더 멀어지는 님일까?  산장을 찾아오는 가슴마다 사랑과 그리움 담뿍 담겨있건만 산장을 지키는 학은 어찌하여 그 고운 목 길게 뽑고 제 둥지 비울 생각만 하고 있을까?

학은 텃새가 아니어도 저 머물던 곳을 기억하고 다시 찾으며 맹물이든 흐르는 물이든 모든 물이 샘에서 발원함을 모르시지는 않을 텐데.... 

짐짓 나그네란 본향을 떠나 여정(旅程)에 있는 사람이어늘 객을 위해 머물 곳을 공들여 건축하는 이를 어찌 나그네라 하리요. 

오늘 갈급함으로 찾아오는 이들에게 사랑이 담긴 가슴을 건네며 내일에 오실 손님을 위해 더욱 정갈하게 하늘을 담아내는 님!

반딧불이, 길잡이, 등불, 맑은 샘, 고고한 학, 청정무구한 한줄기 자연의 바람과 같았던 님!  정녕 그 모습, 그 하는 일을 상큼한 즐거움으로 계속 지켜볼 수는 없을까?


제우스는 어제 마음이 무척 무거웠답니다.  한국에서 오신 두 분 손님과 중국에서 오신 두 분을 안내하여 얄팍하고 각박한 상담을 긴 시간동안 신경을 곤두세운 채 해야 했으며 회의실에서 도시락을 주문하여놓고 프로젝션을 통해 브리핑되는 사항들을 체크해가면서 몸도 마음도 고달프기만 한 이야기들을 눈치를 살피며 헤픈 웃음으로 맞장구치면서 나누어야 했으니까요.  긴장을 늦출 수 없는 상황은 퇴근 후까지 이어졌답니다.  접대를 소홀히 할 수 없는 손님들이었기에 말입니다.

하지만 그보다는 출근길에 열어본 학마을문학산장 소식 탓이 컸을지도 모릅니다.  그래요.  언제나 느끼는 일이지만 몸이 아픈 것 보다 마음이 아픈 것이 더 영혼을 고달프게 합니다.

어쩌자고 학마을님은 말도 안 되고 글도 안 되는 의논을 하자고 하신 건지....


다소 구차스러운 항변이 될는지는 몰라도 우선 몇 가지 사항에 대해서 분명히 하고 싶은 것이 있습니다.

어느 것이 올바른 것인지 어떻게 하는 것이 아름다운 것인지를 밝히기 위함입니다.  이에 대한 제우스의 생각은 아래와 같습니다.


1.  학마을문학산장의 의미와 주인의 역할

문학의 이름으로 인터넷 열린 공간에서 단 한곳만이라도 꼭 있었으면 했던 순수(純粹)와 격조를 지닌 공간!  그것을 학마을님이 개설하셨습니다. 

헌데 주인이 객을 청해놓고 주인의 자리에 앉으라고 강권한다면 님의 경우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비록 보잘것없는 제우스지만 지켜야할 도리와 버려야할 무모함이 무엇인지쯤은 제법 구분한답니다.  명철한 판단력을 지니신 님께서 역지사지(易地思之)의 뜻을 곡해하지는 않으시겠지요? 

주인은 주인으로서의 역할이 있어야하고 객은 객으로서의 도리가 있을 것입니다.  이것이 원칙이며 질서입니다.  주객전도(主客顚倒)라....  더러는 그런 경우가 있기에 생긴 말이겠으나 ‘필부의 기원’을 가슴에 새기고 있는 제우스는 꿈에라도 그런 일에 휘말리고 싶은 생각이 없답니다.

주인이란 호칭이 불편하다고 하셨는데 제게 보낸 메일에서는 호칭이야 아무려면 어떠냐고 분명히 말씀하셨습니다.  심지어 비속어라도 마다하지 않을 것이라고 하신 말씀 설마 잊지는 않으셨겠지요?

하지만 님을 사랑하고 존경하는 뜻에서 굳이 원하지 않으신다면 그냥 종전대로 ‘학마을님’으로 불러도 무방하지 않을까요?

학마을님은 좋든 싫든 결자해지(結者解之)의 책임을 지셔야할 것입니다.  주(主)와 객(客)이 다함께 도리를 지키며 진과 선과 미를 가꾸어 가는 학마을문학산장이 되기를 진심으로 바라고 또 바랍니다.


2.  학마을문학산장에 대한 기대

아마도 이곳을 찾은 분들과 또 찾아오실 분들의 바램도 저와 같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만 제우스는 학마을문학산장이 더 나은 세계를 지향하는 글과 마음의 수련장이기를 바라며 내일을 생각하는 꿈과 이상을 심는 곳, 후학들을 위해 길을 열어주며 우리가 지녔던 버릴 수 없는 우리의 혼이 담긴 소중한 가치관을 전해주는 공간이기를 기대합니다.  그리고 마음과 마음의 따뜻한 교류가 있는, 더불어 동고동락하며 이해와 사랑이 넘치는 넉넉한 공간이기를 바랍니다.

