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찬에세이

크리스찬에세이 <아침에 읽는 성경이야기>

필그림(pilgrim) 2008. 6. 29. 00:27

<아침에 읽는 성경이야기>


글 / 김 의중

매일 아침 일어나자마자 기도부터 하고 세면 후에 성경을 읽는다.  금년에는 특별히 그동안 딸아이하고 약속만 하고 시행하지 않았던 영어성경 읽기를 시작했다. 

아무래도 제한된 시간(출근 전)에 남의 나라말로 읽다보니 하루에 한 장 정도로 읽는 속도가 더디긴 하지만 우리말로 읽는 것보다 찬찬하게 뜻을 새기며 읽게 되므로 내용을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데는 훨씬 더 감동적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성경을 읽으면서 가끔 벅찬 감동으로 주체할 수 없이 눈물을 흘린 경험이 있는데 창세기 42장 이하 45장까지에 기록된 요셉이 형제들을 만나는 장면이나 열왕기하 20장에 기록된 히스기야 왕이 앗수르 왕 산헤립의 침공으로 예루살렘성이 포위당한 절박한 상황에서 병으로 인해 죽음을 눈앞에 두고 기도하는 간절한 기도의 내용은 그런 상황을 이해하면서 읽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눈물을 흘리지 않을 수 없을 것이라고 생각되어진다. 


어제 아침에는 역대상 21장을 읽었다.  다윗이 이스라엘 백성을 계수하므로 하나님이 진노하사 선지자 갓을 통해 이르기를 3년 기근이나 석 달 대적에게 패주하는 일, 또는 3일 온역으로 여호와의 칼이 이스라엘 온 지경을 멸하는 일 중 하나를 고르라 하매 다윗이 감히 고르지 못하고 하나님 뜻에 맡겼는데 하나님이 온역으로 치시매 당일에 이스라엘 백성이 7만이나 죽었다. 

이에 다윗이 굵은 베옷을 입고 얼굴을 땅에 대고 엎드려

“오!  하나님, 잘못을 범한 사람은 저입니다.  제가 백성을 계수하라고 명하였습니다.  아무것도 모르는 이 백성이 무엇을 했습니까?  나의 하나님이신 주여, 나와 내 집을 벌하시고 이 백성은 사하여 주옵소서”

하고 간절히 기도하는 내용이다.  다윗은 이 일로 여부스 사람 오르난의 타작마당을 사서 단을 쌓고 번제와 화목제를 드렸는데 이곳이 나중에 솔로몬에 의해 건축되는 예루살렘 성전의 터가 되는 곳이다. 


대통령의 아들들이 권력형 부정과 비리에 연루되어 거액의 부정한 돈을 주고받은 이야기로 온 나라가 시끄럽다.  사실이 확인되지 않아 조사 중이라고 하니 좀 더 지켜봐야 하겠지만 군사정권이 문민정부로 바뀌고 다시 국민의 정부가 들어섰지만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인지 부정과 부패가 끊임없이 정치적인 이슈로 터져 나오고 있다.

대개 정치란 원래 그렇게 혼탁한 것인지는 몰라도 지겹도록 반복되는 식상한 이야기로 사회의 도덕적 기강이 해이해지지 않을까 크게 걱정이 된다. 

임 대통령의 아들이 구속되었던 일이 엊그제 같은데 정권 말기에 들어서서 같은 일이 반복되고 있으니 참으로 한심하다는 생각이 든다.  지도층에서부터 병든 사회가 어떻게 그 하부구조가 깨끗해지기를 바랄 수 있겠는가?


그런 면에서 역대상 21장에 기록된 다윗의 이야기는 정치지도자가 갖추어야할 자세에 대해 그 모범을 잘 보여주고 있다.  그런 지도자라면 백성이 마음으로부터 승복하고 따르지 않을 수 없을 것이며, 잘못을 범했을지라도 하나님이 용서하시고 사랑하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다윗이 여부스 사람 오르난의 타작마당에서 여호와께 단을 쌓으려 하여 그 땅을 값을 주고 사려고 하자 오르난은

“폐하 이 땅을 받으소서.  그리고 폐하께서 원하는 대로 하소서.  여기 번제를 드리기 위한 소가 있으니 타작기 판은 땔감으로 사용하시고 여기 있는 밀은 소제물로 삼으소서.  이 모든 것을 왕께 드리나이다.”

하고 상납하려 하자 다윗은

“아니다.  내가 충분한 돈을 주고 사겠다.  내가 네게 속한 것에 대해 값을 지불하기 전에는 어떤 것으로도 여호와께 제물을 드리지 않겠노라”

고 하면서 충분한 돈(Full Price)을 지불했다고 기록하고 있다.  무슨 이권을 바라고 상납하려 했던 것도 아닌데 다윗은 단연코 이를 거절하고 정당한 댓가를 지불하고 깨끗한 거래를 통해 이 땅을 사들였던 것이다. 

여호와의 전, 예루살렘성전은 다윗의 진실한 회개와 순결한 가치관, 지도자다운 행동을 잘 보여준 그런 사연을 간직한 채 바로 그 땅에 세워지게 된다. 


어쩌면 우리는 현실적으로 실망하는 일들에 대해 성경을 통해 보다 많은 위안과 교훈을 얻게 되는지도 모른다.  성경을 읽고 눈물을 흘리거나 감동을 느끼게 되는 것이 바로 그러한 이유가 아닐까 생각되어진다. 

우리가 성경을 읽을 때 그 상황을 음미하지 않고 단순히 그냥 읽어 내려가기만 한다면 감동은 없을 것이다.  그러나 차근차근 음미하며 읽어 가노라면 감동적인 이야기는 성경 어느 곳에서도 쉽게 자주 발견하게 될 것이다. 

안수집사회에서는 금년 한 해 성경 일독을 하기로 하였는데 나같이 읽는 속도가 느리다면 절반도 채 못 읽게 될 것이다.  그러나 성경 일독 약속을 못 지키더라도 감동 없이 읽고 싶지는 않다. 

아침 일과를 시작하기 전, 10분에서 15분 정도의 짧은 시간에 모든 사람이 성경을 일고 시작했으면 좋겠다.  특히 지도적인 위치에 있는 분들이....


Sep. 2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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