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중전화기 앞에서
카페 회원여러분 잘 지내시지요?
지난 3월 25일, 아내가 연수구 먼우금사거리에 있는 kb국민은행에서 계좌를 정리하는 동안 지하주차장에 차를 대고 올라오니 은행 앞 횡단보도 옆에 설치되어 있는 공중전화 booth가 눈에 띄었습니다. '아니 지금이 어느 시대인데 공중전화 booth가 있나?'하는 의아한 생각에 이곳을 수도 없이 지나치면서도 눈여겨보지 않았던 무관심을 질책하면서 휴대폰을 꺼내 사진부터 찍었습니다. 아직도 휴대폰 사용에 서툴러 사진을 올리지 못해 아쉬우나 새삼 밀레니엄이 시작되던 2000년에 홍콩에서 혼자 지낼 때 쓴 수필 한 편이 떠올라 격세지감을 느끼며 올립니다.
공중전화기 앞에서
김의중
새천년이 시작된 2000년 여름 어느 날이었습니다.
하루의 일과를 끝내고 간단한 저녁식사를 마친 후 숙소로 돌아가는 길에 문득 가족들에 대한 그리움이 떠올라 Grand Century Plaza 2층 한 구석에 있는 공중전화기 앞으로 갔습니다.
나보다 먼저 와서 전화를 걸고 있는 사람이 있기에 통화가 끝나기를 기다리며 무심코 그 사람의 통화하는 모습을 바라보니 티슈로 눈물을 닦으며 들릴 듯 말 듯한 목소리와 흐느낌으로 통화를 하고 있었습니다.
순간! 호기심이 발동하여 전화 거는 사람을 자세히 살펴보았습니다. 중국 사람이나 Cantonese 같아 보이지는 않았고 나이는 30세쯤 되어 보이는 허름한 옷을 입은 여인이었습니다.
Hong Kong에는 제법 적지 않은 수의 후진국 여성들이 가정부나 단순 노동자로 고용되어 체류하고 있는 실정이므로 나는 상상력을 발휘하여 지금의 이 상황이 어떤 사연에 의해 벌어지고 있는 것인지 추측해 보기 시작했습니다.
‘혹시 어머니에게 전화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고생만 해 오신 어머니께 잘 해드리지 못해 언제나 가슴속에 응어리진 사연을 낯선 이국땅에서 안부를 묻는 전화를 드리다가 감정을 주체하지 못해 눈물로 하소연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아니... 어쩌면 두고 온 아이들 생각에 가슴이 메어져 그러는 지도 몰라. 저 여인의 나이로 보아 초등학교 1~2학년쯤 된 자녀가 틀림없이 있을 거야. 그렇다면... 참으로 딱한 노릇이 아닌가? 얼마나 경제적으로 어려웠으면 사랑하는 철부지 아이를 떼어놓은 채 머나먼 이국땅에서 저토록 가슴 아픈 생활을 하고 있을까?
필리핀 사람인가? 아니면 방글라데시 여인일까? 아! 필리핀 사람이로군. 어깨너머로 보이는 전화기 액정 Display에 “Call to Philippine”이라고 표시되는 걸로 보아...’
다시 한 번 여인의 어깨가 들먹이며 손에 든 티슈로 눈언저리를 더듬고 있는 모습을 보면서 나는 그 여인의 음성을 한마디라도 들어보기 위해 온 신경을 귀에 집중했습니다.
너무 낮은 음성으로 속삭이는데다가 흐느낌이 뒤섞여 잘 알아들을 수는 없었으나 티슈를 든 손으로 전화기 문자판에 표시된 “Credit $0:00”을 더듬으며 마지막으로 하는 말에서 분명하게 “Mammy, Please care well my Sonny."라는 소리를 들을 수 있었습니다.
고개를 숙인 채 돌아서 가는 그 여인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나는 이제 내가 그리워하는 사람에게 전화를 걸기 위해 공중전화기 앞으로 한발 다가섰습니다.
전화기 위에는 그 여인이 미처 처리하지 못한 두 장의 눈물 젖은 티슈가 구겨진 채로 그대로 놓여 있습니다. 그리고 그 눈물 젖은 티슈의 사연은 아무도 모르게 잔잔한 감동으로 내 가슴에 전이(轉移)되었습니다.
나는 감히 그 티슈를 옆에 있는 휴지통에 버릴 수가 없었습니다. 아마도 내가 자리를 뜨고 나면 그 티슈의 사연을 알지 못하는 다른 누군가가 그것을 아무 생각 없이 버리겠지요.
나는 수화기를 든 채 동전을 넣고 다이얼버튼을 눌렀습니다.
“띠띠 띠띠띠띠....”
“뚜루루루루....뚜루루루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