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작가의 칼럼 <인생의 길>

필그림(pilgrim) 2008. 2. 14. 22:25

 

<인생의 길>


글 / 김 의중

○ ‘모든 길은 로마로 통한다.’  로마제국은 당시 세계에서 그만큼 영향력 있는 국가였기에 이 말이 전혀 터무니없는 소리로 들리지 않았을 것이다.  개인의 입장에서는 출세하기 위해서 기필코 로마로 가야했으며 상인들은 큰 이익을 얻기 위해 그리고 약소국가의 입장에서는 나라의 운명을 걸고 정치적인 연줄을 마련하기 위해 로마로 가는 길을 택하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로마는 기원전 753년에 로마건국의 아버지로 일컫는 로물루스에 의해 건설된 도시이다.  그 후 세력을 확장하여 국가의 체제를 확립하게 되자 오늘날의 고속도로와 같은 개념의 '아피아'가도와 '플라미니아'가도를 남과 북으로 건설하였으며 점령하는 지역마다 도로를 연장하여 건설하는 정책을 폄으로써 정치, 경제, 문화적인 교류를 확대하는 효과를 거둘 수 있었기에 이런 말이 나오게 된 것이다.

아마도 역사적으로 가장 의미 있는 로마행(行)은 제2차 포에니전쟁을 일으킨 한니발의 대장정과 예수의 사도(使徒)인 바울(Paul)이 그의 전도여행길의 최종목적지를 로마로 정했던 것이 아닐까 생각되어진다.

한니발은 로마로 향하는 도중 알프스산맥을 넘고 트레비아강전투를 승리로 이끌며 승승장구하여 남하하는 동안 한때 로마시가지를 굽어보는 지역에까지 이르기는 했어도 끝내 로마 시(市)를 수중에 넣지 못한 채 16년 동안 로마를 유린한 침략을 끝내고 본국 카르타고로 송환되고 만다. 

그러나 바울은 그의 전도와 순교를 통해 기독교를 탄압하던 강대한 제국 로마를 굴복시킴으로써 그의 로마행(行)이 세계의 역사를 바꾸는 위대한 선택이었음을 후세에 전하게 된다.

결과적으로 한니발의 로마행은 그의 의도와는 달리 로마를 초강대국으로 만들어 준 실패의 길이 되었고 바울의 로마행은 강대국을 통째로 손에 넣는, 기대 이상의 빛나는 성과를 이룩한 성공의 길이 된 셈이다.

독일은 아우토반(Autobahn)을 만들어 강국을 이루었고 미국은 유명한 서부개척사를 대서양과 태평양연안을 잇는 유니온퍼시픽 대륙횡단철도로 이루어 냈다. 

러시아는 부동항을 찾아 동진하는 과정에서 시베리아철도를 건설했으며 우리나라도 경부고속도로를 건설함으로서 6.25의 폐허 속에서 한강의 기적으로 일컬어지는 경제성장을 일구어냈다. 

경제적 가치 또는 정치적 목적에 의해 도로가 건설되기도 했으나 반대로 도로가 정치적 또는 경제적 가치에 의해 이용되거나 단절되는 현상도 있었다.  도요토미 히데요시(豐臣秀吉)는 정명가도(征明假道-명나라를 치기 위해 길을 빌림)라는 명분으로 우리나라를 침략하는 임진왜란을 일으켰고 중국 진(秦)나라의 시황제는 북방민족의 길을 끊기 위해 만리장성을 쌓았으며 근세에 이르러서는 국제적인 교류의 증대로 배가 통행할 수 있는 물길(海路)을 만들고자 대륙을 양단하는 수에즈운하와 파나마운하를 건설하기도 하였다.  가히 길을 잇고 끊고 하는 일이 곧 인류의 역사를 만들어내는 일이 되는 셈이 아닐 수 없다.


○ 인생에 있어서도 누구나 자신이 걸어야할 길이 있다.  인생의 길은 누구에게나 쉽지만은 않을 것이다.  고대이스라엘왕국의 솔로몬왕은 ‘마음을 다하며 지혜를 써서 하늘아래서 행하는 모든 일을 궁구(窮究)하며 살핀즉 이는 괴로운 것이니 하나님이 인생들에게 주사 수고하게 하신 것이라.’고 술회(述懷)하고 있다.

