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갈피에 끼워진 네 잎 클로버>
글 / 김 의중
집에서 보내온 소포를 받았다. 지금 한국은 가을이 한창이기에 아침저녁과 한낮의 기온이 꽤 차이가 있을 것이다. 환절기이기에 걸치는 의상에 신경을 써야함은 물론이겠다.
아내의 생각으론 아무리 아열대 기후인 이곳이라 하여도 다소의 계절의 변화가 있지 않을까 걱정이 된 모양이다. 긴소매 옷 몇 벌과 내가 보고 싶어 했던 책 몇 권, 그리고 자잘한 일상생활에 필요한 것들을 챙겨서 보낸 것이다.
건강을 염려해 영양제를 사서 함께 넣었는데 이것은 딸아이가 특별히 배려해 자신의 아르바이트로 번 돈으로 마련한 것이라고 한다.
책은 무게가 있으므로 많이 넣을 수는 없었을 것이다. 실제로 이곳에 있으니 책이 무척 아쉽기는 하다. 한가하게 책이나 읽고 있을 형편은 못되지만 그래도 필요할 때면 언제라도 책을 꺼내 펼쳐볼 수 있던 집에서의 생활이 그리운 건 사실이다.
낯익은 책을 꺼내 들고 한 권, 한 권, 가슴에 안아보았다. 깊이 들이쉬는 숨결을 따라 정감이 파고든다. 다시 읽고 싶어 보내달라고 한 ‘페르마의 마지막 정리’와 ‘영불(英佛) 시(詩) 100선’, 그리고 시오노 나나미의 ‘로마인 이야기’중 미처 읽지 못했던 몇 권 등인데 시집은 1977년도에 구입한 이미 빛이 바랜 낡은 책이지만 원문(英語. 佛語)이 함께 수록된 것이어서 무척 아끼고 있던 책이다.
우선 시집을 펼치는데 책갈피에 끼워져 있는 단풍잎 몇 잎과 함께 네잎클로버가 눈에 띈다. 순간! 머릿속 깊숙한 기억의 심연에서 한 가닥 추억이 실타래 풀리듯 환상처럼 눈앞에 펼쳐진다. 잠시 책을 가슴에 안은 채 눈을 감았다.
내가 처음 네 잎 클로버를 손에 쥐어본 것은 대학교 3학년 여름방학 때였다. 친구의 고향에 같이 내려가 며칠을 지내는 동안 나는 오랜만에 경험해보는 시골의 정취에 흠뻑 취해 있었다. 도시에서 자란 나에게 따뜻하게 대해주는 친구의 가족들이 내 가족처럼 느껴질 정도로 마음이 편했다.
점심식사를 마치고 운동 삼아 산책을 나선 길에 포도나무가 심어져 있는 나지막한 야산을 지날 때였다. 고교 2학년인 친구의 동생이 포도밭 울타리 밑에서 네잎클로버를 발견하고 꺾어서 나에게 주었다.
처음으로 대하는 경험이었다. 만일 이 네 잎 클로버가 정말 행운을 가져다준다면 그것은 먼저 발견하고 꺾은 그 동생에게 돌아가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호기심에 따른 욕심(행운을 믿어서가 아니라 처음 보는 네잎클로버의 희소성에 대한 수집욕)이 없지 않았으나 받기를 사양하고 돌려주었더니 친구 동생은 쑥스러운 듯 웃으면서 나에게 주는 선물이라고 했다. 그래도 내가 주저하자 친구가 그냥 받아두라고 거든다.
그 때 나는 네 잎 클로버만이 아니라 따뜻한 우정과 소중한 인연을 함께 받았다. 그 후 그 동생이 대학을 진학하고 군 복무를 마친 후 교직에 몸담고 있는 동안, 그리고 결혼하여 이미 두 자녀가 있는 가운데 뒤늦게 학문에 대한 애착으로 대학원에서 박사과정을 밟는 기간에도 영혼의 교감이 있는 수많은 대화를 나누며 사랑과 존경을 주고받는 사이가 되었다.
