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신(보낸 글)

서신(보낸 글) 004 <학마을님께>

필그림(pilgrim) 2007. 6. 11. 18:06
<학마을님께> 


학마을 님!  참으로 눈부신 햇살이 가슴을 맑게 한 하루였습니다.  보내주신 메일을 받고 적어도 두 가지 큰 이유로 제 마음은 초하의 햇살 쏟아지는 산하의 신록처럼 상쾌한 푸르름으로 부풀어올랐습니다.
하나는 님이 불러주신 긴 여운의 Echo Sound 탓이고 다른 하나는 마치 안개에 쌓여있던 장엄한 산자락이 서서히 가려진 안개를 걷어내며 그 신비스러운 모습을 드러내 보이는 것과 같이 님의 내밀한 심상의 실체를 살그머니 엿볼 수 있는 희열이 전해지는 탓입니다. 
님은 진정 혼을 담은 정다운 목소리로 저를 부르신 것입니다.  가슴이 뭉클하도록 전해져오는 이 느낌!  말로는 차마 표현할 수 없는, 목줄기가 먹먹해지는 감동이 가뭄 끝에 단비를 만난 농부가 한줄기 소나기에 흠뻑 젖어보는 모습처럼 온 몸을 촉촉이 감싸줍니다.
이것은 무슨 까닭일까요?  님이 제게 어떤 마법의 주문이라도 걸으신 건지....  아니 저는 압니다.  진작부터 님이 순수한 인간의 정에 목마른 외로운 영혼이라는 것을....  제가 님의 그러한 음성을 들을 수 있음은 마치 수많은 새들의 지저귐 속에 동류만이 자신을 부르는 소리를 분류해 알아듣는 것과 같을 것입니다.

즉시 회신을 드릴 수가 없었습니다.  이 희열과 감동에 조금이라도 더 젖어있고 싶었고 또 삶의 현장에서 다해야할 책임이 있었기에 중국엘 다녀온 뒤 천천히 님에게 보내는 회신을 쓰기로 마음을 정했기 때문입니다. 
그 날은 그렇게 보내고 다시 홍콩으로 돌아와 보니 님이 주신 '봄 장마와 속 앓이'한 편을 더 보내 주셨네요.  아무리 여유를 갖고 마음의 평화를 즐기고 싶어도 기쁨에 대한 표현, 감사한 뜻은 먼저 전해드림이 옳겠지요?
오늘따라 찬란한 햇살과 함께 바람이 참으로 싱그럽습니다.  가까이 다가선 님의 숨결은 이 햇살과 바람에도 스며있기에 오늘은 열린 가슴에 남국의 바닷바람이라도 잔뜩 담아보고 싶어 나들이를 해야겠습니다. 
그리고 돌아와서는 중국에 다녀오면서 보았던 한가지 인상적인 장면에 대해 글로 정리해야 하는지를 생각해 보아야겠습니다.  이미 외출 준비를 끝낸 아내가 제 눈치를 살피고 있군요. 
다음에 또 소식 전하도록 하겠습니다.  변함 없는 사랑과 존경을 보내며 내내 평안하시기 바랍니다.



Hong Kong에서
제우스 올림

* 여기에서 언급한 '중국에서 보았던 인상적인 장면'은 후에 수필 <남자의 뒷모습>으로 완성 됨.
  <남자의 뒷모습>은 '작가의 수필'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