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의 수필

작가의 수필 <황혼에 울리는 종소리>

필그림(pilgrim) 2007. 6. 1. 07:00
 

<황혼에 울리는 종소리>

글 / 김 의중

< 1 >
젊은 시절, 가난했던 생활 속에서도 저녁이 되면 나름대로의 평화가 있었다.  어느 날 저녁식사가 준비되는 동안, 그 짧은 기다림의 시간이 무료하여 황혼이 드리우는 붉은 하늘을 보며 가난한 사람들의 일상이 빼곡히 들어선 골목길을 무심히 거닐고 있을 때였다.  큰길 건너 편 언덕길에 있는 교회에서 저녁예배를 알리는 종이 울리고 있었는데 그 저녁종소리가 황혼의 노을만큼이나 아름답게, 맑고 긴 여운으로 울려 퍼지고 있었다. 

문득 어느 집에선가 라디오의 전파를 타고 흐르는 한 곡의 트럼펫 선율이 나의 발걸음을 멈추게 했다.  바이올린이나 관현악, 또는 솔리스트의 고운 음성으로 듣던 귀에 낯익은 곡!  그것이 트럼펫이라는 높고 맑은 청아한 음색으로 색다른 감흥을 불러일으키며 나의 걸음을 멈추게 한 것이다.  곡의 흐름을 따라 내 머리 속에서는 기억의 심연에 새겨진 노래의 가사가 경건하게 되살아나고 있었다.

‘아베마리아!

  성모여!

  벌판에 서서 흐느끼는

  이 소녀의 비는 말을 자비로이 들어주소서....‘

‘슈베르트의 아베마리아’였다.  곡이 끝나고도 나는 얼마동안 그 자리에 그대로 서있었다.  말할 수 없이 숭엄한 감동이 일어 한번만 더 들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면서 서 있었으나 아쉽게도 곡은 거기서 끝났고 다시 이어지지는 않았다.

당시에는 인생의 아름다움에 대한 가치관이 미숙할 때였고 음악에 대해서도 그냥 좋아하는 정도였지 그것이 형성하고 있는 독특한 가치관의 세계를 이해하면서 감상할 만한 지식이 별로 없었을 때였다.  다만 슈베르트의 아름다운 가곡들은 중 고등학교 음악시간에 배운 것들도 적지 않으나 대학에 들어와서 친구들과의 자유분방한 어울림이 있을 때 종종 멋을 내어 원어로 부르기도 했었는데 가령 ‘들장미’의 “자 에인 크나브 에인 레스라인스탄....”이나 가곡 ‘겨울나그네’ 중 ‘보리수’의 “암 부룬넨 볼템토레 다 스테이트 에인 린덴바움....”을 애창하곤 했었다.

당시의 젊은이들의 생활이란 가난하기는 했지만 그렇게 보헤미안적이었고 나름대로의 낭만이 있었다.  
‘아베마리아’도 물론 인기가 있던 레퍼토리였으나 유감스럽게도 원어로 배울 기회는 없었던 것 같다.  하지만 그 날 황혼의 저녁종소리와 함께 들었던 슈베르트의 ‘아베마리아’에 대한 인상은 오래도록 내 기억 속에서 지울 수 없는 감동으로 아직까지 남아 있다.  마치 잊혀지지 않는 첫사랑의 추억처럼....

과문한 탓인지는 몰라도 아베마리아를 작곡한 작곡가를 세 사람밖에 알지 못하고 있다.  슈베르트( Schubert)의 아베마리아와 쌍벽을 이루고 있는 구노(Gounod)의 아베마리아, 그리고 아베마리아라는 성악곡을 맨 처음 작곡한 것으로 알려진 카치니(Caccini)를 알고 있을 뿐이다. 

슈베르트의 아베마리아는 1825년에 작곡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영국의 월터 스콧(Walter Scott)의 ‘호수 위의 미인(Lady on the lake)’가운데 6번째 곡 ‘엘렌의 노래’를 독일어로 번역해 작곡한 것인데 내용은 호반의 바위 위에 서서 아버지의 죄를 용서해달라고 성모마리아에게 비는 간절한 기도문으로 되어있다.

