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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가고 싶은 댓글

필그림(pilgrim) 2021. 4. 25. 00:59

김 선생님,

 

어린이집이 끝날 시간에 맞춰 손자를 픽업하러 갔다가 예방접종을 맞춰야 한다기에 다시 병원으로 가려 했더니 네 살짜리인 이 손자녀석이 약속한 일이 아니므로 가지 않겠다고 버티더군요. 할 수 없이 내일 다시 가기로 약속하고 이마트로가서 쇼핑을 하고 느긋하게 돌아오면서 외식 대신 Take out으로 집에 와서 늦은 저녁을 들었습니다.

단톡방에 들어가 김 선생님이 올리신 'Please let him burn himself'를 읽었습니다. 제 경우 영문과 한글로 된 같은 문장을 읽을 때 집중력 탓인지는 몰라도 영문 쪽이 훨씬 더 강한 울림을 주는 것을 느끼곤 합니다. 비단 영시뿐만 아니라 젊은 시절 Wall Street Journal의 기사나 Bible을 읽을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아마도 어학실력이 부족했던 점도 있겠으나 언어가 가지는 고유한 특성의 차이에서 오는 이유도 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혹시나 해서 문협카페에 들어가 한글로 올리신 글을 읽었더니 죄송한 말씀입니다만 우리 사회의 고질적인 병폐에 면역이 되어서인지 날선 비판이 담긴 글임에도 가슴을 울리는 절박한 인식으로 받아들여지지 않고 반론의 제기가 명확한 논리전개라는 이성적 이해로 받아들여지더군요. 그러나 영문으로 올리신 글은 제목이 주는 탓인지 첫 인상에서부터 가슴이 절절했습니다. 얼마나 절박한 심정이었으면 자신을 불태우게 하소서!’ 하고 절규했을까요? 같은 내용이라 하더라도 다른 나라 언어로 읽는 느낌이 이처럼 다르다면 우리와는 다른 환경에서 읽는 독자들의 반응은 상당히 다를 수도 있음을 넉넉히 짐작할 수 있을 것입니다.

김 선생님,

다시 한 번 죄송하다는 말씀을 드려야겠습니다. 시분과 단톡방에는 댓글을 달지 않겠습니다. 정치적인 성향을 드러내거나 이념적 갈등에 휘말리거나 편견이나 비방에 휩쓸리기 쉬운 글이나 말은 자제해야겠다는 것이 저 스스로에 대한 약속이기에 제 책이 나오고 난 뒤에 저를 평가하는 사람들의 인식이 어느 정도 보편화되면 모를까 당분간은 이 약속을 바꾸지 않을 생각입니다. 김 선생님의 글이 편향적이라는 뜻이 아니라 사람에 따라서는 아전인수나 견강부회로 편향적인 생각을 가질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 시대의 현상을 날카롭게 지적한 아포리즘의 글임에도 자칫 제가 올리는 댓글에도 민감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김 선생님,

국가란 무엇입니까? 이 명제에 대한 생각이 제가 쓰고 있는 글의 각 Chapter 마다 담겨있습니다. 한 때 잘사는 나라를 만드는 일에 동참했던 아련한 기억을 더듬어 지금 이천 년 전의 아득한 이야기를 쓰면서도 이 명제에 천착함은 지금 우리사회가 안고 있는 병폐를 해소하지 않으면 나라의 미래가 없다는 인식이 크게 작용하고 있기 때문이라 하겠습니다. 덕분에 유 시민 씨가 쓴 국가란 무엇인가?’를 비롯해 함석헌 선생의 뜻으로 본 한국역사’, 마키아벨리의 군주론이나 플라톤의 국가론’, 사마천의 사기의 기록과 공자와 노자와 맹자가 언급한 국가에 대한 이념, 학창시절에 배웠던 민주주의의 싹을 틔운 영국의 정치사와 프랑스의 혁명비사, 미국의 정치사 등과 15권의 대작으로 서술된 로마인이야기등 적지 않은 서적과 인류의 정신적 가치의 변화를 서술한 지성의 운명’, ‘위대한 사상과 사상가들’, ‘서양사상선집’, 등도 다시 살피며 각고의 정성을 쏟고 있는 중입니다. 이런 책들은 모두 참고용이지 사료에 근거한 자료들은 아닙니다.

김 선생님,

김 선생님은 어떤 생각으로 글을 쓰시는지 그 글이 사람들에게 어떻게 읽혀지기를 바라고 계시는지 자주 말씀을 나누면서 최소한의 공배수를 늘려갈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보다 넓은 세상뿐만 아니다 보다 나은 내일을 위한 바람직한 꿈도 함께 공유할 수 있다면 더 바랄 게 없을 것 같습니다.

어느새 밤이 깊어가고 있네요. 편안한 밤이 되기를 빌며 진심이 담긴 따뜻한 마음을 전합니다.

 

 

Oct 05(Mon), 2020.

영문학 박사 김 *수 선생께 보낸 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