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문과 지식의 샘터

학문과 지식의 샘터 <도토리와 운명방정식>

필그림(pilgrim) 2007. 6. 5. 23:19
 

(도토리와 운명방정식)




'설마' 하면서도 습관적으로 주워 모은 도토리가 한말을 훌쩍 넘겨버렸다. 이 정도면 내가 책임지긴 아까운 양이라서 모여진 알밤 속에 넣어 서울로 올려 보냈다. 세배나 많은 알밤보다 도토리를 더 반겨하실 모친의 미소가 예상되어 흐뭇하다.

산책 삼아 슬쩍 들러보는 굴참나무아래엔 여분의 도토리가 조금씩이나마 계속 낙하하고 있었다. 사흘 새 다시 모여진 개수가 백 개를 넘었다.

이제 끝물이라 어차피 먹을 양이 되지 않을 것은 사실이라서 그냥 다람쥐 점심소풍용으로 남겨둬도 좋겠지만, 내겐 분명한 용처가 있으니 바로 팽이를 만들 일이다.

도토리팽이가 워낙 소홀하고 사소한 장난감이긴 하지만 아이들의 장난감은 될 수 없다. 요즘의 기발하고 다양한 장난감에 길든 아이들이 한갓 도토리팽이에 매력을 느낄 리 없기 때문이다. 결국 아이들이 안볼 때 몰래 한번씩 돌리며 웃어보는 가난하고 결핍된 시절의 옛 운치를 아는 어른들의 장난감일 수밖에 없음이다.

조상이 같은 족속이면서도 알밤과 도토리는 생리적인 차이가 적지 않다. 알밤은 악착같이 불균형의 형체를 띄고 있지만 도토리는 악착같이 타원형으로 대칭적 균형을 갖춘다. 따라서 도토리라면 몰라도 알밤으로 팽이를 만든다는 소릴 들어본 적은 없다.

완벽한 균형감 때문인지 알밤 떨어지는 소리는 가을이 익어 가는 소리에 머물지언정, 도토리 낙하하는 소리는 작아도 우주 통문의 빗장을 여는 소리에 준할 수 있다. 알밤은 언제까지나 식물적 생명체에 머물겠지만 도토리는 엄연한 식물이면서도 팽이라는 동물적 운동기능을 하나 더 갖게 되기 때문이다.

이처럼 의미가 깊은 도토리팽이임에도 그의 만드는 방법은 워낙 쉽고 단순하다. 깊이 수 밀리미터의 구멍하나를 평평한 머리꼭지에 뚫어 이쑤시개 절반 자른 손잡이를 빡빡하게 꼽아주는 것으로 그만이다. 접착제도 필요치 않다. 물론 정확한 중심잡기에 다소의 정성이 필요할지언정 쉬운 건 사실이다.


팽이가 제 발로 일어서기 위해선 최소한 두 가지 조건이 필요하다. 하나는 자체중력을 충분히 이길 정도의 회전원심력이고, 둘째는 바로 마찰력이다. 여기서의 마찰력은 회전마찰력이 아니다. 팽이 회전에 있어 회전마찰력은 없거나 작을수록 유리한 것이지만, 중력축으로부터 옆으로 미끄러져 벗어나려는 지지마찰력은 오히려 필수로 필요한 요소이다. 매끄러운 유리판 위에선 팽이가 제 발로 설 수 없음이 이를 증명한다. 이 지지마찰력이야말로 운명방정식의 분모(分母)로서 절대적인 요소가 된다.


도토리팽이 손잡이를 기준으로 세로중심이 무게중심이라면 가로중심은 구조적 중심이 되며 교점에 가상의 중심하나가 만들어진다. 가상의 중심이지만 그곳이 바로 자전의 중점이 된다.

가로 세로 두 중심선이 서로 직각으로 교차하면 어느 쪽이건 안정점이 쉬이 찾아지나, 90도 각도로 직교하지 않고 오차가 있으면 팽이는 팽이의 소임을 잃어버리고 만다. 수평회전력의 분포가 일정치 않음에 오차만큼이 불필요한 편심으로 변하고 그만큼의 무게를 밖으로 떼어내 덜어버리려는 파괴력으로 돌변한다. 마치 지구가 유동성이 있을 때 달이 지구에서 떨어져 나간 것처럼 말이다. 지구가 편심(偏心) 만큼의 무게를 덜어냄으로서 자전의 안정감을 찾았고, 달을 지구에서 지금의 거리만큼 던져내는 힘이 되었으며, 달의 공전자전주기와 지구의 자전주기가 똑같은 이유이다.


