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문과 지식의 샘터

올드 랭 사인

필그림(pilgrim) 2019. 1. 1. 01:08

<올드 랭 사인>

Should auld acquaintance be forgot
And never brought mind...

또 다시 한 해가 저물어갑니다. 영미문화권에서는 세모에 이 노래를 부르면서 새해를 맞는 풍습이 있습니다. 새삼스럽게 젊은 날 벗들과 함께 보신각에서 울리는 제야의 종소리를 들으며 거리를 쏘다니던 기억이 주마등 같이 떠오릅니다. 그 시절 보았던 애수(哀愁)라는 영화에서 주인공 로버트 테일러와 비비안 리가 아쉬운 작별을 앞두고 반복해서 연주되는 이 노래를 들으며 춤을 추는데 한 곡이 끝날 때마다 악기 연주자가 한 사람씩 촛불을 끄면서 퇴장하던 장면이 아직도 눈에 선합니다.
올드 랭 사인(Auld lang syne)은 Old long since의 스코틀랜드 방언으로 영국 낭만주의 시인 로버트 번스(1759~1797)의 시에 오페라 작곡가로 알려진 윌리엄 쉴드가 곡을 붙인 노래입니다. 한 때 우리가 애국가의 멜로디로 부르기도 했던 이 노래는 아동문학가 고 강소천 선생님이 석별의 정으로 번역하여 졸업식 때 즐겨 부르기도 했습니다.
로버트 번스는 스코틀랜드의 가난한 농부의 아들로 태어나 제대로 된 교육도 받지 못하고 자랐으나 타고난 재능과 독학으로 시를 쓰고 노래하며 놀기를 즐겨 부친은 물론 장성한 딸을 둔 마을 사람들의 속을 태우기도 했습니다. 부친이 임종을 앞두고 간곡하게 아들을 타이르자 행실을 고치겠다고 약속한 후 부터 마을에서 처녀들이 사생아를 낳는 일이 없어졌다고 하니 번스가 얼마나 자유분방한 바람둥이 청년이었는지 짐작이 갈 것입니다. 
그러나 시에 관한 한 그의 영혼은 더 없이 순결했으며 지칠 줄 모르는 열정을 지니고 있었습니다. 대책 없이 태어난 어린 딸을 돌보며 마음을 가다듬고 농사일에 종사하면서도 그의 가슴과 머리에서는 절제하기 어려운 시상과 언어들이 쏟아져나왔습니다. 자신에 대한 주변의 차가운 시선과 멸시에는 관심도 없었고 오직 시에 대한 진실한 언어만이 그의 생존의 의지를 굳게 지켜주고 있었습니다. 그의 나이 26세가 되던 어느날 번스는 냇가에서 빨래를 하고 있던 진 아머라는 19세의 아가씨를 만나 사랑에 빠집니다. 진 아머가 임신을 하자 마을은 다시 소란스러워졌고 진을 부인으로 맞겠다는 번스의 호소에도 불구하고 사생아를 입양하는 한이 있어도 망나니 번스를 사위로 맞을 수 없다며 번스의 처벌을 주장하는 진의 집안의 반대로 번스는 쫓기는 신세가 되어 고향을 떠납니다. 자메이카로 가는 배를 타려 했으나 여비조차 마련하지 못한 번스는 궁여지책으로 친구의 조언에 따라 그동안 썼던 시들을 모아 이듬해인 1786년에 출판사로 보냈는데 이것이 '스코틀랜드의 방언으로 쓴 시집'으로 출간되어 대박이 됩니다.
졸지에 유명인사가 된 번스는 에딘버러 명사들의 초청을 받고 그해 11월에 에딘버러로 갑니다. 2년 남짓 에딘버러에서 지내는 동안 진은 아버지가 정해 준 다른 남자와 결혼하여 번스의 아들인 쌍둥이를 낳고 번스는 아일랜드 출신의 메리 캠벨이라는 아가씨와 결혼하는데 결혼소식을 전하려 친정으로 갔던 메리가 병사하고 맙니다. 순박한 농촌과는 달리 얄팍한 도시의 인심과 귀족들의 허영과 오만함, 그리고 보이지 않는 신분의 차이에 환멸을 느낀 번스는 1789년 고향으로 돌아와 메리와의 추억을 회상하며 '아름다운 앱튼강'이라는 시를 씁니다. 제가 로버트 번스에 대해 더 많은 관심을 갖게 된 것도 바로 이 시를 편역하면서부터입니다.
번스가 고향으로 돌아오자 이번에는 진 아머의 집에서 재결합을 종용합니다. 수많은 여성들과의 스캔들에 빠져들던 번스도 비로소 가정을 이루고 덤프리셔로 이사하여 박봉이지만 세무국에 자리를 얻고 안정된 생활을 하게 됩니다. 그러나 자유분방한 성품은 쉽게 고쳐지지 않아 대신 술과 입담으로 마음을 달래는 시간이 늘어갑니다. 다행히 성품이 부드럽고 넉넉한 진 아머는 거칠고 메마른 번스의 지친 영혼을 늘 따스하게 감싸주며 번스를 대신해 집안 살림을 꾸려갑니다.
때마침 이웃나라 프랑스에서 자유와 평등을 부르짖는 민중혁명이 일어나자 번스는 신분계급이 엄격한 국가체제에 불만을 품고 프랑스 혁명을 동경하는 언행으로 당국의 감시대상이 되기도 합니다. 세무국의 일을 보면서도 번스는 법보다는 민중이 우선이었습니다. 가장 힘이 없는 사람들이 번스의 도움을 받았으며 이러한 기질로 스코틀랜드에 뿌리 박힌 서민들의 민담과 민요에 몰입하기도 하면서 신분의 차별이 없는 사회를 갈망하던 번스는 끝내 울화와 과음으로 건강을 해치게 됩니다. 1796년 7월,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선술집에서 거침없는 입담으로 울분을 토한 후 비틀거리며 집으로 돌아가던 번스는 길가에 쓰러져 37세의 젊은 나이로 생을 마감하고 맙니다. 아마도 눈을 감는 순간 아내 진 아머와 사랑하던 아들의 얼굴을 떠올리며 시와 인생과 꿈의 허망함, 아쉬움, 부질없음에 씁쓸한 미소를 머금었으리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도덕적인 기준으로는 결코 존경을 받을만한 인물이라고 할 수 없겠으나 시에 대한 열정과 스코틀랜드의 향토애와 거기 뿌리를 내리고 살아가는 순박한 농민의 삶에 대한 연민, 그리고 인간 본연의 존엄성에 바탕을 둔 끊임없는 저항정신은 후세의 귀감이 되어 오늘날까지 스코틀랜드의 민족시인으로 추앙을 받고 있습니다. 그가 마지막까지 살았던 덤프리스시에는 동상이 세워져 있고 전시관인 로버트 번스 센터도 있습니다. 새빨간 장미, 하일랜드 등 우리에게 잘 알려진 친숙한 시들과 그 밖의 다른 시들은 영불명시 100선(장호), 생일(장영희), 세계의 명시(김희보), 낭만주의 영시(이재호) 등에서 찾아볼 수 있으며 올드 랭 사인, 호밀밭에서(Come in through the rye), 아름다운 앱튼강(Sweet Afton) 등은 세계 여러나라에서 노래로 널리 애창되고 있기도 합니다.
저무는 한 해의 마지막 날에 올드 랭 사인을 듣거나 부르며 시와 시인과 문학에 대해 생각해보면서 새로운 희망으로 새해를 맞으시기를 바랍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