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장마와 속 알이>
글 / 학마을
농익은 봄, 사월도 하순으로 접어들면서 일주일 넘어 흐리고 비 오던 봄 장마가 오늘 아침의 시작은 하늘부터 맑다. 습기가 대기 중에 아직 충만한 고로 옅은 안개가 하늘빛을 신비롭게 가리고있지만, 해가 곧 떠오르면 어지간히 유리알 같은 하늘을 자랑하게도 생겼다. 그의 증거인 듯 동편하늘이 되우 붉다.
그릇그릇마다 찰랑찰랑 고여있는 물, 밝은 하늘이 가득히 담겨있는 낙숫물 집어내 훨훨 새벽의 얼굴을 닦으면 두 손은 시려 냉할지라도 가슴은 하늘빛이 묻어나 그저 맑다. 오래 젖어달라는 뜻, 얼굴과 가슴의 물기를 닦아내지 않는다.
아직은 키 재기 풀들이 성하지 전, 바닥 풀들이 우선은 대지를 빌려쓰고 그의 잎새마다 송알거리는 물 알갱이들에도 하늘은 빠지지 않고 속속들이 담겨있다. 키 재기 풀들이 무성해지면 겨울한철 비상도로로 고맙게 사용한 능선 넘어 청노루 길도 발길을 넣지 못하는 밀림으로 돌아갈 테고 지난 시절의 기억일랑 깊숙한 전설 속으로 곱게 숨어들 것이다. 더 늦기 전에 한참동안 잊어두었던 능선 길을 택해 산책을 나선다.
키 낮은 봄나물들이 빈틈없이 들어앉아 있어도 겨우내 이용한 산책길의 흔적은 그림자처럼 남아있다. 그의 흔적 쫓아 느릿하게 걸음을 옮기면 등에 가로지른 단장이 좌우로 건들거린다. 운동화도 금새 젖는다.
여러 날 만이라 다소 길게 잡으려 지팡이까지 들고나선 행보가 다리 위에서 그만 멈추어지고 만다. 한창 공사 중이던 개울물막이 농수로공사장에 철철 물이 넘치고 있었음이다. 크게 잘못 집행되는 공사라 처음부터 유감이 워낙 많았어도 난 차마 말을 하지 못하고 있었는데 그의 증거가 공사가 끝나기도 전 벌써 눈앞에 펼쳐져 있음이다. 미완성 콘크리트 보를 넘치는 물길로 철근자락에 온갖 부유물들이 흉물스럽게 걸려있다. 무의식으로 말미암아 잘못된 인간의 설계도는 미구에 닥쳐올 환란의 설계도와 다름이 없다. 뒤를 돌아다보면 앞으로 큰물에 쓸리고 무너질 머지 않은 산야가 빗물인 듯, 눈물인 듯 물기에 깊이 젖어있다. 계곡이 속으로 울고있음이다.
모든 방식을 다 허용한다고 생각했었다. 인간세상의 안전과 편익을 위해선 얼마간의 자연활용은 눈감아 줄 수 있었으니까----, 최적화는 기대치 않아도 누가 봐도 상식은 상식이란 믿음은 있었으니까----, 하지만 지금의 모습은 차마 상상도 하지 못할 지경이다. 개울의 가장 중요한 요소 절반 가량이 콘크리트로 아예 메워지고있음이다. 보를 막아 물을 이용함이 아니라 개울을 메워 물을 통째로 지배하려는 덕분에 그림 같았던 달래바위는 이미 깨뜨려져 뿌리흔적만 남아있다.
재해지역으로 선정된 이상 최우선적으로 집행된 예산은 더 이상 세금이 아니라 임자 없는 눈먼돈일 뿐, 그를 남기지 않고 다 쓰기 위해, 일당을 하루 분이라도 더 챙기기 위해선 부득불 일을 만들어서 해야했음이다.
멍청해 지기로 했다.
내 상식을 접기로 했다.
차라리 맹목 되기로 했다.
거기 무궁한 세월동안 대를 이어 살아오던 청량한 물고기 쉬리네 가족들도 다슬기와 함께 콘크리트 밑으로 깨끗이 사라졌으니 이젠 반딧불이와의 우정도 아주 접어야할 모양이다.
