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문과 지식의 샘터

학문과 지식의 샘터 <도토리와 운명방정식 리포트>

필그림(pilgrim) 2007. 6. 5. 23:36
<도토리와 운명방정식>


가을이 창연한 빛으로 상량(爽凉)하게 다가선 9월의 첫 주말, 그 청려함조차 제대로 느낄 수 없을 만큼 참으로 제정신 차리기 어려운 문제들로 머리는 물론 가슴속까지 어지럽고 답답한 와중에 님은 아주 진지하면서도 충분히 탄력 있는 여유마저 지니신 채 그 작은 도토리 한 알에 우주의 원리와 이에 상응한 접근방식으로서의 운명방정식을 담아 문학산장 식구들에게 숙제로 내 놓으셨습니다. (실제로는 월요일 아침에서야 숙제가 달려있는 이 글을 놀란 눈으로 읽었습니다만)

비명에 가까운 딸아이의 지원요청을 들으며 칸느님은 재치 있고도 애교 있는 모범답안을 용케도 생각해내셨구나 감탄도 해봅니다.

토요일과 일요일엔 이곳에서 참여하고 있는 어느 모임의 중요한 이벤트에 관한 계획안을 작성하고 결정하는 일로 꼬박 밤을 새우기도 하면서 하늘한번 제대로 쳐다보지도 못하고 보냈습니다. 

하지만 아무리 바쁘고 심기가 편치 않은 상황이라 하더라도 덧붙이기를 통해 적극적인 토론과 의견개진을 제안하신 학마을님의 참여요청과 딸아이의 비명(?)소리를 어찌 무시할 수 있겠습니까? 

이틀의 시간 말미를 준다고 하셨으니 이 과제를 수취한 월요일 아침부터 정확하게 계산하여 수요일 아침까지 제출하면 최소한 과락은 면하지 않을까 하는 심정으로 퇴근 후 다른 약속이나 일들은 다 제쳐놓고 답안을 마련하기로 했습니다.

여기서는 아무리 눈 씻고 보아도 보이지도 않는 도토리 알갱이를 대충 머릿속에 떠올려보며 이 나이에 이것도 팔자(운명)이겠거니 이순공응(耳順恭應)하여 존재와 관계에 관한 방정식을 '도토리+(운명x방정식)=해제/숙제'로 풀어보기로 했습니다.  학점이야 얼마가 나오든지 신경도 쓰지 않고 걱정도 하지 않으면서...


우선 이 골치 아픈 <도토리와 운명방정식>을 다시 한 번 정독하면서 얼핏 두 사람의 이름이 떠올랐습니다.  한분은 체자레 롬브로조(Cesare Lombroso  1836 ~ 1909)라는 이탈리아 사람으로 학문과 지식체계의 깊이와 넓이가 가히 당대 제일이었던 분입니다. 

처음에는 언어학과 사학을 배워 책도 저술하였으나 다시 의학을 전공하여 군의, 교수, 정신병원장을 지냈는데 특이하게도 형사인류학강좌를 창설하고 오늘날 법학과 심리학에서 다루는 범죄학의 창시자가 된 사람입니다.  나는 그가 저술한 '천재론'이란 책을 소장하고 있는데 그 책을 읽는 동안 그의 박학다식한 지식세계와 난해하기도 하지만 독특한 이론전개에 매료되어 그를 흉내 내고자 지식과 학문에 대한 호기심을 한껏 부추겼던 일이 있습니다. 
내가 왜 이분의 이름을 기억해 냈는지 그분의 업적의 일부를 소개한 다음 구절을 읽으시면 그 의도를 짐작하실 수 있을 것입니다.

"범죄의 원인으로서는 격세(隔世)유전론을 제창하여 죄는 환경에 있다고 하는 견지의 '죄형법정주의(罪刑法定主義)'를, 그리고 죄는 사람에게 있다고 하는 '죄형개별주의(罪刑個別主義)'를 주창하여 종래의 응보적 행위형법으로부터 행위자형법으로의 전향을 이룩하게 하였다" 

학마을님의 운명방정식의 이론은 수필문학적인 사유(思惟)의 글일 뿐만 아니라 논리체계를 정립한 학문적 실험이론(운명을 구체적 실체로 형상화하여 수학적 이론을 대입함으로서 삶의 가치체계를 설명하려한 새로운 이론)이기에 지식에 대한 탐구와 도전의욕에 있어서 두 분이 가히 유사하지 않나 하는 개인적인 생각을 떨쳐버리지 못한 것입니다. (박학다식이라는 공통점도 부수적으로 따르고 있음은 새삼 부연할 필요도 없지만...)


다른 한 분은 스위스의 수학자 오일러(Euler Leonhard 1707-1783)입니다.

