덧붙이는 관포지교의 일화
관중과 포숙아가 서로 더없이 아끼고 존중하는 사이지만 동일한 문제를 다루는 성격상의 차이가 확연하게 드러나는 일화를 덧붙입니다.
관중이 병으로 임종을 눈앞에 두고 있을 때 제환공이 두 차례나 찾아와 국정의 자문을 구하자 관중이 역아(易牙), 수초(豎貂), 개방(開方) 이 세 사람을 멀리하라고 합니다. 이들은 제환공 가까이서 시중을 드는 내관들로 오래 전부터 지극정성으로 섬기고 있었기에 제환공은 그들의 충성을 조금도 의심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그 이유를 물었더니 그들은 소인배로 나라를 위하는 일보다 사람들의 친소관계만 중히 여겨 권세가 있는 사람에게는 아첨하며 제 비위에 거슬리는 자는 배척하고 자신들의 영달과 안위를 위해서는 남을 중상모략하기를 주저하지 않는 인물들이기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면 왜 진작 그들을 멀리하라고 하지 않고 이제야 말하는가하고 다시 묻자 여기에서 관중의 성품이 드러나는 대답을 합니다. 관중은 제환공을 위한 자신의 역할을 울타리나 제방에 비유했습니다. 관중은 제환공이 역아 등을 총애하는 것을 알고 다만 그들이 국사를 어지럽히는 일이 없도록 울타리가 되어주었을 뿐이라고 하면서 공적인 일뿐만 아니라 사적으로도 주군을 충심으로 존중하고 배려했던 속마음을 털어놓습니다. 그러면서 이제는 자신이 더 이상 주군을 지킬 수 없게 되었으니 나라의 안녕을 위해 반드시 이들을 멀리하라고 간곡하게 진언합니다.
결과부터 말해 제환공은 이들 세 명의 간신배에 의해 역사상 가장 어처구니없을 정도로 불행한 최후를 맞이합니다. 사서에는 아사(餓死)한 것으로 나오는데 역아와 수초는 제환공이 병들자 침실 밖으로 9m 높이의 담을 쌓아 아무도 자신들의 허락 없이 제환공을 만나지 못하게 외부와 단절하고 문서를 조작하며 안팎으로 거짓말을 일삼아 국정을 농단합니다. 제환공은 죽은 지 한 달이 지나서야 발견되었는데 겨울철임에도 시신에 수의를 입히지 못할 정도로 부패해 있었다고 합니다. 다만 흥미로운 것은 궁녀 중 하나가 목숨을 걸고 담을 넘어와 제환공의 몸에 자신의 옷을 덮어 준 후 되돌아 나가지를 못하고 벽에 머리를 찢고 죽어 있었다고 합니다. 사가들의 추측으로는 안아아(晏蛾兒)라는 이 어린 궁녀가 제환공과의 하룻밤 인연을 소중히 여겨 역아 등의 간악한 음모를 전해주고 제환공이 운명하자 충절을 지켜 함께 죽음을 택한 것으로 전하고 있습니다. 관중과 포숙아가 역아 등을 멀리하라고 그토록 당부했던 것을 지키지 않은 제환공이 뒤늦게 탄식하며 생을 마감했으리라는 것도 덧붙였습니다.
관중이 생전에 이들 소인배들을 일찍 제거하지 않은 것은 제환공과 치국지도(治國之道)를 논할 때 제환공이 솔직하게 자신이 사냥과 여자를 좋아한다고 털어놓으면서 패업을 이루는데 해롭지 않은가하고 묻자 군주에게 해로운 것은 사냥과 여색을 탐하는 것보다 어진 사람을 쓰지 않는 것, 어진 사람을 쓰면서도 신임하지 않는 것, 어진 사람을 신임하면서도 국사를 논할 때 소인배의 말을 듣는 것이 더 해롭다고 설파한 일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제환공은 이 말을 충실히 지켜 어진 사람을 대우하며 그들의 의견을 존중하고 신임하며 관중의 뜻대로 역아나 수초, 개방 등 소인배들이 국사에 간여하지 못하게 했습니다. 그러니 단순히 소인배라는 이유만으로 제환공이 수족처럼 부리는 그들을 제거하면 제환공의 삶이 불편해지며 무미건조해지고 의욕과 생기를 잃을 수도 있기에 그들을 묵인하면서 스스로 울타리역할을 자처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포숙아는 관중과는 성격이 달랐습니다. 관중이 임종 때 포숙아가 재상이 되는 것을 반대했다는 사실을 알게 된 역아가 포숙아에게 아첨하면서 관중이 포숙아의 덕에 재상이 되었으면서도 은혜도 잊은 채 포숙아의 임용을 반대했으니 괘씸하지 않은가하고 묻자 포숙아가 고개를 끄덕이며 ‘그러게 말이오. 그 친구가 내덕에 재상이 되었는데 그 사람은 나라에 대한 충성심만 있지 친구나 자신의 이익은 안중에도 없는 모양이구려. 만일 그 친구가 나에게 사구(司寇) 벼슬만 내렸어도 내가 이 나라 간신배들을 모조리 잡아 내쫒았을 텐데 당신 생각엔 어떻소? 나도 이걸 생각하면 분통이 터지는구려.’ 하고 응수했습니다. 얼굴이 붉어진 역아는 아무소리도 못하고 물러났습니다. 이런 포숙아가 제환공의 청을 거절하지 못하고 재상의 자리에 오를 때 이들을 멀리하는 조건을 달아 제환공은 어쩔 수 없이 이들을 내쫒고 말았습니다. 그러나 제환공의 장자 무휴(無虧)의 어머니인 장위희(長衛姬)를 움직여 이들이 다시 복권되자 이를 참지 못한 포숙아가 결국 울화가 치밀어 병사하고 제환공은 제세상이 된 이들의 농간에 자신과 나라를 망치게 됩니다.
글쎄요. 대범한 포용력으로 소인배의 존재까지 품어 안은 관중과 이런 해악한 무리를 결코 용납하지 않으려 했던 강직한 포숙아, 누가 더 옳고 현명했던 것일까요? 아니 굳이 옳고 그름을 논할 필요가 있을까요? 아름다운 우정의 상징인 관포지교의 실제 인물들과 얽힌 2천 7백 년 전에 있었던 이 이야기를 전하는 역사 속에서 우리가 얻어야 할 진정한 교훈은 과연 무엇일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