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명시
산그늘에 마음 베인다.
필그림(pilgrim)
2008. 11. 8. 18:30
산그늘에 마음 베인다.
이 기철
햇빛과 그늘사이로
오늘 하루도 지나왔다.
일찍 저무는 날일수록
산그늘에 마음 베인다.
손 헤도
별은 내려오지 않고
언덕을 넘어가지 못하는 나무들만
내 곁에 있다.
가꾼 삶이 진흙 되기에는
저녁놀이 너무 아름답다.
매만져 고통이 반짝이는 날은
손수건만한 꿈을 헹구어 햇빛에 널고
덕석 편 자리만큼 희망도 펴 놓는다.
바람 부는 날은 내 하루도 숨가빠
꿈 혼자 나부끼는 이 쓸쓸함
풀뿌리 다칠까봐
흙도 골라 딛는 이 고요함
어느 날 내 눈물 따뜻해지는 날 오면
나는 내 일생 써 온 말씨로 편지를 쓰고
이름 부르면 어디든 그 자리에 서서
나를 기다릴 사람 만나러 가리라.
써도 써도 미진한 시처럼
가도 가도 닿지 못한 햇볕 같은 그리움
풀잎만이 꿈의 빛깔임을 깨닫는 저녁
산그늘에 고요히 마음 베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