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의 상흔을 생각해보는 두 편의 시
전쟁의 상흔을 생각해보는 두 편의 시
<유월이오면>
김 의중
유월이오면
진주 빛 하늘아래
그대 생전의 고운 미소가
화사한 장미꽃으로 피어납니다
어느 날 이 땅에
선홍색 피 쏟아내고
햇살처럼 빛나는 넋이 되어있기에
유월이오면
슬픔에 젖은 하늘엔
그대 눈망울에 맺혔던 이슬방울
비가 되어 온 땅에 흘러내립니다
한 맺힌 가슴으로
뒤돌아보며 떠나시던
그 날을 기억하기에
유월이 오면
내 가슴 무너짐은
남기신 그림자가 너무 크기 때문입니다
잊지 않을 거라고
사랑했노라고
애꿎은 하늘 향해 목메어 외쳐도
세월에 녹슨 음성은 메아리조차 없습니다
님은 가시고
나만 홀로 남아있음이
이토록 모진 그리움일 줄이야
떠나시던 그 길에
이 마음도 따라갔음인가
비인 가슴엔
차가운 한숨만 하얗게 서려있습니다.
아 유월은
햇살 이처럼 눈부시건만
가슴속 님 그림자를
지우지 못합니다
빗줄기 장대처럼 쏟아져 내려도
주름살마다에 배어있는 슬픔은
씻어내지 못합니다
내 아직 눈감지 못함은
인고의 세월이 다하지 않은 까닭이며
님 그리는 미련을 놓지 못한 때문입니다
행여 꿈속에서나마
한 번 더 만날 수 있을까
비 그치고 무지개 뜨는
유월이오면
이 시는 2002년 10월, 당시 강화고등학교 국어교사로 있던 시사랑 동인의 요청으로 민족작가협회에 보내는 ‘통일을 기다리며’를 쓸 때 함께 썼던 것으로, 6.25를 경험한 세대로서 한국전쟁미망인들을 생각하며 쓴 것입니다.
아래에 소개하는 '애타게 기다리는 마음'은 영국의 시인 윌프레드 오언의 시로 1961년 11월 기독교방송에서 출간한 '명상의 시간'에 수록되어 있습니다. 제가 대학 2학년 때 구입했던 '명상의 시간'은 잃어버렸고 지금 소장하고 있는 것은 1968년 11월 15판으로 출판된 것으로 중고서점에서 어렵게 구한 것입니다. 오언은 제1차 세계대전에 참전한 젊은 시인으로 26세에 프랑스전선에서 전사하나 동료시인인 시그프리드 서순(Siegfried L Sassoon. 1886~1967)에 의해 사후에 시집이 출간되어 전쟁의 잔혹성에 대한 분노와 희생자들에 대한 동정을 표현한 영국 문학사상 가장 통렬한 전쟁시로 잘 알려져 있습니다. 오언의 다른 시 '공허(Futility)’와 ’마비(Insensibility)'의 원문과 번역은 제가 소장하고 있는 '세계의 명시' 에 수록되어 있으나 '애타게 기다리는 마음'은 원문도 없고 번역하신 분이 누구인지도 모르고 있습니다. 오언의 '공허'와 '마비'에서는 '애타게 기다리는 마음'에서 느끼는 정서와는 달리 감성적인 표현도 상당히 논리적으로 서술되어 있습니다. 개인적인 생각입니다만 '애타게 기다리는 마음'을 번역하신 분이 한국전쟁을 직접 경험하신 분으로 그런 감성을 잘 담아낸 탓이 아닐까 짐작해봅니다.
어쨌거나 이틀 후면 한국전쟁이 일어난 지 71주년이 됩니다. 우리 민족의 이 아픈 역사를 어찌 잊을 수 있겠습니까? 한마음문인협회 문우 여러분들이 후세에 길이 기억되며 애송되는 좋은 글들을 남기시기를 바라며 한국전쟁에서 목숨을 바친 국군장병들과 세계 여러 나라의 참전 전몰장병들, 그리고 그 유족들께 삼가 이 글을 바칩니다.
<애타게 기다리는 마음>
윌프레드 오언(Wilfred Owen. 1893~1918. 영국)
정든 그 임은 싸움터에 가시고
다시는 돌아오지 않으십니다
그리워 무너진 슬픈 가슴엔
나만 홀로 외로이 남아있습니다
떠나시는 그날은
이 마음 따까지고 가신다고
언제까지나 입에 입을 대고 헤어진 것을
아 오늘도 해가 저무는데
나는 맥없이 집에 앉아
행여나 임 오시나 기다려봅니다
지붕마루 구구구 비둘기 웁니다
그리워 임 그리워 비둘기 웁니다
버들가지 아래로 쏟아져 올듯한
나의 눈물 비
이 마음은 산에 핀 개나리꽃
피었다 풍기었다
져버릴 따름입니다
아 이 밤에도 달은 밝은데
나는 맥없이 집에 묻히어
행여나 임 오시나 기다려봅니다
계단으로 뚜벅뚜벅 올라오는 발자욱
가신 임 오시는 줄 알았더니
그 임은 아니시고
고달픈 듯 촛불을 들고 오는 하인 계집애
기꺼운 일 서러운 일 모두
그대 탓이라고
저녁바람아 그리운 임께 일러주렴
아 이 한밤도 지새우며
나는 맥없이 집에 앉아
행여나 임 오시나 기다려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