이분의 이름을 기억하게된 것은 <도토리와 운명방정식>과 관계가 있기 때문입니다.  도대체 학마을 님은 논리적 설명을 거부하는 불가실체(不可實體)인 운명과 명백한 논리체계인 방정식 이론을 겨우 도토리 한 알을 가지고 완벽하게 설명하려한 기찬 발상이 어떻게 가능하다고 생각하신 것인지 다만 혀를 내 두를 뿐이지만 바로 오일러라는 수학자 역시 이와 비슷한 시도로 신의 존재를 '분모를 n으로 하고 분자를 루트a+bn=x'라는 수식으로 제시한 일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는 실제로 신학분야를 공부한 일도 있거니와 신과 인간의 본성에 관한 몇 가지 정리를 수학적으로 증명하여 출판하기도 했다고 하는데 유감스럽게도 이에 관한 내용을 접한 경험이 없기에 나로서는 여기에 더 소개할 수가 없습니다.)

그런데 학마을님이 지구에 영향을 미치는 달과 태양의 인력관계를 비교하시면서 지구의 조수간만의 현상과 회전편심을 설명하시는 중에 달의 공전자전주기와 지구의 자전주기가 같다고 하신 것은 달이 언제나 지구를 향해 같은 면을 보이게 되는 달의 공전과 자전의 주기가 같음을 말씀하신 것은 아닌지요?

명왕성과 그 위성 카론의 경우는 서로의 공전과 자전주기가 일치하여 항상 같은 면을 마주보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만 지구의 세차운동에 따른 자전속도의 감속이 그와 같은 동주기 자전현상을 이루어 달의 자전주기와 일치하기까지는 얼마의 시간이 흘러야할까요?

오일러는 달과 지구의 거리를 정확하게 측정하는데도 크게 기여를 했습니다.  아마도 오일러의 가장 큰 업적중의 하나라고 할 수 있는 ‘알고리즘(algorithm)’ 즉 반복연산방식으로 그때까지 뉴턴의 계산모델방식에 의해 알려진 달과 지구의 거리보다 훨씬 더 정확한 계산을 산출해 냈으니까요.

그의 계산대로라면 지구와 태양과의 거리도 학마을님이 인용한 지구와 달 사이의 거리의 배율보다 약간 줄어든 수치를 보일 겁니다.


학마을님의 <도토리와 운명방정식>의 핵심이 그런 물리학적 이론의 현상적인 설명에 머무는 것이 아님은 잘 알고 있습니다.  요는 인생의 의미를 새겨보는 기준점에서 운명이라는 것도 실상은 인간의지의 아래에 속하는 것이며 이것을 우주질서의 틀에 맞춘다면 그 물리적인 이론체계를 방정식으로 풀어 설명할 수도 있다는 시도에서 시금석 같은 희귀한 수필이 탄생한 것이 아닌가 생각되어집니다.

인생이란 주어진 값에 미처 헤아리지 못하는 여러 가지 변수가 있게 마련인데 도토리 운명방정식의 이론대로 편심의 무게를 덜어내며 마찰력을 최적화하고 무게중심과 운동중심의 균형을 유지하며 이러한 운명방정식에 더 높은 영혼의 세계를 지향하는 가치방정식을 더할 수 있다면 몸과 마음 활력과 안정을 얻는데 아무런 문제도 없을 것입니다.

학마을님은 심오한 깨달음의 진리를 도토리 한 알을 매개로 하여 운명을 현상학적으로 도식화하는 실험적인 시도를 하셨는데 칸느님이 엑셀로 도식화하여 문서로 보관하고 계시다니 적절한 기회에 일람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만 딸아이의 경우 제대로 된 대학교육을 받고도 이를 소화해내는데 부담을 느낀다면 이 또한 아비 된 사람으로서만이 아니라 이 나라 젊은이들의 내일을 생각하는 사람으로서 가볍지 않은 부담을 더불어 아니 느낄 수가 없군요.

굳이 둘러댄다면 님의 사고력이 조금쯤은 시대를 앞선 탓이 아닐까? 하고 궁색하기는 해도 이유 있는 변명을 해봅니다.


자 이제는 정리를 해야겠습니다.

정말 도토리만한 아니 바로 그 작은 도토리 팽이의 회전운동의 비밀을 소년시절부터 일찍 터득하시어 이제 지천명의 지긋한 나이에 회상해 보시면서 그 물리적 현상과 삶의 헤아리기 어려운 운명을 수학이론을 빌어 접목하신 님의 재치와 거기 묻어있는 약간의 심술(?)을 나쁘지 않은 기분으로 대하며 아마도 학마을님이 숙제를 내지 않으셨다면 월요일 출근하자마자 딸아이의 비명에 가까운 지원요청을 받지도 않았을 것이고 나 역시 수능시험을 치르는 늙은 학생의 신세는 되지 않았을 터이나 이 또한 도토리 운명 탓인지 운명방정식 탓인지 아니면 순전히 학마을님 탓인지 어쨌든 노쇠하고 찌든 머리를 후련하게 청소해내는 요란스런 수선을 한번 떨면서 어수선하게 흩어져있는 책상위도 깨끗하게 정리해봅니다.