알려진 바대로 바닷물 조석간만의 차이는 달의 인력에 의해 발생한다. 인력이라면 태양의 그것이 가장 크다 하겠으나 워낙 지구에서 약 420배나 멀리 떨어져있어 힘은 거리의 제곱에 반비례한다는 물리학 법칙에 따라 훨씬 가까운 달의 영향력을 주로 받게 된다. 이에 의거 달의 인력과 반대편의 지구는 가장 커다란 썰물이 들어야 하나 오히려 밀물이 들게 되는 이유는 바로 지구의 세차운동에 있다. 세차운동이란 지구가 중심축을 기준으로 정확하게 축 회전을 하는 게 아니라 약간은 털면서 즉 몸을 흔들면서 회전을 한다는 뜻이다. 달과 지구의 보이지 않는 중력의 끈으로 말미암아 지구 자전축도 달 쪽으로 약간 쏠려있기에 달 인력의 반대편으로 관성이 생겨 당연한 썰물이 아닌 의외의 밀물이 들게되는 것이다. 지구는 달이란 이름의 혹이 하나 붙어있는 편중된 팽이인 것이다.


덜어냄으로써 두 중심이 직교 점에 가까워지면 물체는 순행 운동력을 얻어 생명을 유지해 가지만, 그렇지 못할 경우엔 평형을 잃게 되고 자체한계를 넘는 회전력에 의해 급속 붕괴로 이어진다. 자기분수를 넘었다는 뜻이다. 달도 지구에서 떨어져 나갈 당시의 상태가 묽은 반죽상태(겔)여서 가능했으되 좀 더 굳어진 상태였다면 궤도고정은 물론 지구자체가 산산조각이나 또 하나의 소혹성 군으로 전락하거나 아득한 혜성을 양산했을 것이다. 도토리팽이도 터무니없는 곳에 힘점인 손잡이를 꼽아 돌리면 이내 사방 어느 쪽인가 함부로 튀어 달아나기 마련이다.


무게중심은 멈춰있을 때 자체질량으로써 팽이를 지배하고(정:靜), 구조적 중심은 회전을 해야만 팽이에 원심력으로 발생한다.(동:動)

중심의 중심 즉 한복판은 정과 동이 함께 작동을 해야 만들어지고 그의 만들어지는 안정감에 의해 자체수명의 질 또는 가치가 결정된다. 바싹 마른 도토리팽이가 비록 무생물일지라도 움직임으로서 생물적 수명이라는 속성을 갖게 된다는 말이다. 우주 안에 존재하고 움직이는 모든 물체는 이와 같으며 이를 운동성 수명 즉 운명(運命)이라고 하자.

모든 물질이 가지고 있는 물리적 운명은 (정심 곱하기 동심의 제곱) 나누기(지지마찰력 즉 제어력)에 의거한다. 여기에 분모에 속하는 마찰력은 이제껏 알려진 네 가지 힘, 즉 중력, 인력, 약력, 전자기력 등에 의해 주어진다. 한 가지 힘은 운동의 에너지가 되어주기도 하지만 다른 한쪽으론 억지력이 되어주기도 한다. 마찰력이 없으면 즉 분모가 영(0)일 경우 전체가 불성립으로 사라져 버리고 말며, 너무 커도 활동성 운명의 수치가 작아져 무능력한 존재가 된다. 따라서 수학적 의미인 분수(分數)는 철학적 의미인 분수(分受)와 상통하며 (정심 곱하기 동심의 제곱)인 분자는 열에너지(화력)의 성격을 갖는다.

실존재이므로 수치의 결론은 언제나 허수가 없는 가분수(假分數)의 형태 즉 1이상이 된다. 분모가 존재하는 한 전체가 실수(實數)가 되어주기도 하지만 동시에 제한된 운명을 피할 수가 없다. 분모인 마찰력은 적절한 크기와 함께 안정도가 무엇보다 중요하다.

이처럼 운명은 이미 주어진 것으로써 '생물 최소한의 보장성 수명'을 말할 뿐이다. 여기에 부가되는 중요한 상수(K)도 있으며, 지각능력의 정도와 행위적 수단의 발달정도에 따라 상수의 크기는 크게 달라질 수 있어 이를 운명의 연금술(鍊金術)이라 한다. 연금술답게 역시 과학이 주도한다.

상수(K)를 제외하면 운명이란 지극히 단편적이고 개별적인 요소이다. 운명을 팔자라 바꿔도 상관없다. 이처럼 운명이란 물질에게 주어진 기본적인 성격이고 최소과거형일 뿐 미래결정형이 될 순 없다. 자유의지를 바탕으로 얼마든 변동 가능한 상수(K)가 뒤에 있기 때문이다. 이에 마이너스 즉 부 논리도 조건적으로 가능하다. 부 논리는 미끄러짐을 뜻하며 관성적 수명 즉 사고, 질병 등의 돌발변수가 된다.


