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각과 착각
자각과 착각
김의중
비류가 세운 미추홀의 궁터는 어디였을까?
바다를 면한 지형이 지금과는 상당히 달랐을 것을 염두에 두면서 선주민들이 자리 잡고 있던 달솔골(달골, 솔골, 밤골로 신라시대의 매소홀-지금의 송월동, 송현동, 송림동, 신포동, 율목동일대), 비류가 처음 도착한 곳으로 추정되는 문학산 동쪽의 문학동, 관교동, 선학동일대, 문학산 서쪽의 옥련동과 청학동일대, 그리고 최종적으로 문학산을 등지고 남쪽으로 바다가 내려다보이는 함박마을과 장미공원일대를 여러 차례 살펴가며 ‘미추홀’의 이야기를 써 내려가고 있다. 그러나 왕궁의 위치에 관해 아무런 기록이나 흔적이 남아있지를 않아 나름대로 위성지도와 지형도를 살피며 합리적인 추론으로 바다가 내려다보이는 이곳 장미공원일대일 가능성이 크다고 보고 지난 목요일부터 아내와 함께 매일 산책삼아 그동안 확장공사로 배 이상 더 넓어진 장미공원을 찾아 전(殿)과 각(閣)의 위치를 어림짐작해보면서 이미 썼던 부분을 뜯어고치기 시작했다.
어제 역시 장미공원을 찾아 봄바람에 화사하게 피어난 목련과 벚꽃, 그보다는 올망졸망한 제비꽃이나 민들레, 양지꽃, 그리고 이름 모를 다년생 풀꽃들과 새삼 눈에 띄며 마음을 사로잡는 봄까치꽃의 유혹에 이끌려 새로 조성된 초화원 쪽으로 발걸음을 옮기다가 예전에 오르던 산 정상으로 이어지는 오솔길을 따라 둘레길이 있는 곳까지 올라가보고 싶은 욕심이 생겼다. 만만치 않게 가파르기는 하지만 한 시간 정도의 왕복트레킹은 가능할 것도 같다는 생각과 전에도 올라왔던 길이니 계단이 있는 곳까지라도 가보자고 숨을 몰아쉬며 한 150m쯤 올라갔을까? 서서히 가슴에 압박감이 느껴지면서 내려갈 길이 걱정되기 시작했다. ‘괜찮겠지... 어제도 완만하기는 하지만 한 시간 정도 걷지 않았나? 점차 적응하면서 체력을 키우는 것도 나쁘지는 않을 거야. 천천히 조금만 더 올라가 보자.’ 하고 스스로를 달래며 앞서 가는 아내의 뒤를 기를 쓰며 따라가는데 다리는 후들거려도 견딜만했으나 얼마 전 심혈관확장시술을 다시 한 심장은 이미 비상 신호를 보내고 있었다.
결국 10여 미터를 더 가지 못하고 삐져나온 돌 위에 털썩 주저앉았다. 이내 머리가 싸늘해지고 온몸이 식은땀으로 범벅이 된 채 가슴의 압박감이 통증으로 이어지면서 더욱 심해져 몸을 지탱하지 못하고 낙엽이 쌓여있는 쪽으로 드러눕고 말았다. 놀란 아내가 들고 있던 내 윗옷을 펼쳐 눕힌 다음 곁에 앉아 그늘을 만들어주며 괜찮은가를 거듭 물으면서 비상약인 니트로글리세린 설하정을 꺼내 입안에 넣어주었다. 그러나 두 번째 설하정을 투여해도 통증과 심한 현기증은 가셔지지를 않았다. 세 번째 설하정을 입에 물고 녹여내는 동안 구급차를 부르려는 아내에게 5분만 기다리라는 말을 겨우 웅얼거리고는 안절부절 못하며 아들에게 전화로 도움을 청하는 아내를 멍하니 쳐다보면서 어쩌면 나도 보리스 파스테르나크의 ‘닥터 지바고’나 스코틀랜드의 시인 로버트 번즈처럼 이대로 길가에서 생을 마감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불과 1~2분 사이의 짧은 시간이었지만 이제 마지막 장을 쓰고 있는 ‘미추홀’을 끝내지도 못한 채 이대로 죽을 수는 없다는 생각, 그래도 지금 눈물을 흘리며 내 몸을 안고 있는 사랑하는 아내 곁에서 생을 마감할 수 있다면 이보다 더 행복한 일이 없지 않은가? 하는 생각에 생명의 허무함과 소중함이 절절하게 느껴졌다.