구노의 아베마리아도 헨델의 곡에서 인용하여 구노 자신이 독창적인 음악으로 작곡한 것인데 이는 아베마리아의 곡명 자체가 의미하듯 일반대중의 보편적인 인식 속에 자리한 성모마리아에 대한 숭모의 마음을 종교적인 예배의식에서 경건하게 부를 수 있는 노래로 만든 것이므로 표절이나 저작권침해 같은 논쟁은 없었던 것 같다.

카치니의 아베마리아는 러시아 작곡가 블라디미르 바빌로프(1925~1973)가 작곡한 것을 카치니(1550~1618)의 이름으로 발표하여 유명해진 곡이라고 한다.  이 곡도 아베마리아를 좋아하는 사람들이라면 빼놓지 않고 들으려고 하는 곡일 것이다.  기회가 된다면 여러분들도 이 세 곡을 비교하여 감상하면서 ‘아베마리아’! 그 숭엄한 감동을 느껴볼 수 있기를 권하고 싶다.



< 2 >

초등학교 때 국어교과서에 실려 있던 밀레의 ‘저녁 종(晩鐘)’이라는 이야기를 배운 일이 있다.  농촌출신인 밀레가 그림공부를 위해 파리로 갔으나 비정한 도시생활에 적응하지 못하고 비참한 생활을 하다가 끝내 굶주림으로 사랑하는 아내까지 잃고는 문득 이렇게 살 수는 없다고 깨닫고 돈을 벌기 위한 그림이 아닌, 진정 자신이 원하는 그림을 그리기 위해 시골로 돌아가 불후의 명작인 ‘저녁 종’을 완성한다는 내용이다.

당시 어린 마음으로는 밀레가 느꼈을 인생의 현실적인 비정함에 대한 환멸이나 새로 깨닫고 터득하게 된 숭고한 가치관에 대한 인식보다는 그저 한 인간의 성공스토리에 관한 교훈 정도로 받아들였을 것이다.  다만 어렴풋이나마 그런 위대한 업적을 이루는 사람들은 뭔가 보통사람들보다는 특별한 정신세계를 가졌을 것이라는 막연한 느낌은 있었던 것 같다. 

밀레(Jean Francois Millet : 1814-1875)는 자연주의화가로서의 자기위치를 찾기 전에는 초상화나 전설에 얽힌 그림을 그렸고 도시생활에서 쉽게 보고 느낄 수 있었던 노동자들의 모습을 그렸었다.

1849년에 파리근교의 퐁텐블로 숲 어귀에 있는 바르비종이란 마을로 이사하여 이곳에서 평생을 보내면서 자신의 예술혼을 불태워 농민들의 일상에서의 역동적인 삶의 모습을 화폭에 담는 자연주의의 거장으로 성장한다. 

이 시기에 그린 그림으로는 ‘씨 뿌리는 사람’, ‘건초를 묶는 사람들’, ‘하루의 끝’, ‘이삭줍기’, ‘만종(저녁 종)’ 등이 있는데 어느 것에서나 자연과 거기에 뿌리를 내리고 살아가는 사람들의 노동에 대한 신성한 가치의식이 생생하게 표현되고 있다. 

실제로 밀레는 자연주의를 창시하고 이를 이끄는 바르비종파의 대표적인 인물이었음에도 코로(Camille Corot)나 루소 등 다른 친구들과는 달리 풍경화를 그리는 것이 아니라 자연 안에서 그 일부로 살아가고 있는 때 묻지 않은 농민의 정직한 땀과 성실한 순응의 모습을 주로 화폭에 담았다. 