두 번째 네 잎 클로버는 전혀 생각지도 않았던 그림을 그리는 어떤 소녀로부터 받았었다. 공들여 만든 예쁜 카드에 네 잎 클로버를 붙이고 비닐로 포장하여 행복하길 바란다는 문구와 함께 정성스럽게 보내준 것이다.
특별한 감정이 있었던 사이도 아니었고 받을만한 어떤 이유가 있었던 것도 아니었다. 그 때의 심정은 고맙기는 하지만 나에겐 분에 넘치는 일이라고 생각하였고 답례로 줄만한 것이 없어 그녀가 그렸던 정물화 그림에 짤막한 단시를 적어주었을 뿐이다.
<정물화>
한 조각 마음이
한 점 그림으로
늘 그 자리에 있듯이
단아한 정물이었다.
시간도 쉬어 가는
고독의 나래 아래
사랑과 진실이
속삭이고 있다.
두 번의 네 잎 클로버를 선물로 받으면서도 한결같은 생각은 행복이나 행운은 나하고는 상관없는 일로 여겼었다.
그러나 9월의 눈부신 햇살이 가을 들녘에 쏟아져 내리던 어느 날! 아내와의 결혼을 앞두고 평생을 하고싶은 공부나 할 것인지 더 늦기 전에 결혼을 해야할 것인지 망설이던 때 아무런 사전 계획도 없이 혼자만의 몸으로 무작정 고속버스를 타고 공주에 내려간 일이 있었다.
무령왕릉을 둘러보고 나서 박물관도 관람했다. 사람의 손길에 의해 잘 다듬어진 뜰이기는 했지만 본관 건물의 뒤편쪽으로 널찍하게 펼쳐진 빈 공터에는, 인적이 드문 탓인지 야생의 풀들과 화려하지도 않은 이름 모를 올망졸망한 꽃들이 질서 없이 피어난 클로버와 함께 군락을 이루고 있었다.
당시 결혼의 절대명제는 행복이어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던 나는 엉뚱한 생각으로 이 많은 클로버들 사이에 내가 찾는 행복이 있을는지 시험해보기로 했다. 간간이 하늬바람이 곱게 불어와 뺨을 스치고 지나간다.
늦은 오후의 고요와 평화 속에서 나는 한가하게 쪼그리고 앉아 풀밭을 헤집고 네 잎 클로버를 찾기 시작했다.
“어?”
눈길이 클로버의 풀 섶을 살핀 지 1분이나 지났을까? 한 무리의 클로버 사이에서 이내 네 잎 클로버를 발견한 나는 처음엔 눈을 의심했었다. 그러나 분명한 네 잎 클로버였다. 너무 쉽게 발견한 것이 오히려 조금 싱겁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역사의 숨결이 깃들어있는 천년의 고도 공주의 박물관 뒤뜰에서 나는 난생처음으로 나를 위한 네 잎 클로버를 찾아냈고 그것을 꺾어 수첩사이에 조심스레 끼워 넣어 가지고 돌아왔다. 마음속으로는 이미 내 인생의 길에 대한 생각들을 정리하면서....
‘결혼하라. 너는 후회할 것이다.
결혼하지 말라. 그래도 너는 후회할 것이다.‘
‘이것이냐 저것이냐’라는 책의 첫 장을 넘기면 발문(跋文)으로 읽을 수 있었던 이 말이 기왕 후회할 바에는 결혼하고 후회하는 게 나을 것이라는 말로 젊은이들 사이에서 유행하기도 했었으나 사랑하는 여인 레기나 올젠과의 결혼을 앞두고 자신이 걸어가야 할 인생의 길(그는 그것을 신과의 약속이라고 생각했다)과 결혼에 대해 그 선택의 문제로 고뇌했던 키에르케고르의 이 명제에 대해 당시 노총각이었던 나도 같은 고뇌를 심각하게 하고 있었던 것이다.
