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마리 학이 되어 날아간 님>
처음 수필마당에 들어설 때 한 마리 학을 보았습니다. 아마도 그 학이 없었다면 나는 스치듯 수필마당을 지나 다른 낯선 곳을 유랑하며 지금도 방향모르는 길을 처량하게 헤매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이제 수필마당은 전에 없던 따사로운 봄을 맞아 백화제방의 화사한 꽃들로 풍요를 구가하고 있건만 그때의 그 학은 무엇이 그리워 둥지를 버려둔 채 정든 곳을 떠나야했는지...
깨끗한 그 모습 그대로 깃털하나 남김없이 거두어 가셨네요.
수평선 해수면 아래로 침잠(沈潛)하는 낙조를 바라보듯 하나 둘 줄어드는 님의 흔적을 말할 수 없는 허전함과 아쉬움으로 지켜보면서 내 가슴도 그렇게 무너져 내렸답니다.
이미 준비된 떠남을 위해 소란스럽지 않게 은밀한 울음을 울었으나 설마하니 아니리라 고개 저은 까닭은 사랑의 집착으로 내 혼과 영이 맑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평소에도 가까이 하고 싶은 마음 어찌 없었겠습니까? 다만 너무 가까이 가면 더 멀어질까 두려워 살피기만 한 것을...
높이 날아오르시기 바랍니다. 기왕지사 떠나시는 길, 빈약한 작은 인연의 줄로 잡을 수 없음이라면 청천을 향해 높이 솟아 큰 날개 짓으로 그동안 웅크렸던 가슴이라도 크게 펴시기 바랍니다.
먼 훗날, 현란한 아지랑이 사이로 생명의 씨앗을 뿌리며 오는 봄의 모습처럼 홀연히 다시 만날 반가운 만남을 기대하며 떠나시는 님의 몸과 마음 명경지수처럼 맑고 강건하기를 두 손 모아 기원할 뿐입니다.
Hong Kong에서
제우스 올림
* 저와 메일을 주고받던 어느 님으로부터 학마을님이 자신이 올리셨던 글을 지우고 계시다는 소식을 듣고 다급한 마음으로 중지를 요청하는 메일을 띄웠으나 결심을 바꾸지 않으신 듯합니다. 두 번째 중지요청 메일을 드렸을 때 지워지던 글들이 3월 15일자에서 잠시 멈추는 것을 확인하고 또 다른 님에게 메일을 보내는 동안 다시 글이 지워지고 있었습니다.
결국 학마을님의 글이 하나씩 지워지는 모습을 끝까지 지켜보았습니다. 안타까움과 서운함이야 무어라 말할 수 있겠습니까? 다만 지워지는 글들 중 지금 올려드리는 <많이 울게 하소서>만 순서대로 지워지지 아니하고 맨 마지막까지 남아있었던 점을 기억하고 외람되지만 학마을님의 고별사라고 생각해 복사해서 올립니다. 아직 읽어보지 못하신 분들은 물론 읽으셨던 분들도 학마을님의 심정이 어떠하심을 이 글로 헤아려보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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