‘만종(저녁 종)’!  하루의 일과가 끝난 농촌의 들판에 서서 멀리 교회에서 들려오는 저녁종소리를 들으며 부부가 겸손히 두 손을 모으고 머리 숙여 기도하는 모습에서 우리는 다른 어떤 설명도 들을 필요 없이 누구나 경건하고 숙연한 감동을 느끼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이 그림에서 우리는 단순히 구도와 색감과 화필의 강도와 세련됨을 보는 것이 아니라 거기 담겨져 있는 작가의 정신세계와 영혼의 소리를 시공의 한계를 넘어 지척에서 옷깃을 여미며 보고 듣는 셈이다.  예술의 위대성이란 이런 것이 아니겠는가?

자연에 대해서, 신(神)에 대해서, 그리고 인간에 대해서 밀레는 이 ‘저녁 종’이라는 그림을 통해서 우리에게 하고 싶은 말을 다 하고 있는 셈이다.



< 3 >

어느 날 저녁 무렵에 책상 앞에 앉아 책을 읽다가 안경을 닦으며 새삼 지천명(知天命)의 문턱을 넘어 이순(耳順)을 향해 가고 있는 자신의 모습을 돌아보면서 불현듯 아무 이루어놓은 것도 없이 이제는 이렇게 허무하게 인생의 종착역을 향해 가는 것이 아닌가 하는 서글픈 생각이 들었다. 

창밖을 내다보니 서녘하늘에 지금 막 해가 가라앉고 있다.  지는 해는 불과 2~3분 만에 지평선너머로 사라져버렸다.  하늘은 이미 노을로 물들기 시작했는데 해가 진 뒤임에도 기세를 늦추지 않고 황홀할 정도로 장엄하게 천지를 뒤덮고 있다. 

하지만 주인이 사라진 그 공허한 위엄이 얼마나 오래 버틸 수 있겠는가?  황혼이 물러가고 땅거미가 깔리기 시작하자 슬금슬금 자리물림을 하면서 사라지는 노을이 인생의 무상함을 느끼는 마음에 잔잔한 아쉬움을 남긴다. 

그러나 인생의 황혼이 어찌 서글픔뿐이겠는가?  로맨스도 있고 낭만도 있으며 스릴과 보람도 있을 것이다.  나이 60이 넘어 시집가고 장가가는 일이 이제는 더 이상 희한한 일이 아니요 할머니 할아버지 소리를 들으면서도 여자친구 남자친구라고 자녀들 앞에 스스럼없이 이야기하고 있는 게 현실이다.  어떤 이들은 본인의 능력이든 자식 덕이든 여유 있게 세계여행을 나서는가 하면 미국의 어느 돈 많은 노인은 엄청난 돈을 주면서 우주여행도 다녀오지 않았는가? 

실제로 학문의 세계는 말할 것도 없고 음악이나 미술이나 문학의 세계에서 황혼의 나이는 아무런 장애가 되고 있지 않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완숙한 노련미에 대한 인식으로 더욱 인정과 존경을 받고 있는 예가 허다하다.  다른 분야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이긴 하지만 오히려 어떤 분야에선 물러섬과 자제함이 없이 노욕(老慾)을 부려 문제가 되고 있는 경우도 적지 않게 보고 있음은 누구나 다 아는 사실일 것이다.

인생의 황혼의 문턱에서 한번쯤은 어제를 뒤돌아보며 남은 내일을 헤아려보는 것은 지혜로운 일이며 바람직한 일일 것이다.  노추(老醜)하지 않으며 원숙하며, 마음의 풍요와 여유가 있는 노년은 얼마나 아름답고 값진 것이겠는가?  더 이상 병(甁)에 들어있는 술이 얼마 남지 않았다고 비관만 하고 있을 게 아니라 남아있는 양을 얼마나 값지고 소중하게 활용할 것인가를 생각하는 인식의 전환이 있어야 할 것이다.  서글픔과 회한이 어찌 없을 수 있겠는가마는 인생의 황혼은 결코 그러한 후회와 비애로만 장식되어서는 안 될 것이다.  그러기에는 남아있는 시간의 의미가 너무나 소중하기 때문이다.