잠시 후 옅은 트림이 서너 번 반복되면서 가슴통증은 다소 가라앉는듯했으나 심한 현기증으로 도저히 일어나 앉을 수가 없었다. 그때까지 눈물 젖은 모습으로 내 몸을 부축하고 있는 아내에게 ‘괜찮으니까 아들 부르지 말고 조금만 더 있다가 내려가자.’고 맥없이 말하자 그제야 안심이 되었는지 아들이 지금 오고 있으니 조금만 더 참고 기다리라고 했다. 얼마쯤 지났을까? 아들로부터 장미공원에 도착했는데 위치가 어디냐고 묻는 전화가 왔다. 정확하게 찾기 쉬운 곳으로 초화원 정자가 있는 곳을 알려주고는 나도 그리로 내려가기 위해 일어서려는데 현기증으로 도저히 일어서서 걸을 수가 없었다. 일어났다가 주저앉기를 반복하면서 허리를 구부린 채 나뭇가지를 잡거나 안전을 위해 설치한 밧줄을 잡아가며 앉은뱅이걸음으로 300여 미터를 내려가 정자에 이르니 젊은 부부가 음식을 들고 있어 양해를 구하고는 그대로 난간이 있는 자리에 쓰러지듯 드러누웠다. 상황을 알아차린 젊은 부부가 물병을 들고 선뜻 일어서더니 내게 물을 권하고는 다시 눕힌 채 능숙하게 허리 벨트를 느슨하게 풀어주면서 땀으로 범벅이 된 이마를 수시로 짚어보며 가슴을 펴주고 호흡을 가다듬게 했다. 부인도 양쪽 다리를 주무르면서 혈액순환이 원활하도록 도왔다. 아들이 도착할 때까지 이들 부부의 호의에 한결 진정되기는 했으나 미안함과 송구함이 느껴져 무어라 고마운 마음을 전하기가 어려워 엊그제까지 별 탈 없이 산책했기 오늘도 괜찮으리라 생각했다고 변명을 했다.
그러나 심혈관확장시술을 하고 퇴원한지 20여일 만에 무리하지 말라는 경고를 무시하고 봄날의 싱그러운 바람과 꽃의 유혹에 빠져 순간적인 욕망을 억제하지 못한 채 자신의 실체를 착각한 잘못을 자각하면서 올바른 인식으로 살아가는 일이 결코 쉬운 일이 아님을 다시 한 번 절실하게 깨달았다. 그래도 인간의 삶이란 화사한 봄날의 싱그러운 바람과 꽃의 유혹에 빠져보기도 하고 그릇된 판단으로 재난에 봉착하거나 더러는 뜻하지 않은 절박한 상황에서 따뜻한 마음을 지닌 사람들의 도움을 받기도 할 것이다. 장미공원에서 생사를 오가는 아찔한 순간을 경험하면서 생명의 소중함과 허무함, 삶의 본질이 지닌 욕망과 남을 배려하는 너그러움을 생각해보며 산다는 것이 미추홀을 세운 비류의 흔적을 더듬는 것만큼 녹녹하지 않다는 사실을 새삼 느꼈다. ‘너 자신을 알라’는 선현의 가르침이 오늘날까지 생생하게 살아있기는 해도 그래도 자각은 언제나 부족하고 착각은 또 언제라도 일어날 것이니 그저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에서 나를 보살펴준 젊은 부부들처럼 따뜻한 마음을 가진 사람들이 더 많아지기만을 바랄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