Sep 09, 2003
제우스 올림



'업무가 여의치 않으신가 보다!' 라는 의혹이 모든 님들의 한결같은 염려였습니다. 이렇게 근황을 전해주시니 안도와 풀림의 기원을 함께 합니다.

아울러 악질 '사스'가 다시 기승을 예고하고 있습니다. 걱정이 작지 않습니다.

외람되나마 작년 11월 괴질로서 처음 알려졌을 때 전 중국의 가금오리에서 기인된 바이러스성 전염질환이 아닌가! 라는 의혹을 곧바로 가졌었고 제 예상은 유감스럽게도 몇 달 후 사실로 드러났습니다.

인간의 독감과 오리의 독감이 유전적인 합체를 이뤄 발생한 변형독감인 것으로 사료되오며 이의 예방책으로 오존발생형 공기청정기는 다소의 효과가 있을 것으로 생각합니다. 따라서 아직 적절한 치료대책은 물론이거니와 예방책조차 나와있지 않은 이때 거소에 오존발생형 공기청정기를 하나 시급히 장만하셨으면 좋겠습니다. 반드시 오존발생형이어야 합니다.


천재적인 석학 '롬브로조'의 고매한 명성을 참으로 오랜만에 접하는 것 같습니다. 내용은 현재로선 거의 기억나는 바 없으나, 주지하신 내용에서 발췌 잠깐 언급할 수밖에 없겠습니다.

우리나라의 법률체계는 현재 '죄형법정주의'를 사실상 채택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따라서 '죄형개별주의'를 논거에 올릴 수 없음이며 더구나 '격세유전론'과 '응보적 행위형법'을 내세워 따질 수밖에 없음을 가슴 아프게 생각합니다.

'죄형개별주의'를 반드시 주창한다면 전혀 무관하다 하겠으나, 인과율에 입각한 '응보적 행위형법'상으론 분명한 연유가 발생합니다. 전 지금 두 분 부녀지간의 숙제대필에 대한 여지와 논거를 말함입니다.

물론 자백에 의한 정상참작도 가능하고 의도적이 아닌 발상도 충분히 감안할지언정, 최종의 선언은 이곳 산장식구모두의 배심으로 넘기고자 합니다. 부디 배심원 여러분의 현명한 판단을 기대합니다.


(도토리와 운명방정식) 제 발상이 원래부터 이처럼 탁월하거나 엉뚱하진 않습니다. 따라서 처음부터 방정식형 운명론에 도전할 생각은 꿈에라도 없었습니다. 다만 크게 맘먹고 [연구형 수필]로서 인식형이 아닌 '실존적 존재론'에 분석을 새롭게 가하다보니 우리민족의 고약한 습속의 하나인 '풍수지리학'에 인식이 다가섰으며, 비록 개론에 그쳤을지언정 우리 재래의 '풍토학'에 대한 이론적이고 실증적인 재정립까지를 마저 작성하다보니 또한 [사고형 수필]로서의 운명론을 자연스럽게 만들게 되었습니다. 운명론 역시 상식처럼 관념적 접근일 수밖에 없겠으나, 기왕에 실증 분석적인 자세를 펼친 이상 방정식으로의 접근도 가능했었습니다.

처음 시작한 '존재론' 분석조차도 관념성을 적극 탈피한 철저한 구조적인 분석인 이상 지금 돌이켜보면 차마 무모하달 정도의 시도였다는 생각입니다. 하지만 일련의 시리즈로서 몇 편의 수필은 분명 의미 있는 시도라는 생각은 가지고 있습니다.

옛날과 같아서 진사(進仕)과 정도의 과거시험을 준비하는 선비들이라면 최소한 이 정도 수필수준의 논술논리학이라야 옳겠다라는 생각과, 무엇보다 체계를 중시하는 사고형 수필의 한 가지 전형이란 뜻에서 후세의 참고를 위해 쉽게 생각하고 올린 글이었습니다만, 의외의 내용적 반응엔 제가 오히려 놀라기도 했었습니다.


평생을 앞면 54%만 보여주는 달님과 지구와의 중력적 연관은 선배님의 지적이 전적으로 옳습니다. 제 생각도 그러할지언정 수필형식으로서의 쉬운 설명에서 다소 미진했던 것 같습니다.


당연하게 생각되는 '뉴턴'과 '아인슈타인'을 언급하지 않으시고 원천으로서의 수학자 '오일러'를 언급하신 점은 참으로 탁월하셨습니다. 선배님의 깊이 있고 원천중시의 확고한 체계관을 확인할 수 있음에 크나큰 기쁨이 아닐 수 없습니다. 존경심이 배가됩니다.

지속적인 지도와 편달을 거듭거듭 바라겠거니와 '오일러'의 법칙도 지금은 하나도 기억에 남아있지 않으니 그 또한 유감이자 한편으론 다행이라고 생각합니다.


다 잊으셔도 좋겠으나 [오존발생기]만은 부디 잊지 말아 주시길 다시 한 번 강조 드립니다. 강건하십시오. (학마을 拜上)