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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족함에서 얻는 행복

필그림(pilgrim) 2007. 10. 20. 00:06
 

<부족함에서 얻는 행복>

 

글 / 김 의중 (작가의 수필 <커피한잔의 사색> 중에서)


오늘은 침사추이에 있는 여행사에 들러 기간이 만료된 중국 비자의 연장신청을 하고 돌아왔습니다.  이층버스를 타고 숙소인 LAGUNA CITY에 도착해 아파트로 올라가기 전 PARK N SHOP(할인마트)에서 몇 가지 생활용품을 고르다가 ‘BONE CAFE’의 아메리칸 브랜드커피를 발견하고 반가운 마음에 얼른 집어 들고 다른 물건들과 함께 계산을 마쳤습니다.

아파트로 돌아와 혼자서 하는 저녁식사를 마치고 커피봉지를 뜯어, 비어있던 모코나 커피 병에 아메리칸 브랜드를 옮겨 담았습니다.  진한 커피 향이 코끝을 자극하며 대뇌에 상쾌한 쾌감을 전해줍니다.

커피그라인더나 포트가 없어도 좋습니다.  냄비에 두 잔 정도의 커피를 만들 수 있는 분량의 물을 붓고 끓이면서 아메리칸 브랜드 원두를 작은 티스푼으로 다섯 번 담아 넣었습니다. 

굳이 두 잔 분량의 물을 부은 것은 두 잔의 커피를 타기 위해서입니다.  외로운 생활을 하고 있는 나를 위해 아내가 보내준, 고국에서 즐겨 사용하던 장미꽃무늬가 새겨진 부부용 커플 커피 잔에 커피를 두 잔 다 채우고 싶기 때문입니다.  지금 이 집안에는 나 이외에 아무도 없으니 사랑하는 아내와 함께 마주 앉아서 여유 있게 Coffee Break를 즐기는 기분을 낸다고 해서 누가 뭐라고 하겠습니까? 

또 남은 커피는 그 향기가 다 진하도록 음악과 함께 긴 시간동안 그리움을 반추하며 천천히 마셔도 좋을 것입니다.

즐겨 상용하는 인스턴트커피를 커피 잔에 각각 한 스푼씩 넣고 설탕과 프림을 적당하게 넣은 후 끓인 아메리칸 브랜드를 알갱이가 흘러 들어가지 않도록 티스푼으로 조절하면서 커피 잔에 따랐습니다.  커피 향이 실내에 가득히 퍼져나갑니다.

창밖엔 바람도 멈추고 어느새 어둠이 내린 도시의 빌딩들에서는 사연이 있는 불빛들이 반짝입니다.  아파트 창문마다 새어나오는 저 불빛들은 하루의 삶을 성실하게 마감하는 정감 있는 대화와 사랑의 눈빛, 감사와 평화가 깃 든 행복의 불빛일 것이라고 상상을 하면서 스카이라인으로 이어지는 산  언덕의 능선 위로 시선을 보냅니다.
거기 반쯤 얼굴을 돌린 채, 도시의 불빛들과 해안을 굽어보며 떠있는 반달이 있습니다.  언제나 창가에 찾아와 홀로 사는 내 모습을 커튼사이로 기웃거리며 살피던 달빛입니다.  오늘따라 부산하게 움직이는 내 모습을 잔잔한 미소를 머금은 채 말없이 지켜보고 있습니다.

이 시간만큼은 참으로 행복합니다.  거실의 소파에 앉아 TV를 끄고 비발디의 사계를 CD플레이어에 넣으면서 음악과 함께 오랜만에 자신의 취향대로 오리지널 Pure Coffee인 아메리칸 브랜드의 진한 향을 음미해 봅니다. 

제대로 된 용기(容器)도 없이 절차도 생략한 채, 부족함 속에서 만들어내어 만족한 마음으로 음미해 보는 커피한잔의 행복!  인생에 있어서도 어떤 면에서는 모든 것이 완벽한 가운데서 얻어지는 행복보다 부족한 가운데서 얻을 수 있는 행복이 더 소중한 것이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