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명시

한국의 명시 <봄비>

필그림(pilgrim) 2007. 6. 11. 23:46
 

<봄비>


변 영로


나직하고 그윽하게 부르는 소리 있어

나아가보니, 아아 나아가보니

졸음 잔뜩 실은 듯한 잿빛 구름만이

무척이나 가쁜 듯이 한없이 게으르게

푸른 하늘 위를 걷는다.

아아, 잃은 것 없이 서운한 나의 마음!


나직하고 그윽하게 부르는 소리 있어

나아가보니, 아아 나아가보니

아렴풋이 나는 지난날의 회상같이 떨리는

뵈지 않는 꽃의 입김만이

그의 향기로운 자랑 안에 자지러지노라

아아, 찔림 없이 아픈 나의 가슴!


나직하고 그윽하게 부르는 소리 있어

나아가보니, 아아 나아가보니

이제는 젖빛 구름도 꽃의 입김도 자취 없고

다만 비둘기 발목만 붉히는 은살 같은 봄비만이

소리도 없이 근심같이 나리누나

아아, 안 올 사람 기다리는 나의 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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