모든 물질의 운명의 질은 자체무게중심과 운동중심의 두 축이 얼마나 순행적으로 직교중심오차가 적으냐에 따라 결정되며, 타동적 운명을 무생물이라 하고 자동적 운명을 생물이라 한다.


운명 중엔 인간처럼 지능이 있는 존재에게나 속하는 영적인 운명도 있으니 기본공식은 물리적 운명방정식과 같다. 단 영적인 경우엔 운명방정식이라 하지 않고 가치방정식이라 한다. 적용요소의 성격도 당연히 달라진다. 즉 정(靜)은 이미 주어진 물리적 운명의 답이 되고 동(動)은 개체의 심리만족도가 되며 분모인 지지마찰력, 제어력은 욕망이 된다. 여기에 상수(K)는 누적신용도가 된다. 이 경우의 상수를 가치연금술이라 한다.

상수(K)가 제외된 공식을 존재가치방정식이라 하며 상수가 더해진 공식을 행동가치방정식이라 한다. 이러한 요소에 의해 한 개체의 효용성 점수가 매겨지고, 혹자는 어른과 영웅으로 혹자는 인간기생충의 대접을 받게 되는 것이다. 이처럼 상수의 유무와 크기 즉 신용도에 의해 단순히 보호받을 존재가치인지 크게 존중받을 행동가치인지가 구분된다.

상수(K)가 없는 한 거지와 부자, 어른과 기생충의 존재가치는 똑같다. 외부에 미치는 영향력이 전혀 없는 불활성(不活性)이기에 그렇다. 하지만 기생충이라면 제 본색을 언제까지 얌전히 감춰두고 있을 수 없으며, 어른이라면 그의 향기는 일부러 감추려해도 오히려 어려운 법, 가만히 내버려두면 어른(成人)은 숙성에 의해 성인(聖人)으로 자랄 수 있어도 기생충은 미치거나 곧 말라죽고 만다. 따라서 기생충에겐 매사가 죽고 사는 문제이고 사소한 일에도 곧잘 목숨을 건다. 행위의 절박함 때문에 현상에서 우선은 기생충이 이기는 것처럼 보인다. 매사에 조화로움보다 승부근성을 앞세우기 때문이고, 피아(彼我)구분을 하지 못하기 때문이고, 그래서 기생충이다.


두 가지 방정식 위에 활성(活性)의 탑을 쌓아가게 되는 미래특권이 생물 나아가 동물, 특히 인간에겐 주어져있다. 이처럼 심신(心身)을 구성하는 가치방정식과 운명방정식은 생명론의 모체, 존재론의 뗄 수 없는 기초가 된다.


올핸 수중에 모아둔 도토리로 팽이를 한 백 개쯤 만들고 싶다. 생각이 깊은 이들에겐 잘 도는 팽이를 나누어주고, 아름다운 이들에겐 크고 잘생긴 팽이를 들려주고 싶다. 잠시 형상비교에 의한 혼곤(昏困)의 시간이 지나면 모두가 만족할 것이기에----,


 

학마을



(덧붙이기) 


궁금해 하신 바 사고(思考)형 즉 관념(觀念)형 수필의 전형 한 가지를 감히 올렸습니다. 올해 초 KBS 제1 TV, 9시 뉴스시간 말미에 '인류역사상 최초----' 라고 얼핏 소개가 되었던 기념비적인 수필입니다.

물론 작년에 올릴 때가 대학입시마무리 철이었기에 논술대비용으로 수필마당에 올렸던 문장임을 언급해둡니다.

앞으로 출판될 수필집에 사고형 수필의 일부가 수록되겠으나, 이 이상의 수필은 곧 세워질 실제 '학마을산장'에서만 후세 교육적 차원에서 내적 공개가 되어질 예정입니다.

적극적인 토론과 의견개진을 환영합니다.


더구나 '칸느' 님과 'swan' 님과 '하루살이' 님에겐 숙제로서 하달합니다.

운명방정식의 수식을 구체적으로 도식화시켜 '넓은마당'에 올려주시길 바랍니다. 시간은 이틀을 드리겠습니다. 물론 틀려도 상관없거니와 접근자세의 진지함과 진취성을 기대하겠습니다.


(정심을 S, 동심을 M, 마찰력을 B라 하며, 상수는 K라 규정한다.)

-후속의 가치방정식은 도식화하지 않아도 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