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마을소식>
요즘 아침 산책 시엔 색다른 즐거움이 하나 추가되었답니다. 무릎높이의 오솔길 언덕에 무릎높이로 자라있는 묵은 산뽕나무의 오디열매(진짜 복분자)가 익어가기 시작했고 그것 한줌씩 입안에 털어 넣는 재미랍니다.
차가 다닐 수 있도록 가파른 언덕을 낮추고 길도 넓히느라 깎아 내린 덕분에 어쩔 수 없이 땅위로 드러난 순 재래종 산뽕나무뿌리 세 가닥은 저절로 기막힌 분재가 되어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땅 주인이 잊을만하면 가끔씩 함부로 제초기를 돌리는 바람에 나무의 긴 연륜에도 불구하고 왜소하게 잔뜩 찌부러지고 뒤틀려있으니 자연 속에 감추어진 분재는 어디 한구석 나무랄 데 없습니다. 나무에겐 참기 힘든 고통일지라도 넌지시 바라보는 즐거움조차 감추진 못하겠습니다. 당연히 바짝 쪼그리고 앉아야만 제대로 보입니다. 함부로 길게 자라난 줄기와 잎새를 건드리지 않으려고 차를 몰고 나갈 땐 한쪽 길가로 바짝 붙여줍니다.
시중에 나가면 이 분재만으로도 돈냥이나 나간다는 걸 압니다만, 저완 아무 상관없는 일, 그냥 거기 있어서 던져지는 보람이 가늠하기 힘들만큼 엄청날 뿐입니다.
달콤한 오디열매, 워낙 잘 익어 손만 대면 제풀에 손아귀로 스르르 굴러 떨어지는 복분자 한줌 모아 입안에 털어 넣은 뒤 혀를 쑥 내밀어보면 아니나 다를까, 기분 좋은 붉은 보랏빛으로 왕창 물들어있습니다. 누가 볼 새라 얼른 입다물어버리고 혼자 씩 웃습니다. 손바닥의 붉은 얼룩은 바로 곁을 흐르는 졸졸이 시내로 쉬이 지워지니 그 또한 막연히 즐겁습니다. 이 즐거움도 곧 끝이 나겠습니다만 연일의 행사가 되었습니다. 바라보는 산천은 녹음으로 자꾸 짙어갑니다.
이처럼 산골짜기 산 마을에서 얻는 내 행복은 작아도 크고 독특할 뿐만 아니라 비용 또한 무척 싸답니다.
쨍그렁 소리가 날 것 같은 초여름의 오전, 함초롬한 감흥이 너무도 좋아 식기 전에 어서 전달해드리고 나누고 싶었습니다. 혼자 느끼긴 워낙 아깝기 때문입니다.
특히 제가 그렇더란 말씀은 감추시되 지금의 오롯한 감흥과 여운을 형수님께도 전달해 주시겠습니까? 전염되어 배가될 수 있도록 말입니다. 가벼운 포옹이면 더욱 좋겠으나 아쉬운 대로 전화한통이라도 좋고 영문을 몰라하실지언정 그냥 웃으시되 세세한 설명도 마시고요, 지금 당장 말입니다.
* 마음이 다소 급하다보니 두서도 없는 학마을이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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