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신(받은 글) 012 <처음보는 남대천>
<처음 보는 남대천>
심중을 우려낸 더운 글월 가슴 저미도록 심취했습니다. 그 정도로 긴박한 사정인줄은 미처 다 알지 못했습니다. 제 한숨소리가 들리실 겝니다.
쉰 넘은 딱한 사내의 어리광을 잘 참아주셨습니다. 선배님의 사정을 어느 만큼은 알면서도 거두절미(去頭截尾) 내 밀었던 억지춘향의 불뚝이를 잘 여미고 보듬어 주셨습니다.
어제 읍내엘 다녀왔습니다.
산골짜기 누옥과 약간의 토지를 매각하기 위한 마무리 상담을 위해서였습니다. 매각은 결정되었고 매매계약도 그 자리에서 치렀습니다. 장소를 비울 날짜는 다행히 서너 달의 여유가 있습니다. 다가올 가을의 정서를 다붓이 받들 수 있을 것 같아 무엇보다 다행입니다. 마지막 가을이 되겠지요.
일보러 읍내에 내려가는 트럭 안에서 만 가지 상념이 뇌리를 함부로 휘감고 돌아 도무지 갈피를 세울 수가 없었습니다. 그런 와중에도 머리를 떠나지 않는 생각 하나가 있었습니다. 참말로 문학산장의 안정도 제고와 찾아오는 님들을 위한 도리의 발로에서 기인된 밀어붙이기였냐는 자문이었습니다. 자답은 어김없이 '물론'이었지만, 좀 더 깊이 들여다보자 그것으로 대답의 전부를 감당할 순 없었습니다.
제 자신의 양식을 의심하진 않습니다. 그 정도의 미온적인 단계는 넘었다고 확신합니다.
의지가 점차 냉정을 회복하매 두 갈래로 나뉘어있는 제 자신의 갈피를 비로소 들여다 볼 수가 있었습니다. 문제는 보다 원초적인 곳에 있었습니다. 손에 쥐고 있는 소명을 실행하지 않곤 죽어도 바르게 눈을 감을 수 없을 것 같은 절박감과, 당장에 놓여진 내 운명으론 차마 실행하지 못할 것이란 자괴감의 모순적 대립을 동시에 봤던 것입니다. 소명과 운명, 절박감과 자괴감이란 초보적인 대립적 갈등이었습니다. 어이가 없었습니다. 고개를 들 수가 없었습니다. 잘 가던 트럭을 남대천 무너진 둑길 한편에 세우고 눈앞에 보이는 무너진 제방처럼 순식간에 허물어지는 내 형상이 말할 수 없을 만큼 부끄러웠습니다.
부끄러움에 다음으로 자신에게 향하는 은근한 분노가 뒤따랐습니다. 부끄러움과 분노, 이를 먼저 토로하지 않고는 다른 말은 다 허사로 흐를 건 뻔합니다. 망설였습니다. 하지만 자복함으로서 체면은 상할지언정 알량한 내 양식이나마 지키기로 했습니다.
제우스선배님! 못난이 학마을이는 지극히 초보적인 대립적 갈등에 휘말려있었습니다. 둘 다 분명한 선(善)일지언정 역접(逆接)하면 선이 아닐 수도 있다는 점을 간과했습니다. 이유 있는 설정이었으되 그것이 자승자박(自繩自縛)이었음을 인정해야만하겠습니다.
오랜 기간 산중에서 단독생활을 하다 보니 사회 붙임성이 다소 떨어져있음을 함께 알아야 했습니다. 한참을 더 방황했습니다.
방황은 그래도 잠시, 자승자박의 화두를 풀어내자 눈앞이 환히 트였습니다. 버리고 비우고 피하며 숙인다는 겸양의 자세, '아무 때나 데려가라!' 는 발악인들 다름 아닌 절차탁마(切磋琢磨)의 감춰진 체득과정이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고, 이는 정신을 확 돌려놓는 일대충격이 되었습니다. 한참동안 제 정신이 아니었습니다.
이후를 대비한 행동사절, 의무양보는 신의 영역을 침범함이고 자기도피일 가능성이 많았던 것입니다. 제 행동적 자경문을 진인사대천명(盡人事待天命)이라 스스로 받들어 놓고는 그것을 실행마당이 아닌 관념의 페이지에 묻어두었던 것입니다.
진인사대천명은 단일명사가 아닌 복합명사, 난 진인사에 신경 쓸 자격만 주어져있을 뿐 대천명의 경계는 주어져있지 않았던 것입니다.
이것의 경계를 깨닫게 하려고---, 자승자박을 풀게 하려고---, 이제껏 골짜기는 절차탁마의 표를 감추고 날 그토록 오래 붙들어두고 있었던 것입니다.
이젠 떠나야할 시간이 되었을 때, 아니 떠남의 첫 행보와 동시에 자승자박의 실타래를 풀 수 있었음은 운이 아니었을 것입니다. 우연도 그런 우연은 도저히 예상할 수 없음입니다.
존경하는 제우스선배님! 전 죽을 자리를 찾아 들어온 것이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권토중래(捲土重來)의 학습장이었던 것입니다. 이곳 산골짜기에서 매 하루를 마지막인 냥 진솔하게 살아왔던 것이 사실인 것처럼 말입니다. 대상이 대자연이기에 가능했음은 무조건 옳습니다.
실패한 글쟁이 하나가 밀려들어온 종착유배지로서의 귀양살이처가 아닌 막가는 인생하나를 살리기 위한 대피처이고 분명한 도장이었던 것입니다.
약속시간은 이미 한 시간이나 넘어있었습니다.
다시 차에 올라 시동을 걸고 백미러를 보니 눈은 붉으레 충혈 되어있었어도 입은 가만히 웃고 있었습니다.
바위하나 나무 한 그루까지 눈으로 외울 만큼 익숙한 곳, 지금은 헝클어지고 무너진 남대천 자취는 전혀 처음 보는 그득한 정경이었습니다.
* 제우스의 012 <잠 못 이루는 밤에>에 대한 회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