< 4 >

젊은 날 골목길에서 슈베르트의 ‘아베마리아’와 함께 들었던 저녁종소리!  그것이 귀로 들을 수 있는 소리였다면 밀레가 그린 ‘만종’에서 들려올 듯한 저녁종소리는 눈으로 볼 수 있는 소리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인생의 황혼에서 듣게 되는 저녁종소리는 가슴을 울리는 소리가 아닐까 생각해본다. (아쉽게도 요즘 도시생활에서는 교회의 저녁종소리조차 들을 수 없지만)

인생의 길에 있어서 황혼의 문턱이라고 할 수 있는 이순(耳順)의 의미는 무엇일까?  어쩌면 그것은 귀로 듣고 눈으로 본 것을 가슴으로 정리하여 새기라는 의미인지도 모른다.  단순히 듣기만 하는 이청(耳聽)이 아니라 순리(順理)를 깨우치며 그에 따라 마음을 순화(純化)하고 순응하는 이순(耳順)이어야 한다는 뜻으로 새겨도 좋을 것이다. 

하늘의 뜻을 헤아려 안다는 지천명(知天命)보다 이순이 한 수 위인 것은 하늘의 뜻을 알았으면 그 뜻에 순응하는 자세를 가져야 한다는 교훈이 아니겠는가? 

이순(耳順)!  이것이 저녁에 울리는 종소리를 황혼의 종소리로 새겨들을 수 있는 나이를 의미한다면 아직 지천명의 나이에 있는 사람들에게는 그 깨우침을 위한 시간의 여유가 다소나마 있는 셈이지만 어차피 가야하는 인생길에서 황혼에 울리는 종소리의 의미를 경건하게 새기며 들을 수 있도록 마음의 준비를 미리 한다고 해서 나쁠 것도 없을 것이다. 

황혼에 울리는 종소리!  그것은 하늘에 대해 경건하고 엄숙한 삶의 자세를 돌아보게 하는 소리이며 더불어 사는 이웃에 대해 성실함과 감사함을 생각하게 하는 소리, 그리고 개인의 삶의 남은 시간들을 보다 보람 있게, 아름답게 가꾸고 정리하라는 시그널사운드로 이해해야할 것이다. 

황혼의 인생!  인생의 황혼은 지난 세월에 대한 아쉬움이며 서글픔일 수도 있으나 앞으로 남아있는 시간들에 대해서는 미숙한 대로 가꾸어온 자신의 삶에 대해 마무리하는, 나름대로의 완성일 수 있으며 비록 짧은 순간일지라도 장엄한 저녁노을처럼 황홀한 아름다움을 보여줄 수 있는 마지막 기회가 될 수도 있을 것이다. 

우리는 어떤 일이 이미 다 끝난 사실에 대해 흔히 ‘종 쳤다’라고 말하기도 한다.  그리고 사람이 죽어서 울리는 종을 조종(弔鐘)이라고 한다.  그러나 어느 누구도 자신의 인생을 끝내는 마지막 종소리는 들을 수 없을 것이다.  조종이 비록 한 인생의 끝남을 알리는 종소리이기는 하지만 죽은 자를 위해 울리는 것이 아니라 살아있는 자를 위해 울리는 종이기 때문이다. 

조종(弔鐘)이 울리면 사람들은 어떤 마음으로 그 소리를 들을까?  애도와 안타까움일까?  안도와 후련함일까?  누구나 원하는 바는 사랑과 존경이 담긴 아름다운 그리움의 종소리이기를 바랄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라도 황혼을 바라보는 인생이라면 누구나 황혼의 종소리의 의미를 이순(耳順)하는 마음으로 새겨들으며 남은 인생을 소중하게 헤아리는 자세가 있어야 할 것이다.

‘생명의 등불이 꺼지는 것은

  인생의 한 가닥 손실

  너도 그 한 가닥이라면

  울리는 저 종은

  너를 위하여서도 운다.

  묻지를 마라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는가를...’

-헤밍웨이의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에 인용 된
존 던(John Donne)의 시 '기도문' 중에서-