그러나 우리의 인생길이 아무리 험하고 괴로워도 자신이 선택한 길에서 최선을 다하는 것이 삶의 본분임은 두말할 것도 없다. 

키에르케고르는 절망은 죽음에 이르는 병(病)이라고 했다.  우리가 희망을 저버리지 않는 한 인생은 꿈같은 일을 이룰 수 있는 수많은 기회를 우리에게 제공하고 있다.  인류 역사에서 승리자가 된 사람들의 생애를 살펴보더라도 그것은 시련을 극복하고 절망을 희망으로 바꾼 결과임을 어렵지 않게 발견하게 될 것이다. 

인생의 길이 아무리 험하고 괴로운 것이라 하더라도 단 한번뿐인 삶의 기회를 절망으로 인해 스스로 포기하거나 술과 노름, 마약이나 폭력, 또는 난잡한 성(性)으로 망친다는 것은 얼마나 어리석은 일인가? 

삶이란 무엇인가?  이 명제에 대한 해답은 누가 주는 것이 아니라고 생각되어진다.  누구에게나 이 명제가 삶의 과제로 되어있기에 개개인의 희망과 도전이 의미가 있고 독특한 예술의 창조와 더 나은 세계를 지향하는 학문의 발전이 가능하며 인간의 존엄성에 대한 가치관이 존중될 수 있는 것이 아니겠는가?

스스로의 삶에 대한 해답은 스스로 찾아야할 것이다. 

그것이 종교에서 말하는 득도(得道)와 해탈(解脫)이며 하나님의 섭리에 의한 선택과 사랑을 깨닫는 일로 자기 자신의 존재의 가치를 확인하며 거듭나는 일일 것이다.


○ 2월은 각 급 학교의 졸업식이 있는 달이다.  배움의 길에서 소정의 과정을 마친 사람들에게 학교에서 인증해 주는 졸업장을 받는 일은 장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예로부터 학업을 이루는 일을 형설의 공(螢雪之功)이라고 했다.  공부하는 일 자체가 편하고 좋은 환경에서 이루어지기보다는 어렵고 힘든 여건에서 적지 않은 노력과 공을 들여 성취하는 일임을 빗댄 말일 것이다.  졸업을 하기까지 본인의 노력도 노력이려니와 가르치고 지도해주신 선생님들의 고마움과 뒷바라지 해준 부모님의 노고도 그에 못지않을 것이다. 
초등학교나 중, 고등학교를 졸업하는 학생들은 대개 상급학교에 진학하는 것으로 진로를 정하겠지만 대학을 졸업하는 사람들의 경우는 사정이 좀 다른 것 같다. 

나라의 경제가 어려워 실업자가 늘어나는 마당에 졸업생들을 위한 신규일자리가 넉넉하게 마련되지 않아서 더러는 스스로의 학력을 평가절하 해 단순노무직이나 임시직을 가리지 않고 찾는 경우가 있다고 들었다. 

마땅한 직업을 선택하기 어려워 내친김에 대학원진학을 생각하는 사람들도 적지 않다고 한다.  그렇다고 힘들고 어려운 소위 3D 업종을 선택하는 경우는 여전히 많지 않은 것 같다. 

어쨌거나 사회에 첫발을 내딛는 젊은이들의 인생행로가 처음부터 난관이라니 인생선배의 입장에서 여간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젊어서 고생은 사서도 한다는 말이 있는데 작금의 어려운 현실에서 국내에 머무르든 해외로 나가든 자신의 인생을 책임 있게 설계하기 위한 모험을 감행하는 것도 나쁘지는 않을 것이다.  시도해보지도 않고 주저앉기보다는 젊음을 무기로 적극적인 도전을 시도해보는 것이 필요한 시점인지도 모른다. 

젊은이들의 일자리가 없으면 이는 곧바로 사회불안요인으로 직결되기도 한다.  새로 들어서는 정부에서 이점을 각별히 유념하여 젊은이들의 사회진출을 위한 활로를 활짝 여는 좋은 정책을 펼치기를 기대해본다.

 


2003, 02, 12.

Hong Kong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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