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찬에세이

크리스찬에세이 <찬밥과 무교병>

필그림(pilgrim) 2008. 6. 29. 00:22

<찬밥(寒食)과 무교병(無酵餠)>

 

○ 오늘은 부활주일이다.  부활절이 해마다 같은 날이 아닌 것은 그레고리 역(曆)에 따라 춘분(春分)후 첫 만월이 지난 다음의 일요일을 부활절로 지키기로 했기 때문이다.  이 역에 따르면 부활절은 3월 22일부터 4월 25일 사이에 지켜지게 된다. 

처음 부활절의 시작은 꽤나 시끄러운 논쟁 속에서 시작된 것 같다.  초대교회에서는 아마도 부활절의 의미를 유대 전통 기념일인 유월절과 관련지어 지켰던 것 같다.  유대인은 유월절을 니산월(태양력으로 3월 15일부터 4월 14일)에 지키고 있는데 초대교회에서 니산월의 만월일인 14일을 요일에 관계없이 부활절로 지켰다고 하니까. 

그러나 예수님이 일요일에 부활하였으므로 니산월 만월이 지난 첫 일요일에 지키는 것이 좋겠다고 하여 이 날을 지키는 교회가 늘어나게 되었고 그 후 로마가 동서로 나뉘고 책력(冊曆)도 지역에 따라 알렉산드리아력과 율리우스력을 사용하는 등 여러 가지 이유로 20세기에 이르기까지 지역과 종파에 따라 서로 다른 날을 부활절로 지켜오다가 1963년에 이르러 비로소 고정 일요일제로 전 세계가 오늘날과 같이 지키게 된 것이라고 한다. 

 

○ 부활절이 유월절(逾越節)과 관련이 있는 것은 상당한 의미가 있다.  유월절은 BC 1446년 경 이스라엘민족이 애굽땅을 탈출하기 전 하나님의 천사가 애굽에 재앙을 내릴 때, 미리 정한 약속에 따라 어린양을 잡아 그 피를 문설주에 바른 이스라엘의 집은 건너뛰어(逾越) 재앙을 피할 수 있었던 일에서 유래한다.  이 때 긴박한 상황에 대처하여 급히 떠날 수 있도록 누룩없이 만든 빵을 준비하게 했는데 이연유로 유월절을 무교절(無酵節)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유대인들은 유대력으로 니산월 14일부터 20일까지 7일 동안 유월절을 지키는데 이 기간 동안 발효시키지 않은 빵, 즉 누룩 없이 만든 빵인 딱딱한 무교병을 먹는다.  애굽의 노예생활에서 해방되던 구원의 역사를 기억하고 기념하기 위해서이다. 

출애굽기 12장에는 이에 관한 당시의 상황이 상세하게 기록되어있다.  24절에서 27절까지에는 ‘너희는 이 일을 규례로 삼아 너희와 너희 자손이 영원히 지키고 네 자녀가 이 예식에 대해 묻거든 여호와께서 애굽사람을 치실 때에 어떻게 이스라엘 자손의 집을 넘으셨는지 그 내력에 대해 상세히 이르라’고 명하신 사실을 기록하고 있다.

예수님의 성업의 완성이 그러한 유월절 기간에 일어났다는 사실은 결코 가볍게 보아 넘길 일이 아니다.  구약시대에 유월절 어린양의 피가 이스라엘을 구원하는데 상징적인 역할을 했듯이 신약시대의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의 피는 이를 믿는 이들의 구원의 조건이 되고있기 때문이다. 

 

○ 4월 6일은 한식(寒食)일이다.  한식은 동지로부터 105일째 되는 날로 정하는데 대체로 음력 2월에 드나 가끔 3월에 드는 때도 있다.  양력으로는 4월 5일 아니면 6일이 된다. 

이 날 조상의 묘를 찾아 묘제를 올리며 무덤의 잔디를 갈아입히는 개사초(改莎草)를 하고 둘레에 나무를 심지만 한식이 음력으로 3월에 들었으면 개사초는 하아니한다. 

한식의 유래는 중국 진나라 개자추(介子椎)의 죽음을 기리는 일에서 비롯되었다.  옛날 춘추전국시대 진(晉)나라에 중이(仲耳)라는 공자가 있었는데 누명을 쓰고 이웃나라에서 망명생활을 할 때 개자추라는 신하가 자신의 허벅지를 베어 굶주린 공자를 공궤한 일이 있었다. 

그 후 진나라에 정변이 일어나 공자 중이는 진문공(晉文公)의 칭호로 군위에 오르게 되는데 공신들의 논공행상에서 욕심이 없는 개자추만 빠지게 되었다.  뒤늦게 이 사실을 안 진문공이 개자추를 찾았으나 개자추는 신하로서의 도리를 다한 것일 뿐 공을 다투는 일에는 미련이 없다고 하며 홀어머니를 모시고 면산(冕山)으로 피하여 진문공의 부름에 응하지 않았다. 

짐눈공이 군사를 풀어 개자추를 찾도록 하였으나 개자추가 산에서 내려오지 않자 산에 불을 놓으면 피해 내려오겠거니 하면서 불을 놓도록 하였는데 결국 개자추는 어머니를 품에 안은 채 불에 타 죽었고 진문공은 크게 후회하며 사당을 지어 해마다 제사하게 하고 이 날을 잊지 않도록 하기 위해 이날 불을 피우는 일을 금하게 하였다. 

백성들은 굶지 않기 위해 전날 미리 밥을 지어 이 날엔 찬밥을 먹게 되었고 이것이 한식의 유래가 된 것이다.

 

○ 절기상으로 부활절과 무교절(유월절), 그리고 풍습은 다르더라도 찬밥을 먹는 한식일이 공교롭게도 같은 시기에 겹쳐 있는 것이 예사롭게 느껴지지가 않는다. 

무교병이나 찬밥이나 다 좋은 음식으로 대접받는 것은 아니지만 누룩 없이 만든 딱딱한 빵을 먹는 유대인이나 찬밥을 먹는 우리의 옛 전통이 어떤 사건을 기념하여 그 뜻을 기리고자 함에 있음은 같을 것이다. 

물론 개신교에서는 아직까지 고유의 전통인 제사의식을 허용하고 있지 않아 찬밥을 먹는 풍습인 한식(寒食)을 지키는 교우들은 없지만 묘제를 드리고 개사초를 하는 믿지 않는 사람들도 찬밥을 먹는 풍습을 충실히 지키고 있는 것 같지는 않다. 

유대인들의 경우도 마찬가지로 전통에 따라 한 주간동안 누룩 없는 빵을 먹으며 유월절을 지내는 사람들의 수는 많지 않다고 들었다. 

일반적으로 어떤 행사나 기념일도 세월이 지나고 나면 상징적인 의미만 남게 되고 실제적인 행위는 지켜지지 않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렇더라도 우리는 이번 부활절에 온 교우가 다 각자의 마음속에 살아계신 주님을 발견하고 만날 수 있기를 간절히 기대해 본다.

 

2002년 4월 7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