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층계>
장 석남
저무는 돌층계를 위에서 비스듬히 내려다보면
저 아래는 결코 흙마당이건만
철썩이는 붉은 꽃바다가 있는 것만 같아요
멀찍이 이만큼 서서 바라보니 다행이지
무슨 멀미나는 운명들이 생겨나듯
풀잎들 노을을 이고 마당가를 철썩여요
막돌들을 업어다가 안아다가 놓고, 놓고, 놓고
또 두어 뼘을 재서 큰 모판이라도 밀어 가듯이 판판이 놓고 하여서
서너 층계를 만들었더니
오르락내리락 종교와도 같은, 믿음과도 같은 리듬이 생겨났습니다
배고픈 김에 묵은 김치 한 보시기나 며느리 몰래 먹고 물마시고 나앉듯
무끈히 힘 빼며 올린 산돌 하나는 꽃 한번 피고 지니
그대로 그렇게 본토박이 할아버지가 되어 있습니다
이마에 자꾸 주름 잡히어
거울 보며 손가락으로 주름 펴면서도
돌층계 아래로는 여전히
꽃바다가 와서 수군대는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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