 

3.  학마을문학산장을 찾는 이들

학마을님은 이곳을 찾는 분들이 ‘학(학마을 님)’을 사랑하거나 ‘마을(문학이 좋아 공동체에 참여하는 분들)’을 사랑하는 사람들, 또는 ‘학과 마을’을 모두(학+마을=학마을) 사랑하는 사람들임을 명심해 주시기를 거듭거듭 간곡히 부탁드립니다. (여망을 저버리고 그 큰 날개로 다시는 떠나시는 일이 없기를...)


4.  개인적인 변명

그렇습니다.  저는 문단에서 마련해 준 서재(홈페이지)를 소유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명백히 문단의 소유이지 제 개인의 소유가 아닙니다.  따라서 운영권이 제게는 없습니다.  더 정확히 표현한다면 빌려서 사용하고 있을 뿐입니다. 
예를 들면 제 글은 제가 관리할 수 있지만 남이 올린 글은 수정하거나 지울 수 없습니다.  그 권한은 문단에 있습니다.

비단 그런 이유가 아니더라도 저는 제 홈페이지에 대해 특별한 애착을 느끼지 못하고 있습니다.  아마도 웹 디자인이나 프로그램 운영에 대한 무지가 이유일 수도 있을 겁니다.  하다못해 태그나 링크를 제대로 사용할 줄만 알아도 애착을 가지고 관리하려고 할 지 모릅니다.  한마디로 전혀 관리능력이 없는 맹탕입니다.

한 가지 더, 저는 문인으로서 아직 자신의 세계를 정립하지 못한 신인에 불과합니다.  침묵과 조신함으로 더 배우고 정진할지언정 남의 앞에 나설만한 입장이 못 되는 사람입니다.  등단 이후 말과 글을 아끼고 있음을 님은 이미 잘 알고 계실 것입니다. 

또 한 가지 약점은 시간을 넉넉하게 활용하지 못하는 일입니다.  사실 작년에 그토록 어려웠던 사정에 비해 금년에는 연초부터 새 희망으로 부풀어 있었습니다. 
그러나 설 명절이후 이라크전쟁과 사스파동으로 그만 발목이 잡히고 말았습니다.  지금 다시 원점에서 새로 시작하는 입장에 서있습니다만 아마도 금년 내내 마음을 풀어놓기가 어려울 것입니다.

따라서 학마을님의 의논 상담은 제게 있어선 전혀 고려할 여지가 없는 논외의 사항임을 분명히 말씀드리며 다만 이 공간을 만드시고 의미를 부여하시려는 깊은 뜻을 존중하여 <더 좋은 제안>을 님에게 드리고자 합니다.


1.  카페를 개설하신 학마을님은 초심(初心)을 굳건히 지키실 것.

2.  다른 사람들이 다 떠나고 다만 한사람만 남는다 하더라도 그 사람이 계속 님을 따르고자 한다면 카페를 폐쇄하거나 다른 핑계를 대고 도망하지 말 것.

3.  이곳을 찾는 분들이 원하는 사항이 배움에 있다면 권학문을 쓰시던 그 심정으로 가르침에 결코 인색하지 말 것.

4.  가슴이 비어있거나 그리움만 남아있는 사람들에게 다른 곳에서 얻을 수 없는 정과 웃음을 듬뿍 채워주도록 할 것.

5.  이곳에 떨어지는 눈물방울이 있다면 그것이 모든 사람들의 가슴을 적실 수 있도록 명실공히 아픔과 감동을 공유하는 공간이 되도록 할 것. 

6.  이러한 일을 하는데 도움이 된다면 하찮은 제우스의 이름을 얼마든지 사용하여도 무방함.

7.  굳이 ‘학마을문학산장’을 지키는 일에 제우스가 필요하다면 님은 ‘문학산장’을 지키고 제우스는 ‘학마을’을 지키기로 업무분담을 할 수 있음.


어제 지루한 상담에 시달린 탓인지 밤 깊도록 ‘더 나은 제안’이라고 머리를 짜내어 보았으나 이것이 내게 유리한 조건인지 불리한 조건인지는 판단이 제대로 서지 않네요.

다만 저로서는 학마을문학산장을 아끼고 사랑하는 사람들과 호흡을 같이하고 싶습니다.  학도 사랑하고 마을도 사랑하고픈 욕심을 나무라지는 않으시겠지요?

학마을님께서는 저의 이와 같은 충정을 헤아리시고 님을 사랑하고 따르는 순수하고 아름다운 마음들의 선한 여망과 정성을 더는 떼어먹지 마시기를 간곡히 바라면서 제우스로 하여금 더 이상 난처해지지 않도록 의논할 여지가 없는 상담을 거두어주시기를 재삼재사 머리 조아려 간청합니다.



Hong Kong에서

제우스 올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