결국 키에르케고르와는 달리 유행하는 말대로 시류에 따른 셈이지만 개인적인 견해로는 키에르케고르도 자신의 인생을 마감하는 자리에서 회한은 있었을지언정 후회는 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믿고 있다.
결혼을 포기하고 공부를 더 할 것인가? 아니면 모든 인생이 그렇듯 인륜의 정해진 법도에 따라 더 이상 시기를 놓치지 말고 결혼해야 할 것인가? 이 문제에 대한 해답을 나는 네 잎 클로버에서 찾았고 아직 인생을 마감하는 자리는 아니어도 내가 선택한 길에 후회는 없음을 분명히 하고 싶다. 무언가 아직도 이루지 못한 부분에 대한 회한은 있을지언정....
클로버는 원산지가 유럽인 콩과에 속하는 다년생 식물로 원래 목초로 심던 것이 번져 나와 야생화 되었다고 한다. 지면으로 벋어가는 줄기 마디에서 뿌리가 내리고 잎이 드문드문 달리는데, 잎은 3개씩 나며 잎자루가 길다.
잎은 3개이지만 간혹 4개가 달린 것도 있으며 모양은 하트형인데 잎 끝이 둥글거나 오목하고 가장자리에 잔 톱니가 있다. 꽃은 6~7월에 백색으로 피어나며 길이 20~30 cm정도의 긴 꽃줄기 끝에 산형(傘形)으로 달려서 전체가 둥근 모양을 이루고 있다.
꽃은 시든 다음에도 떨어지지 않고 열매를 둘러싸며 꼬투리는 선형이고 4~6개의 종자가 들어있다. 아일랜드의 국화이며 토질 보호용과 관상용, 목초용으로 이용되고 있다.
네 잎 클로버는 나폴레옹이 전쟁터에서 네 개의 잎이 달린 클로버를 발견하고 신기해서 고개를 숙이는 동안 총알이 머리 위를 스치고 지나갔다고 해서 행운의 상징으로 삼는 전설이 있으나 사실은 그보다 훨씬 오래 전부터 유럽에서는 악마를 물리친다고 믿고 있었고 세 잎의 의미를 각각 믿음과 애정과 희망 또는 약속과 평화와 행운이라고 믿는 전설이 있었다.
네 잎 클로버는 그런 종자가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일종의 돌연변이이지만 그 희소성으로 인해 사람들로부터 아낌을 받으면서 꽃말이 형성된 것이라고 하겠다. 오늘날에는 네 잎을 각각 부(富)와 귀(名譽 또는 健康)와 사랑, 그리고 행복(幸運)으로 생각하는 것이 일반적인 추세인 것 같다.
한가지 더, 좀 심술궂은 의도로 지어낸 말이겠으나 잎이 다섯 개인 클로버도 있는데 다섯 번째의 의미는 액운(厄運), 또는 불행이라고 한다. 행운이나 행복의 상대적인 말이겠으나 그 희소성에서 네 잎 클로버와는 비교도 할 수 없을 만큼 발견하기가 쉽지 않으니 꽃말이 지닌 의미를 믿든지 아니 믿든지 다소 다행한 일이라고 할 수도 있겠다.
책갈피에 끼워진 아련한 추억의 네 잎 클로버! 지금은 세월도 거리도 껑충 건너뛴 채 이 낯선 이역만리에서 만나는 반가움이 어떠하겠는가? 꽃말이 지닌 의미대로 외로움을 덜어내고 가족들과 어울려 행복을 누릴 수 있는 그 날이 하루라도 빨리 왔으면 하고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
2002년 10월
HONG KONG에서
'작가의 수필' 카테고리의 다른 글
자각과 착각 (0) | 2022.04.11 |
---|---|
공중전화기 앞에서 (0) | 2022.04.06 |
작가의 수필 <커피한잔의 향기> (0) | 2007.06.22 |
작가의 수필 <폭풍우속의 여행> (0) | 2007.06.14 |
작가의 수필 <서플라이 이코노믹스> (0) | 2007.06.1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