얼마만큼 다리 위에서 우왕좌왕하다가 지팡이로 빈 허공만 몇 번 휘두르고 발길을 안으로 되돌리고 만다.
돌아오는 오솔길가 계단식 논바닥에도 인간심성의 찌그러짐은 아픔인 듯 갈라져있다. 쉽게 복구될 물길이 아닌지라 올해 논농사는 거의 물 건너갔기에 잠시나마 올챙이들을 키워내 작년의 손실을 복구해 주려던 내 은밀한 계획이 말짱 수포로 돌아가는 흔적이다.
돌멩이 한 두개로 막아놓은 퇴수로가 활짝 열려있고 좁디좁은 입수로는 진흙으로 악착같이 막혀져있다. 서리꾼 왜가리를 자주 쫓아줌으로써 양적으로 길러오던 올챙이들이 마른 논바닥에 줄줄이 떼죽음을 당한 채 널브러져 있다.
안다. 표현하기조차 처절한 일이나 논 주인은 순 식물성 벼논에 동물성 비료를 거저 뿌릴 생각으로 올챙이가 가장 무성한 시기를 정확히 골라 물길을 닫고 터 버림으로써 무고한 올챙이들을 의도적인 떼죽음으로 몰고 가는 것이다. 누 대를 이은 전업농사꾼이라지만 식물성 벼논에 동물성 비료는 말도 안 되는 소행임을 모르는 까닭이고, 유럽 목축업계 최대 실수인 광우병 발생이라는 비 순리의 결과적 전형을 난 여기서 아프게 지켜보고 있다.
다행이 봄비가 제법 여러 날 길게 내리시는 바람에 올챙이들 중 극히 일부라도 다시 살아나갈 가능성과 운을 바랄 뿐이거니와, 더 이상 남의 논둑을 가지고 내놓고 씨름할 자격과 권한이 내게 주어져있지 못함을 안타까워하지 않을 수 없다. 매년 되풀이되는 고통이지만 벼조차 제때에 심을 수 없는 빈 논인 올핸 특히 더 야속하다.
근래 들어 먹거리가 궁해졌는지 이곳저곳의 땅을 헤집고 다니는 얼룩다람쥐들의 행태가 자주 눈에 띈다. 어지간히 급하지 않으면 잘 먹지도 않는 다래나무 새순을 어쩔 수 없이 따먹으려 넝쿨 위를 바삐 돌아다니는 품새가 조금은 걱정스럽다. 마냥 살이 빠져있는 탓에 작은 덩치가 유난히 더 작아 보이고 덕분에 모습은 1년 중 가장 예쁘다. 예뻐서 더욱 슬픈 녀석들, 돌아가는 대로 녀석들을 위해 마련돼있는 땅콩 두어줌 더 내 줘야하겠다.
나눠줄 땐 주더라도 여간해서 발길이 안으로 향하지 못한다. 오늘 마주한 반갑지 않은 정경들이 발길을 안에서 밖으로 자꾸 내몰기 때문이다.
여러 날만에 비친 햇살이라도 덜컥 부담스러워지는 오늘, 녹음이 더 두터워져 가는 뜨락을 내려다보며 누옥입구에 멍하니 서있는 날더러 어쩌란 말인가.
어려움에 처해있는 상대를 애써 부추겨주고 싶을 때 우린 그의 아프지 않은 팔을 들어줘야 한다는 상식을 안다. 위로란 명목아래 구태여 아픈 팔을 들어주는 간교한 행위를 위선이라 함도 모르지 않는다.
사람과 자연, 각개의 입장에서 이렇게 적용원칙이 달라져도 되는 것인 진 난 모른다. 하지만 사람마다 살길 죽을 길을 다 헤아려가며 살 순 없을지라도, 함께 갈길, 가선 안될 길을 마저 모르진 않을진대, 심하다!
네겐 임시방편이나마 내가 있어서 부러운 얼룩다람쥐야! 봄이 깊어 가면 뭘 하니, 내 팔이 닫는 만큼은 할 만큼 하겠지만, 쉬리, 다슬기, 올챙이 앞에서 인간이란 명색이 자꾸 부끄러워지는 오늘 같은 날, 난 도대체 어찌 살음이 옳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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